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 자본 앞세워 지역 상권 침탈하는 대기업의 교묘한 행태
공정위 시정명령 내렸지만 인력부당지원만 문제삼아 한계노출

▲ 안경희 논설위원·경제금융연구소장
▲ 안경희 논설위원·경제금융연구소장

최근 주요 그룹에서 대주주와 소액주주간 갈등이 첨예하다. 이른바 대주주와 소액주주 간 대리인비용의 문제다.

그 시발은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두 회사의 합병이다. 중복 사업 조정과 비주력 사업 정리, 계열사 간 시너지 창출을 통한 그룹 사업구조 개편 작업의 일환이라는 표면적인 이유와는 달리 다음 번 그룹 회장이 될 이재용 씨의 경영권 승계와 지배력 강화가 그 목표였다는 것을 부인하기 어렵다. 이 과정에서 소액주주의 권익은 뒷전으로 밀렸다.

최근 두산그룹의 두산 밥캣-로보틱스 분할합병 이슈, SK그룹의 이노베이션-E&S 합병, 한화그룹의 지주사인 한화와 한화오션, 한화솔루션 간의 사업분할 재합병 이슈 역시 대주주의 지배력 우선과 승계구도 정리 과정에서 소액주주의 이익이 훼손됐다는 점에서 삼성그룹의 경우와 크게 다르지 않은 사건이다.

여기에 한 사건이 더해진다. 공정거래위원회 발표 내용에 숨어 있는 비상장사의 대리인비용 문제를 살펴보자.

공정위는 지난 13일 CJ프레시웨이(이하 프레시웨이)가 식자재 유통 시장의 지역 상권을 침해하고 중소상공인들과의 상생의도보다는 지역 식자재 시장을 신속하게 선점한 뒤 구 프레시원 11개사에 자사 인력 221명을 파견해 334억원 상당의 인건비를 대신 지급한 행위가 부당지원 행위에 해당해 시정명령과 245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고 밝혔다.

합작법인을 설립할 때 프레시웨이가 물류센터와 관리 직원을 제공하고 지역 소상공인들은 영업권을 갖는 형태를 취했던 점을 감안하면 부당지원 행위가 아니라 합작 주체 간 계약에 따른 '계약이행' 행위였다고 항변하는 프레시웨이의 주장에 설득력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프레시웨이가 지정하는 중소상공인들에게만 프레시원을 설립하도록 했고 영업망을 인수한 이후 이들 지분을 순차적으로 매입해 프레시웨이가 궁극적으로 100% 주주가 되는 것을 처음부터 계획했다는 점에서 중소기업 상권을 침탈했다고 비난받을 수밖에 없다.

이 과정에 비상장사 대리인비용 문제가 숨어 있다. 프레시웨이가 소액주주인 중소상공인들의 지분에 대해 공정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았다면 소액주주의 재산권이 침해되고 대리인비용이 발생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상장되어 있지 않은 비상장기업은 공정시가가 없어 기업가치 산정에 어려움이 많다. 공정위는 이 어려운 길을 가지 않고 쉽게 인력 부당지원만을 문제 삼았다.

프레시웨이는 프레시원을 100% 지배하기 위해 애초 프레시원 사업모델을 가지고 있던 지역주주들의 존재 자체를 사업 리스크로 지목하고, 모든 지역주주들을 이들의 경제적 성과와 무관하게 '정리대상'화 했다.

특히 수도권 대형법인인 프레시원동서울(지역주주 32%, 5명)과 프레시원강남(지역주주 48%, 8명)은 프레시웨이 지분이 낮은 주주리스크 법인으로 선정하고 2021년 내 지분을 모두 매입하기 위해 103억원의 예산을 배정하고 대규모 팀을 운영했다.

지분 매각에 협조하지 않을 경우에는 개인 비위나 신용불량과 국세체납 같은 문제점을 활용해야 한다고 내부 문건에 적시하는 등 매우 강압적이고 비열한 방식을 사용했다.

이런 행태로 볼 때 이들 지역주주들이 공정하고 정당한 대가를 지불 받았을 가능성은 높지 않다. 상대적 약자인 지역주주들은 모든 영업망을 뺏기고 어디 하소연도 못하며 프레시웨이가 일방적으로 정한 가격대로 지분을 넘겨 줬을 터다.

대한민국의 대주주와 소액주주간 대리인비용 발생 문제는 상장사만의 문제가 아니다. 비상장사의 숨어 있는 대리인비용 문제도 면밀하게 살펴볼 것을 관계 당국에 촉구한다. 프레시웨이의 경우 정당한 가격이 지역주주에게 지불되었는지가 핵심이다.

■ 안경희 논설위원·경제금융연구소장(경영학박사)

저작권자 © 누구나 안심하고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언론 세이프타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