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경희 논설위원·지속가능연구소장
▲ 안경희 논설위원·지속가능연구소장

한국기업의 생태계는 대기업이 주도한다. 메모리 반도체 업계도 예외는 아니다.

지난 20여년 최종 칩 메이커이자 세계 시장점유율 1위에 올랐던 삼성전자는 '갑 중의 갑'이었다.

2012년 절대 위치의 갑과 특허소송을 벌여 승소한 기업이 있다.

한미반도체는 반도체 패키징 공정에서 사용되는 소잉 앤드 플레이스먼트(Sawing & Placement) 장비를 개발해 삼성전자에 납품했었다.

삼성전자가 멀티 벤더 전략을 구사하며 자회사 세크론(세메스)으로부터 유사한 장비를 납품받자 한미반도체는 자사 특허기술을 무단으로 사용했다고 소송을 제기했다. 21억8000만원의 손해배상과 해당 장비의 생산과 판매를 금지하는 승소 판결을 받아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갑과 분쟁을 일으킨 을에게는 응징이 있었다. 삼성전자와의 거래관계는 단절됐다. 2010년 2219억원이었던 매출은 2013년 1132억원으로 쪼그라들었다.

반전은 SK하이닉스와의 협력에 있었다. 2017년 지금 각광을 받고 있는 고대역폭메모리(HBM·High Bandwidth Memory) 반도체를 패키징하는 TC 본더(Thermal Compression Bonder)를 공동으로 개발했다. 이후 SK하이닉스에 들어가는 물량을 한미반도체가 공급하게 된다.

한미반도체는 70% 점유율로 세계 1위가 됐다. 2024년 매출액 5589억원, 영업이익률이 45.7%에 달하는 우량기업으로 성장했다.

한미반도체 제품을 사용한 SK하이닉스도 2024년 전년대비 102.0% 성장한 66조1930억원의 매출과 35.4% 영업이익률을 기록하며 HBM 반도체 절대 강자로 부상했다. 양사 협력의 산물이었다.

그런데 최근 두 기업 사이에 균열 조짐이 보인다. 슈퍼을 딜레마를 의식한 듯 SK하이닉스 역시 멀티 벤더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싱가포르 ASMPT와 한화세미텍으로 장비 공급처를 다변화했다.

과거 삼성전자 세크론 사태와 유사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한미반도체는 한화세미텍으로 이직한 직원을 상대로 한 부정경쟁행위금지 1·2심에서 승소했고, 추가로 기술유출과 특허 침해 혐의로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올해 SK하이닉스는 한화세미텍 장비 12대를 한미반도체 납품가격보다 20% 비싼 가격에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미반도체는 그동안 납품가격을 동결하고 SK하이닉스 HBM 생산 라인에 CS인원을 50~60명 상주해 협력하던 상황이라 배신감을 느꼈을 수 있다.

한미반도체 입장에서는 SK하이닉스 성공을 위해 추가로 CS 서비스를 제공했는데 결국 뺨을 맞은 꼴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 SK하이닉스는 한미반도체 장비 품질과 서비스 수준에 불만이 제기돼 직접 장비 개선팀을 운용하기도 했다고 반박한다.

한미반도체 올해 예상 매출액은 1조를 넘어서지만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다시 어려움에 처할 것이다.

기업의 생태와 경제논리는 냉엄하다. SK하이닉스와 같은 칩 메이커는 과거 일본의 소부장 갈등도 무난히 해결하는 저력을 지녔다.

장비 제조사 한 곳이 바뀌더라도 큰 타격이 없다는 것을 이미 보여준 바 있다.

또 하나의 기술력 있는 소부장 기업. 한미반도체가 에 의해 도태되는 상황을 보게 되는 것은 아닐까.

양사가 감정 싸움, 갈등을 봉합하고 HBM 반도체 호황을  누리길 바란다. 필요하다면 사익이 아닌 국익을 위해 정책 당국의 중재나 조정도 필요하다.

■ 안경희 세이프타임즈 논설위원 겸 지속가능연구소장 △경영학박사 △서강대 경제대학원 대우교수 △나사렛대 경영학과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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