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이신 논설위원·목사
▲ 정이신 논설위원·목사

대답할 수 없는 내용을 질문하는 사람을 수시로 만납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그건 물음 자체가 잘못됐기에, 제가 답할 수 없는 것이다'라고 하면, 자기를 무시한다고 얼굴을 붉힙니다. 물음이 잘못된 것이기에 대답할 수 없는 것과 엉터리 반응을 보여서 그 사람을 무시하는 건 다릅니다. 그런데 그들은 이게 같다고 합니다.

어떤 사람에게 심리상담을 받으라고 권유한 후, 해당 분야에서 재능기부로 일하는 사람들을 소개해 줬습니다. 처음에는 아주 고맙다고, 그런 사람들을 만나서 너무 다행이라고 제게 수차례 감사를 표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었다고, 그래서 더는 상담을 받기 힘들다고 했습니다. 왜 그렇게 행동했느냐고 물었더니, 복잡해서 말하기 힘들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자기가 말하기가 어려우니, 상담사를 소개해준 저더러 상담사에게 자기의 말을 전해달라고 했습니다.

상담사의 말을 들어보니 그가 제게 했던 말과 달랐고, 둘 사이에서 서로의 말을 전해주다가는 일이 더 꼬일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상담사를 다시 만나서 직접 이야기하는 게 낫지 않겠느냐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내담자가 제게 하는 말이 달라졌습니다.

양측의 주장이 서로 다른 상황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는데, 내담자는 은근슬쩍 제가 그의 말을 더 들어주기를 바랐습니다. 내담자에게 소개해준 사람들은 재능기부를 하는 전문가들입니다. 전문가가 조언했는데도 내담자는 말을 수시로 바꿨고 요구사항도 늘 일방적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후로 알아서 하라고 대응을 안 했더니, 제가 내담자를 이런 지경으로까지 몰아갔다고 저를 욕하고 다녔습니다.

사이비·이단을 추종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기독교상담을 하면서도 비슷한 일을 겪습니다. 사이비·이단에 대한 가치 평가에서, '조시 부시는 조선인민민주주의공화국의 위대한 령도자이시다'와 '○○는 이화여자대학교를 다니는 남학생이다'란 문장처럼 잘못된 판단을 하는 내담자가 많습니다. 이 문장들은 문법적으로 틀리지 않지만, 내용에는 오류가 있기에 가치판단을 할 때 이걸 고려해야 합니다.

또 '하나님도 부인이 있는가'처럼 성경적으로 오류가 있는 질문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질문에 대한 답을 얻었다고 사이비·이단 교주를 추종하면서, 교주의 거짓말이 정답이라고 확신합니다. 더불어 그런 교리를 따르고 있는 내담자도 아주 가치 있는 존재라고 스스로 가스라이팅을 합니다.

성경적 시각으로 보면, 아담·하와의 타락으로 인해 인간이 지닌 모든 감각과 인식능력이 하나님을 제대로 알아볼 수 없게 됐습니다. 따라서 사람이 구원 섭리에 관해 어떤 걸 확신하게 됐다고 말하는 건, 불완전한 인간이 지닌 자신감의 표출일 뿐입니다. 스위스 소설가 알랭 드 보통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런 확신은 척추 위에 있는 '결함 있는 호두(두뇌)'가 주도하는 작용에 따라 크게 달라집니다. 그래서 여전히, 매우 불안합니다.

내담자들에게 자주 듣게 되는 사이비·이단에서 말한 구원에 관한 확신은 현재 완료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부활하지 않은 사람들이 해 아래 세상에 있으면서, 구원에 관한 걸 모두 확신할 수 없다고 합니다. 구원은 부활 이후에 하나님 앞에서 확인되는 기독교의 최종 목적지입니다. 따라서 개인의 확신과 성령님의 보증 사이에 넓은 틈이 생기지 않도록 늘 경계하면서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사이비·이단의 구호를 등에 짊어진 채, 길거리에서 제게 다가와 무언가를 묻는 사람들에게 '앞으로는 그런 질문을 하지 말고,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기 위해 어떤 일을 하고 있습니까'를 물으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려면, 예수님의 제자가 돼 그 나라 안에서 살고 있어야 합니다. 또 어떤 이가 이런 일을 하고 있다면, 그는 이미 예수님께 구원을 약속받은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에게 굳이 엉터리 질문으로 위장 포교를 할 필요가 없습니다.

■정이신 논설위원·목사 △한양대 전기공학과 졸업 △백석대 신학대학원 졸업 △아나돗학교 대표간사 △아나돗공동체 위임목사 △세이프타임즈에 '노희(路戱)와 더불어 책(冊)놀이' 연재, 칼럼집 <아나돗편지(같이 비를 맞고 걸어야 평화가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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