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이신 논설위원·목사
▲ 정이신 논설위원·목사

모 기독교 언론에서 기사로 올린 글에 한국 교회에서만 주장하는 절기에 관한 게 있었습니다. 모 신학교 교수가 '이런 절기는 폐지해야 한다'라고 쓴 것인데, 제 생각과 같아서 그 글에 댓글을 달았습니다. 그 절기는 교회력에 근거가 있어서 정한 것도 아니고, 역사적 근거도 희박하며, 한국의 일부 교회에서만 지킵니다.

그 뒤 제가 댓글을 써 놓은 걸 잊고 지냈는데, 어떤 이가 제 의견에 답글을 달았다고 SNS에 표시가 돼 있었습니다. 그래서 들어가 봤더니 제 글에 대한 논리적 반박이 아니라, '목사가 그러면 안 된다'라는 꾸짖음이었습니다. 답글을 쓴 사람에게 그럼 당신이 생각하는 바를 써 달라고 정중하게 부탁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사람이 신학계에서 효용 가치가 끝났다고 판정한 이론을 토대로 잡다한 잡설을 늘어놨습니다.

그 후 다른 일이 벌어졌습니다. 저 말고 다른 사람이 그 사람의 답글에 반박하는 글을 썼고, 다시 그 사람이 답글을 썼습니다. 그런데 처음에 제가 쓴 글에 답글을 달았던 그 사람의 반응이 참으로 애처로웠습니다. 그의 글을 보면 그가 무엇을 주장하는지 아무리 봐도 알 수 없었습니다. 그의 논조는 늘 '당신이 교회에서 일하는 사람이니 그런 글을 쓰면 안 된다'라는 것이었습니다. 논쟁의 핵심이 됐던 그 절기를 지켜야 하는 성경적 근거는 마치 특급 비밀인 것처럼 말하지 않았습니다.

처음에 한국 교회에서 만든 절기에 관한 제 의견에 대해, 성경적 근거를 통해 반대 의견을 개진한 것도 아니고, 이상한 꾸짖음의 말투로 일관한 사람이 시비를 걸어왔었습니다. 그리고 이게 인터넷의 바람을 타고 더 거센 불길이 돼 타올랐습니다. 그런데 남은 건 감정의 상처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인터넷 댓글 논쟁이 지닌 효용성을 다시 생각하게 됐습니다.

성경에 근거를 둔 반론도 아니고, 훈계조로 덤벼드는 댓글 논쟁에 뛰어들 만큼 지금의 제 삶이 여유롭지 않습니다. 또 기독교인이라면 십자가와 부활에 대한 이해만 일치하면 되고, 나머지는 신앙의 자유를 알아서 만끽해야 한다는 게 제가 견지하는 신앙 철학입니다. 그래서 저와 생각이 다른, 원색의 신앙을 추구하는 기독교인을 저와 비슷한 무채색으로 바꾸려고 시도해 본 적이 없습니다.

이 때문에 그동안은 제 글에 댓글이 달려도, 제가 사역하는 공동체의 교우가 아니면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저와 신앙 철학이 다른 사람에 대한 건 성령님이 알아서 하시라고 놔뒀습니다. 북한에 대해 아마추어 정보를 가진 사람이 대안학교 사역에 불만을 품고 저를 특정 시각으로 몰아붙일 때도 무시했었습니다. 이번에도 이 자세를 견지했어야 했는데, 마음이 흔들렸던 게 패착이었습니다. 덕분에 불편한 논쟁에 발목을 붙잡혀서 한동안 고생했었습니다.

기독교인은 십 원보다 좋은 구원만 받으면 됩니다. 따라서 구원을 약속받았으면 무리해서 불필요한 치장을 한 채, 예배당에서 주도하는 신앙생활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또 기독교가 시작되면서 명분이 사라진 절기는 안 지켜도 됩니다. 그런 절기는 기독교에서 말한 구원과 아무 연관이 없기에 무시해도 됩니다. 다만 이때 예배당을 중심으로 하는 사람들의 궤변이 교회를 중심으로 하는 사람들을 헐뜯으려고 노리고 있으니, 그것에 대한 경계까지 늦추면 안 됩니다. 방심하면 저처럼 엉뚱한 궤변에 휘말려 고생합니다.

'한국 교회의 분열이 우리의 죄 때문'이라고 두루뭉술하게 말했던 모 신학교 교수의 궤변처럼, 세상에는 밥벌이라는 위대한 거룩함 때문에 눈치를 보면서 글을 쓰는 사람도 많습니다. 또 정의·공의는 하나님의 은혜로 얻는 것이기에, 성령님의 은혜가 임하지 않은 예배당의 저들에게는 이런 덕목이 사치품입니다. 따라서 정의·공의가 필수품인 교회의 사람들은 이게 모두에게 필수품으로 인정받을 때까지 기다릴 줄도 알아야 합니다. 예상하지 못했던 일을 겪어보니 정의·공의로운 인터넷 논쟁을 위해 풀어야 할 숙제가 꽤 많습니다.

■정이신 논설위원·목사 △한양대 전기공학과 졸업 △백석대 신학대학원 졸업 △아나돗학교 대표간사 △아나돗공동체 위임목사 △세이프타임즈에 '노희(路戱)와 더불어 책(冊)놀이' 연재, 칼럼집 <아나돗편지(같이 비를 맞고 걸어야 평화가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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