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5일 이재명 대통령은 크림빵 생산라인에서 사망사고가 발생한 SPC삼립 시흥공장 사고 현장을 방문했다.
허영인 SPC 그룹 회장, 김범수 SPC삼립 대표이사, 김희성 SPC삼립 안전보건총괄책임자 등 경영진에게 "돈과 비용 때문에 안전과 생명을 희생하는 것이라면 그건 정말로 바꿔야 한다"고 지적했다.
산업재해 피해자이자 소년공 출신 대통령이 현장 시찰에서 한 지적은 강도 높았다.
이에 SPC그룹은 "8시간 초과 야근 폐지를 위해 인력 확충, 생산품목 및 생산량 조정, 라인 재편 등 전반적인 생산 구조를 완전히 바꿀 계획"이라고 대책을 발표했다.
하지만 중대재해처벌법의 제재와 안전투자에 대한 추가 비용이 현재의 사업 이익을 넘어서지 않는다면 문제 해결은 쉽지 않을 것이다.
지난 칼럼에서 지적했듯이 SPC그룹은 말로는 안전투자를 강조했지만 실제로는 감가상각비 수준의 투자만을 겨우 실행했다. 설비의 전면적인 교체없이 근로시간 조정만으로 예고된 사망사고를 막을 가능성은 높지 않다.
이 대통령의 엄포로 모든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 것인가? 안타깝게도 우리의 현실은 그렇지 않다.
베이커리 업종은 동반성장위원회가 2013년 중소기업적합업종으로 지정한 이후 왜곡된 구조를 보이고 있고 이번 문제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당시 대기업인 신세계와 호텔신라에서 베이커리 사업에 진출하려고 하자 골목상권 보호라는 여론이 들끓었고 베이커리 업종은 중소기업적합업종으로 일사천리로 지정됐다. 2019년에는 자율협약으로 변경돼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 제도는 처음 취지와는 다르게 베이커리 업계의 경쟁구조를 왜곡시켰다. 기왕에 사업에 참여했던 SPC그룹과 CJ그룹은 수혜를 누렸지만, 다른 대기업은 진출하지 못했다. 이는 SPC그룹의 설비 노후화 문제의 주요 원인 중 하나가 되었다. 경쟁이 없으니 최신 설비에 투자할 이유가 없다.
중소기업적합업종 지정의 가장 큰 수혜를 얻은 곳은 대전 성심당, 군산 이성당 등 지방의 전통 있는 베이커리이다. '빵집 순례'라는 신조어 탄생의 배경이 되고 소기의 성과를 본 듯하다.
하지만 또 다른 상황이 펼쳐진다. 베이커리 카페와 커피 전문점의 차이점을 아시는가? 지금 전국에 대형 베이커리 카페가 우후죽순 생기고 있다. 일반인이 보면 이들 둘은 큰 차이가 없지만 세법에서는 엄청나게 차이가 난다.
일반적인 경우 부모 자녀 간 증여세 비과세 한도는 5000만원이지만 창업자금 증여세 특례 한도를 활용하면 그 10배인 5억원으로 늘어난다. 부모가 설립한 중소기업을 자녀에게 증여할 때는 600억원이 비과세된다. 대기업 진출이 제한돼 베이커리 업계에 강도 높은 경쟁이 사라진 사이 100평 이상의 대형 베이커리 카페는 2008년 18개에서 2023년 109개로 6배 급증했다.
베이커리 업종이 증여세 혜택을 줘 가면서 육성해야 할 산업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베이커리 업종에 대한 중소기업적합업종 지정이 장기화되며 기왕에 진출해 있는 허영인 회장이 이끄는 SPC삼립은 중대재해처벌법을 개의치 않는 사망사고의 대명사가 되었고, 증여세 혜택을 노리는 대형 베이커리 카페는 누구도 누리지 못하는 세금 혜택을 보고 있다.
커피전문점의 사업 리스크와 베이커리 카페의 사업 리스크는 거기서 거기인데 말이다.
사회와 경제 현상은 서로 맞물려 돌아간다. 단순히 사고가 발생했을 때 기업을 질책하고 처벌하는 것을 넘어, 근본적인 구조 개선에 나서야 한다. 모든 것을 면밀히 살피는 제도적 개선이 절실하다.
■ 안경희 세이프타임즈 논설위원(경영학박사)·지속가능연구소장 = 한국신용평가를 비롯한 신용평가 업계에서 30여년 이상 기업의 신용평가 업무를 수행했다. 서강대 경제대학원, 성균관대, 서울시립대, 나사렛대, 숙명여대, 방통대 등에서 재무와 회계 관련 강의를 했다. 저서로 ≪깨진 유리창과 시장의 배신≫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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