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종교라 불리며 전 세계에 많은 신도를 거느리고 있는 종교들에 처음부터 따르는 사람이 많았던 건 아닙니다. 기독교도 세력이 미약해, 처음 출발했을 때는 이 종교가 태동했던 지역을 지배하고 있던 로마인이 기독교가 어떤 종교인지 제대로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한때 로마인은 기독교를 유대교의 한 분파로 이해했었습니다. 그 뒤 기독교는 오랜 세월 동안 예수님의 뜻을 진정으로 이어 온 '진실한 제자들'의 노력으로 세계종교로 성장했습니다.

▲ 정이신 논설위원·목사
▲ 정이신 논설위원·목사

종교로 출범할 때, 기독교가 태동한 지역에는 기독교보다 더 큰 세력을 가진 종교가 여럿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그 종교들은 모두 사라졌습니다. 그런데 진정으로 창교자의 가르침을 이으려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으면, 그 종교는 어떤 경로를 밟든지 법통이 이어집니다. 반면에 수만 명의 신도가 있다고 해도, 창교자의 가르침을 제대로 이어받은 한 명이 없으면 법통은 끊어집니다. 예를 들어 불교의 선종이 중국에서 6대 조사에 머무르고, 그 이후로 조사의 대가 끊어진 일도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이후 선종은 한국에서 둥지를 틀었습니다.

제대로 깨우친 한 사람의 힘은 그걸 가볍게 무시할 수 있을 만큼 작지 않습니다. 그 한 사람으로 인해 전체가 흐려질 수도 있고 흔들릴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 한 사람이 되는 조건에는 '부모와 스승을 부정하지 않는다'가 포함됩니다. 부모와 스승을 배신하거나 존경하지 않는 사람은 이 법통의 맥을 제대로 이어받지 못합니다.

저는 한동안 부모와 스승을 부인했었습니다. 제 집안의 경우 가족을 탄생시킨 과정에 우리나라 근대사의 아픔이 고스란히 배어있습니다. 그리고 이로 인해 집에서는 형제를 두고 늘 부모의 지독한 편애가 따라 다녔습니다. 막내인 제게도 그 편애의 그늘은 늘 주변에 있었고 고통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것마저도 제가 중학교 3학년 때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일찍 반 토막이 났습니다.

멘토라고 기꺼이 부를 수 있는 분을 목사 안수를 받은 지 10여 년이 지난 후에 만났고, 그 이전에는 반면교사(半面敎師) 밑에서 기독교인으로서의 수업을 감내했었습니다. 제가 만난 반면교사 A는 수년 동안 그와 같이 일했던 제게 사기를 쳤고, 반면교사 B는 저를 쫓아냈었습니다. 그런 그들을 멘토라고 말할 수 없기에, 목사 안수를 받고도 10여 년 정도는 길라잡이가 누구라고 말하지 못했었습니다.

얼마 전에 부정(否定)했던 그들에게서 '부'를 떼어 냈습니다. 그들 역시 제 부정(不淨)함이 아니라 정(正)함을 위해 필요했던 사람들임을 나이 쉰을 넘기고서야 슬그머니 알게 됐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제게 줬던 쓴 나물이 당시에는 아주 썼지만, 그것으로 인해 오늘의 제가 존재할 수 있게 됐습니다. 그들과의 인연도 하나님의 허락으로 이뤄진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부'를 떼고 그 일을 통해 제가 얼마나 성숙해졌는지를 헤아렸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나는 불행했다. (중략) 하지만 지금 나는 지나온 모든 날에 감사한다. 내가 부족함이 없게 자랐다면, 내가 그렇게도 혐오하고 경멸해 마지않는 그 사람들의 사상과 성격, 생활을 그대로 수용했을 테고, 결국에는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없었을 것이다." 독립운동가 박열(朴烈)의 연인이자 정치적 동지였던 가네코 후미코(金子文子)가 스물세 해의 짧은 생애를 마치기 전, 그의 자서전에 남긴 글입니다.

좋은 부모와 참된 스승은 어떤 사람이 더 많은 기회비용을 얻을 수 있는 복입니다. 그러나 그런 복이 없을지라도, 받아들이는 사람의 생각과 행동에 따라 고난이 복이 된다는 걸 가네코의 글을 통해 다시 알게 됐습니다. 그러자 성경에서 고난에 관한 말씀을 읽으면서도 '바울이니까 그렇게 했겠지...'라고 생각했던 교만이 그녀의 글 앞에서 머리를 숙였습니다.

복은 주어진 것과 만들어 가는 게 있습니다. 만약 내게 주어진 복이 적다고 생각되면, 이제부터라도 나만의 복을 만들어 가십시오.

■정이신 논설위원·목사 △한양대 전기공학과 졸업 △백석대 신학대학원 졸업 △아나돗학교 대표간사 △아나돗공동체 위임목사 △세이프타임즈에 '노희(路戱)와 더불어 책(冊)놀이' 연재, 칼럼집 <아나돗편지(같이 비를 맞고 걸어야 평화가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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