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자기업과 흑자기업의 불공정한 합병 소액주주 반발 거세
구태의연한 대주주 지배구조 강화 시장 목소리에 귀기울여야

▲ 안경희 논설위원·경제금융연구소장
▲ 안경희 논설위원·경제금융연구소장

두산로보틱스와 두산밥캣 합병을 핵심으로 하는 두산그룹의 사업구조 및 지배구조 개편안에 소액주주와 자본시장의 반발이 거세다.

두산그룹의 사업구조 개편안은 사업 시너지 강화로 포장되었지만 숨어 있는 뜻은 대주주 일가의 지배구조 강화라는 것은 시장에 참여한 삼척동자도 알 수 있다.

기업가치를 강탈당하는 두산밥캣에 투자했던 외국인 기관투자자 테톤캐피탈은 지난 22일 한 세미나에 참석해 불공정한 합병비율에 실망해 보유지분 모두를 매각했다고 밝혔다. 국내 최대투자자인 국민연금도 합병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며 매수청구권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정치권에선 더불어민주당 김현정 의원이 이번에 문제가 된 시장가치뿐만 아니라 자산가치, 수익가치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투자자의 이익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산정된 공정가치로 합병가액을 산정하도록 계열사간 합병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는 '자본시장법 개정안'을 발빠르게 발의했다.

감독당국인 금감원은 두산로보틱스의 합병과 포괄적 교환·이전에 대한 증권신고서에 대해 중요사항의 기재나 표시 내용이 불분명해 투자자의 합리적인 투자판단을 저해할 수 있다고 보고 정정신고서를 제출하도록 요구했다.

두산그룹은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관련 내용을 보완해 정정신고서를 제출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그간의 경험으로 볼 때 금감원의 요구는 시장의 첨예한 관심이 사그라들거나 제도적 개선이 이루어질 때까지 시간을 벌어 놓은 것일 뿐, 형식적으로 요구한 내용이 보완되었다고 증권신고서를 쉽사리 승인하지 않을 공산이 크다.

두산그룹은 식품에서 중공업 그룹으로 환골탈태했다. 한국중공업(현 두산에너빌러티)을 인수하며 시작한 중공업의 길은 쉽지 않았다. 여러 번의 위기 속에 그룹의 모태와 같았던 두산건설의 부실을 처리하면서 두산인프라코어 등 일부 계열사를 그룹에서 떠나보내는 피를 깎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2020년 박정원 회장 등 대주주는 두산퓨어셀 지분 5740억원을 두산에너빌리티에 무상증여해 구조조정을 도운 바 있다. 대주주의 이익만을 우선하는 우리나라 재벌 지배구조 하에서 이례적인 사례로 칭찬받아 마땅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떠한가?

수 많은 계열사의 인수·합병과 분리매각을 주도해 온 두산그룹의 M&A 전문가들이 왜 이런 선택을 했을까?

현대차그룹은 2018년 현대모비스와 현대글로비스를 분할·합병하여 정의선 회장과 정몽구 명예회장 중심으로 지배구조를 재편하려 했지만 국내외 기관투자가, 주요 의결권자문사 등 시장의 반발에 계획을 접었었다.

그 때도 각 사의 기업가치 적정성에 대한 논란이 일었지만 지금처럼 터무니없지는 않았다.

연간 1조원이 넘는 흑자기업 두산밥캣과 적자기업 두산인프라코어의 시장가치만을 반영한 합병비율은 누가 봐도 물음표를 달 수밖에 없다.

두산그룹은 시장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 단순히 두산그룹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나라 자본시장에 대한 신뢰도와 최근 추진하고 있는 밸류업 프로그램 성공 여부도 여기에서 판가름 날 수 있다.

정정신고서에 합리적인 합병비율이 재 산정돼 담기길 바란다.

■ 안경희 논설위원·경제금융연구소장(경영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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