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여름은 폭염특보가 연일 발효되면서 낮 기온이 35도를 웃도는 날도 잦았다.
이는 지난 30년 동안의 매년 평균기온보다 1~2도가량 높은 수치다.
무더위가 이어지면 자연스럽게 전기 수요도 올라간다.
일반적인 시각에서는 치솟는 전기 수요를 직접적으로 체감하기는 어려운 면이 있다.
여름철 전기 수요가 많다면 미리 전기를 충전해 뒀다가 사용하면 되지 않을까.
반은 맞지만 반은 틀린 말이다.
왜냐하면 전기 수요가 높다는 말은 조금 높은 수준이 아니라 저장된 전기의 양을 훨씬 웃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아직까지 국내에 설치된 에너지저장장치(ESS)는 많지 않다.
결국 에너지·전력 산업계에선 수요 예측에 맞춰 전기를 생산해야 하는 까다로운 작업을 수행해야 한다.
그러나 여기까지 이해하면 또 한 가지 문제점을 발견할 수 있다. 그게 무엇일까.
폭염은 일상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폭염은 산업계에도 기승을 부린다. 어쩌면 더 치명적이라고 할 수 있겠다.
여름철 에어컨, 선풍기, 제습기 등 냉방기 가동이 일상화되면 산업현장에서의 안전사고에 대한 우려가 커지게 된다.
지난달 소방기관과 에너지 공기업을 비롯한 수많은 기관·기업들이 이러한 우려 속에서 여름철 폭염·재난대비 특별 안전점검을 진행했다.
이는 지난 7월 한달간 전력 최대수요가 역대 최고치(1993년 이후 7월 기준)에 도달이 예상되면서 설비 과부하와 고장 가능성에 대한 선제적 대응에 나선 것이다.
전력거래소 전력통계정보시스템에 따르면 7월 평균 최대전력은 85.0GW로 지난해 동기 대비 5.6% 늘었다. 이는 지난 33년간 월평균 최대 전력수요가 가장 많았던 지난해 8월 87.8GW에 96.8% 수준으로 가까운 수치다.
특히 정기적인 안전점검 이행을 확인할 수 없는 민간 사업장 중 일부는 여전히 설비 노후나 관리 소홀로 위험에 노출돼 있다.
실제로 지난달 전남 영암군의 한 변전소에서는 전선 더미의 열 축적으로 인한 화재로 추정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로 인한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주요 설비가 소실되면서 관련 지역의 전력 공급이 끊겼다. 사고는 화재 12시간 만에 완전히 진압됐다.
'산업 현장에선 안전점검이 미흡하게 이뤄지는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산업 현장뿐만 아니다.
일상으로 시선을 돌리면 여름철 전기 화재 위험은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음에도 사람들은 가정 내 화재점검에 무관심한 면이 있다.
서울시 소방재난본부가 공개한 발생한 화재 현황에 따르면 최근 5년간 7036건의 화재 가운데 1843건(26.2%)이 7~8월에 발생했다.
특히 여름철 에어컨 사용으로 인한 화재가 빈번하게 일어났으며 이 가운데 실외기 화재는 대형화재로 번질 수 있는 요인이다.
실외기는 먼지, 낙엽 등 이물질이 쌓인 상태에서 열이 제대로 배출되지 못하면 모터가 과열돼 스파크를 일으키거나 폭발할 수 있다. 베란다, 다용도실 등 좁은 공간에 실외기를 두거나 주변에 인화성 물질이 쌓아 둔다면 위험은 가중된다.
서울 성북구 이정인(42)씨는 "실외기가 터질 수 있다는 건 상상도 못 했다"며 "여름이면 돌리는 에어컨인데 정기 점검은 한 번도 해본 적 없다"고 말했다.
대부분의 가정이 실외기를 '그냥 두는 기계'로만 여기는 현실은 화재위험을 키우는 주요 원인이 되고 있다.
하지만 가정 내 실외기보다 더 잦은 화재 발화지점은 따로 있다.
전선이 복잡하게 연결되고 과부하가 일어나는 '이곳' 혹은 '이것'이 가정 내 주요 화재 발화지점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것이 무엇일까.
바로 멀티탭이다.
소방청 국가화재정보시스템 분석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 발생한 에어컨 화재는 1168건이다. 이 가운데 75.4%는 전선의 접촉 불량, 전선 노후화 등의 전기적 원인으로 발생했다.
지난 2일 부산 기장군의 한 아파트에서 발생한 화재가 8살과 6살 아이의 목숨을 앗아가는 안타까운 사고가 일어났다. 경찰은 에어컨 실내기와 실외기를 하나의 2구 멀티탭에 동시에 연결한 설치 방식이 화재를 발생시킨 것으로 추정했다.
또 지난달 24일 부산진구 개금동 아파트에서도 컴퓨터와 멀티탭 내부 전선과 관련된 것으로 추정되는 화재가 발생해 사망자를 냈다.
이처럼 멀티탭을 중심으로 한 전기적 요인의 화재가 빈번하게 발생하는 가운데 시민들의 멀티탭 안전의식은 어떻게 될까.
한국전기안전공사의 2023년 소비자 인식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54.2%가 "10년 이상 된 멀티탭을 그대로 사용 중"이라고 답했다.
이는 국립전파연구원이 권장하는 멀티탭 사용기간 3~5년의 2배가 넘는 기간이다. 이를 식품으로 비교하면 유통기한이 한참 지난 유제품을 먹는 셈이다.
또 조사에서 응답자 70%는 멀티탭에 유통기한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름철 멀티탭을 이용한 냉방기기를 가동할 경우 일반 멀티탭이 감당할 수 있는 용량을 초과할 수 있기 때문에 더 세심한 관리가 필요하다.
멀티탭 화재 예방을 위해 △전열기 전용과 저전력 멀티탭 구분 사용 △과열방지를 위해 먼지 제거 △멀티탭 사용 연도 스티커 부착 △오래된 제품은 과감히 폐기 △정격 전류를 초과하지 않게 사용하기 등의 안전수칙을 지켜야 한다.
소방청 관계자는 "멀티탭 사용 중 탄 냄새가 나거나 열이 날 경우 즉시 교체해야 한다"며 "두꺼운 매트나 천으로 덮어두는 것도 금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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