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이신 논설위원·목사
▲ 정이신 논설위원·목사

맹자(孟子)는 향원(鄕原), 비슷하지만 진짜가 아닌 사이비(似而非)에 속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요즘 이 말이 생각나는 일이 생겼습니다. 우리가 처음 북향민을 위한 대안학교를 시작할 때 했던 말이,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 주변에서 들려왔기 때문입니다.

'어, 저거 우리가 처음에 대안학교 시작하면서 시행하자고 했던 프로그램인데, 그때는 그들이 거절했던 것인데, 그런데 왜 저 사람이 마치 자기가 이제 처음으로 저 프로그램을 실행하는 것처럼 말하지.' 궁금해서 까닭을 알아봤더니 얽힌 사연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늦었지만 이런 프로그램을 시행하니 다행이네'라면서 웃어넘겼습니다.

북향민을 위한 대안학교도 현대 사회만큼 복잡다단합니다. 이런 사정을 잘 모르고 북향민 입시생에게 이 프로그램을 시행했던 저는 처음에 약간 이상한 사람으로 오해를 받았었습니다. '이런 사업을 하면 뭔가 생길 것 같으니까 프로그램에 뛰어든 게 아닌가'라는 의구심의 눈초리를 받았었습니다. 그게 아니었기에 그들과 북향민을 위한 프로그램에 관해 논쟁도 했었지만, 그들에게는 제가 돈키호테와 약간 비슷한 사람이었습니다.

슬펐던 건 그들만이 아니라, 북향민 제자들도 처음에는 이 프로그램의 효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북향민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교육법을 쓰는 사람으로 알려졌었고, 한동안 대안학교를 찾는 이가 뜸해지기도 했었습니다. 그 뒤 제가 대표간사로 있는 대안학교가 북향민을 위한 대안학교 사이에서 이런저런 헛소문에 휩싸여 있던 걸 다른 대안학교의 교장 선생을 통해 알게 됐었고, 우리가 쓰는 프로그램을 다른 대안학교에서 그대로 베껴서 사용했다는 걸 대학에 합격한 북향민 제자들을 통해 알게 됐었습니다.

생각하지 못했던 일을 겪었던 황망함을 뒷전으로 밀어둔 채 걷다 보니 시간이 꽤 흘렀습니다. 대안학교를 운영한 지도 10여 년이 넘었고, 강산도 변한다는 이 시간 동안 북향민에게도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코로나19바이러스 사태로 북향민이 많이 줄었고, 탈북하는 사연도 여러 가지로 늘었습니다. 또 북향민 중에 지역구 국회의원도 나왔습니다.

그런데 새로운 변수가 생겨 북향민 중에 중국에서 결혼한 사람들이 낳은 아이들이 입국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들은 부모 중 한쪽, 주로 엄마가 북향민이고 아버지는 중국인입니다. 이렇게 태어난 아이들은 국적이 북한이 아닌 경우가 많고, 중국 사람과 결혼한 엄마의 사연이 각박하기에 한국에 와서도 심리적인 안정이 제대로 유지되지 않는 이가 많습니다.

게다가 이들은 부모가 모두 북향민인 아이들과 달리 국적 문제로 인해 대한민국에서 주는 법적 혜택도 제대로 못 받습니다. 이게 인간다운 삶을 누리기 위해 한국으로 북향민이 오기 시작한 30여 년 동안 우리 주변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윈스턴 처칠은 '현재를 과거와 경쟁시키면 미래를 놓치게 될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북향민이란 한반도의 미래를 과거와 경쟁시키지 않으려면, 부모 중 한쪽만 북향민인 아이들에 대한 배려를 우리 사회가 본격적으로 시작해야 합니다. 그래야 다음 세대에게 넘겨줄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미래와 경쟁할 수 있는 밑그림이 그려집니다.

한반도의 평화를 다음 세대에게 넘겨주기 위해 어떻게 살 것인지를 진지하게 생각할 때마다, 예전에 우리 교회 청년부 카톡방에 올린 글을 보면서 마음을 가다듬습니다.

"한반도의 미래는 남북한의 평화로운 교류 협력으로 가고 있고, 이건 누구도 막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걸 준비해야 합니다. 우리는 통일을 위해 변화된 사회 시스템 중 우리가 감당해야 할 몫을 하나님의 뜻에 따라 만들어 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저는 제가 갈 수 있는 곳까지 최선을 다해 가겠습니다. 그러니 여러분도 여러분이 갈 수 있는 곳까지는 가십시오. 나머지는 하나님이 알아서 하실 것입니다."

■정이신 논설위원·목사 △한양대 전기공학과 졸업 △백석대 신학대학원 졸업 △아나돗학교 대표간사 △아나돗공동체 위임목사 △세이프타임즈에 '노희(路戱)와 더불어 책(冊)놀이' 연재, 칼럼집 <아나돗편지(같이 비를 맞고 걸어야 평화가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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