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에 사는 60대 여성 김모씨의 휴대폰으로 낯선 번호가 찍힌 문자 메시지가 도착했다.
김씨 앞으로 신청한 적 없는 카드가 배송 중이라는 내용이었다. 카드 신청을 한 기억이 없던 김씨가 의아해하는 사이, 카드사 고객센터를 사칭한 전화가 걸려왔다.
상대방은 최근 김씨의 개인정보가 유출돼 명의도용이 의심된다며 보안 점검을 위해 앱 설치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김씨는 망설였지만 개인정보가 악용될까 두려운 마음에 결국 링크를 클릭해 앱을 내려받았다.
앱 설치가 끝나자 다시 전화벨이 울렸다. 전화기 너머의 목소리는 김씨 명의로 이미 대출이 진행 중이라며 급히 안전계좌로 돈을 이체해야 피해를 막을 수 있다고 재촉했다.
놀란 김씨는 서둘러 자금을 송금했다. 하지만 돈을 이체한 직후 연락이 끊겼다. 그제야 김씨는 보이스피싱에 속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보이스피싱은 음성(voice)과 피싱(phishing)의 합성어로, 전화를 비롯한 통신수단을 이용해 개인정보나 금전을 불법적으로 탈취하는 범죄다.
보이스피싱은 사기 수법 중 하나일 뿐이며, 그 방식이 음성 기반에 국한된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 다양한 온라인 사기 수법이 등장한 지금, 보이스피싱만 경계해서는 전체적인 사기 피해를 막기 어렵다.
해외에서는 부도덕하고 불법적인 방법으로 상대를 속여 금전, 물품, 개인정보, 권한 등을 탈취하는 모든 사기 행위를 스캠(Scam)이라고 부른다.
배송지 정보가 잘못됐다며 확인을 요구하는 메시지는 익숙한 택배 스미싱(문자로 링크 클릭을 유도해 금융정보를 빼내는 사기) 수법이다. CJ대한통운, 한진, 우체국 등을 사칭한 문자에는 의심스러운 URL이 포함돼 있다.
사용자가 실수로 링크를 클릭하면 가짜 배송조회 사이트나 악성 앱 설치 페이지로 연결된다. 이후 본인 확인을 빌미로 전화번호, 계좌번호, 인증번호 입력과 앱 설치를 유도해 스마트폰 내 금융정보와 문자, 연락처를 탈취한다.
명절이나 연휴처럼 택배량이 많은 시기에 집중적으로 퍼지며, 최근엔 실제 배송기사나 카드 배송원을 사칭한 방문까지 이어지는 경우도 있다.
익숙한 메시지일수록 반드시 의심해야 하며, 확인은 공식 앱과 홈페이지에서만 해야 한다.
미국 애리조나에서는 딸의 AI 복제 목소리에 속아 100만달러를 준비할 뻔한 일이 발생했다.
AI 목소리 복제 기술은 SNS, 유튜브 등에 공개된 단 몇 초짜리 음성만으로 특정인의 억양, 감정, 말투까지 정교하게 복제할 수 있다.
사기범은 이렇게 만든 가짜 음성으로 가족이나 지인을 속여 금전을 요구하고, 피해자는 익숙한 목소리에 모든 경계를 허문다.
통화가 아닌 '목소리의 진짜 주인'과 직접 확인하는 것만이 유일한 방어책이 됐다.
하루 3% 수익, 전문가의 도움을 내세운 SNS상의 가상화폐 투자 권유는 이제 단순한 광고가 아닌 정교한 보이스피싱 범죄로 진화했다.
인스타그램이나 텔레그램 DM(상호 간 다이렉트 메시지)으로 접근해 친밀한 대화를 나누며 신뢰를 구축하고, 리딩방 초대나 실시간 수익 인증으로 투자 심리를 자극한다.
초기 소액 수익을 실제로 지급해 신뢰를 얻은 뒤, 더 큰 수익을 위한 추가 투자나 세금·보증금 등의 명목으로 더 큰 금액을 요구한다.
피해자는 본인 명의의 가상계좌에 자금을 입금하지만, 돈은 즉시 해외 암호화폐 지갑으로 빠져나가 사라진다.
뒤늦게 앱은 먹통이 되고 연락이 끊기고 나서야 피해자는 모든 것이 철저히 설계된 가짜 투자였음을 깨닫는다.
SNS를 통한 투자 권유, 특히 고수익을 내세운 제안은 철저히 의심해야 한다. 실제 투자보다 신뢰를 이용한 사기 위험이 더 가깝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가족이 사고 났다거나 수사 협조가 필요하다는 당황스러운 말 한마디가 큰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
보이스피싱을 막기 위해 반드시 기억해야 할 3대 예방 원칙은 △의심하기 △확인하기 △송금하지 않기다.
낯선 번호나 의심스러운 문자는 무조건 의심하고, 어떤 상황에서도 직접 확인이 먼저다.
특히 계좌번호나 보안정보, 송금을 요구한다면 즉시 통화를 끊고 대응을 중단해야 한다.
안전 계좌나 검찰 협조 등은 모두 가짜다. 이 3가지 원칙만 지켜도 당신의 소중한 자산을 지킬 수 있다.
■ 조찬희 세이프타임즈 논설위원·지속가능연구소 연구위원 △컨설팅학박사 △경영지도사 △저서 '트윈 트랜스포메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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