▲ 정이신 논설위원·목사
▲ 정이신 논설위원·목사

인간에게 어떤 생각 하나가 일어났다고 했을 때, 인간 안에서 그 생각을 일으키는 도구는 무엇일까요? 마음이 생각을 불러일으켰다면, 그 마음은 어디에서 만들어진 것일까요? 가만히 있는 사람에게 외부에서 충격이 다가와 무의식적으로 조건 반사를 보였다고 해도, 그 과정은 인간 안에 있는 어떤 게 맞대응한 것이고, 그게 몸의 반응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대체로 사람은 몸을 통해 생각하고 반응합니다. '머리'로 통칭하는 인간의 뇌가 생각해서 반응하는 게 아닙니다. 몸이 얻어낸 여러 가지 정보를 뇌에 저장해 놓고, 그걸 통해 상황을 판단하고 생각과 반응을 일으킵니다. 북향민을 가르치면서 이들 내면에 있는 북한에 대한 몸의 기억이 대한민국에서 꽤 불편한 상황으로 이들을 몰아가는 안타까운 현실을 봤었습니다.

북한에서 살면서 몸으로 체득한 정보 가운데 뇌에 깊숙이 저장된 게 있습니다. 그게 대한민국에 와서 새로운 가치로 치환되지 않고, 여전히 득세를 부리고 있는 몸을 가진 북향민 제자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이 대한민국에 잘 정착하도록 도우면서, 사람이 머리로 생각하는 게 아니라 몸으로 생각한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청소년을 상담하면 학업성적이 안 좋은 학생들을 보고 머리가 안 좋아서 그렇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습니다만, 실제로 IQ라 불리는 수치는 크게 차이가 나지 않습니다. 다만 그들은 대부분 공부와 책에 대해 좋은 기억이 별로 없습니다. 그들의 성장 과정에서 겪었던 다양한 사건으로 인해 책과 문자에 대한 편견이 그들 몸에 새겨져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그 흔적을 바꾸거나 문자가 아닌 다른 매체로 지식을 습득하는 방법을 가르쳐 줘야 합니다.

이런 사례가 말해주듯이 인간은 제 몸을 벗어나서 생각을 만들어 내지 못합니다. 몸이 지구에 있기에 자기가 있는 땅을 토대로 생각합니다. 상상력으로 간접경험을 하고, 또 그걸 이용해 뭔가를 만들기도 하지만, 자세히 보면 이것도 몸이란 프리즘으로 정리된 정보를 활용한 것입니다. 해 아래 세상에 있는 인간은 몸에 있는 온갖 기억과 정보에 얽혀 살아가고, 몸의 반응으로 인해 외부의 대상들이 인간의 인식 안에 거처를 마련합니다. 이 과정에서 몸을 통해서 반응한 대상이 인간에게 실재의 세계로 주어집니다.

그런데 세상에는 여러 유형의 몸을 가진 인간이 있습니다. 그래서 자신에게 필요한 정보를 몸에 저장하는 형태도 다양합니다. 이로 인해 '네 생각을 안다', '네 마음을 안다'라고 말하는 건, 일방적으로 가해지는 폭력이 될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백인이 마음을 써서 배려해도 유색인과 같은 생각을 할 수 없고, '남자가 여자를 이해한다'라는 말에도 한계가 있습니다. 몸이 다르기에 서로를 완전하게 이해해 그와 똑같이 그의 몸에 대한 배려를 수행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서로 같이 사는 지혜를 나누고, 공유하는 가치나 공감의 정도를 격식을 갖춰 표현하며, 이를 통해 어울림의 마당을 만들어가는 게 필요합니다.

나이가 들수록 몸에 관한 공부가 더 중요해지는데, 인간의 몸이 달라지기에 몸을 통해 누리는 행복에 대한 반응도 달라집니다. 따라서 나이가 들어도 어르신이 되려면 이걸 감내해야 합니다. 예전에는 그게 행복이었는데, 이제는 아닌 게 등장하기에 그걸 받아들여서 노추(老醜)의 외고집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인간은 제 몸이 축적한 정보를 통해 인생을 공부하고, 오감을 매개로 얻은 정보를 몸에 저장해 둔 채, 그걸 숙성시켜서 생을 마감합니다. 그렇기에 인간이 나이가 들어서도 아름다운 생각과 반응을 만들어 내려면, 몸에 그런 정보를 차곡차곡 쌓아둬야 합니다. 그래야 노추를 벗어나 어르신이 될 수 있습니다.

변하지 않는 이상이 필요한 것도 몸 때문입니다. 인간의 몸이 자꾸 변하기에 바뀌지 않는 진리가 어두운 바닷길을 밝히는 등대처럼 인간 곁에 꿋꿋이 서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몸을 뛰어넘어 다가오는 어둠을 헤쳐나갈 수 있습니다.

■정이신 논설위원·목사 △한양대 전기공학과 졸업 △백석대 신학대학원 졸업 △아나돗학교 대표간사 △아나돗공동체 위임목사 △세이프타임즈에 '노희(路戱)와 더불어 책(冊)놀이' 연재, 칼럼집 <아나돗편지(같이 비를 맞고 걸어야 평화가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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