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하철 바닥에 핑크카펫 자리임을 알리는 스티커. ⓒ 전형금 논설위원
▲ 지하철 바닥에 핑크카펫 자리임을 알리는 스티커. ⓒ 전형금 논설위원

출근길마다 마주치는 사람들이 있다. 그 중 한 청년이 오늘도 눈에 들어왔다. 그는 매일 아침 7시 34분경 대방역에서 천안행 급행열차를 탄다. 9통 2반(전철 9번째 차량 2번째 문)으로 승차해 거리낌없이 핑크카펫에 앉는다. 9통 안에 다른 자리가 비어 있어도 꼭 두 좌석뿐인 핑크카펫 자리를 고집한다. 그러고는 눈가리개를 하고 두툼한 장갑을 끼고 태연히 잠을 청한다. 그가 내리는 곳은 금정역이다.

우리는 지하철이나 전철의 각 칸마다 두 좌석을 임산부 배려석으로 마련해 놓고 있다. 일명 핑크카펫. 내일의 주인공을 맞이하는 자리다.

핑크카펫은 2013년부터 시행했던 임산부 배려석을 서울시가 한눈에 알아보고 임산부에게 양보할 수 있도록 2015년 핑크카펫 디자인을 적용해 만들었다. 좌석-등받이-바닥까지 '분홍색'으로 연출해 주목도를 높였다. 좌석 바닥에는 '내일의 주인공을 위한 자리입니다'라는 문구도 넣었다. 이후 2018년부터 서울지하철 전체에 확대적용 시행했다.

그런데 우리는 수시로 그 자리에 앉아 있는 남녀 학생을, 임산부가 아닌 듯한 처자를, 중·노년의 여성을, 심지어 그 자리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남성을 볼 수 있다. 오히려 임신한 여성을 찾아보기가 힘들다. 시민들이 눈꼬리를 치켜올리는 대목이다.

▲ 전형금 세이프타임즈 논설위원
▲ 전형금 세이프타임즈 논설위원

한편에서는 핑크카펫에 대해 불만인 사람도 있다.

임산부나 노약자 좌석이 지하철 각 칸마다 마련돼 있는데 또 하나의 자리를 만든 게 아닌가. 법적 구속력도 없는데 신고를 한다. 출퇴근 만원 지하철에서도 앉지 못하고 빈자리인 채 운영된다. 배려는 베푸는 사람의 권리이지 의무가 아니다.

나름 일리 있는 불만들이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을 바꾸면 어떨까 싶다. 서울시가 이 자리를 만든 이유는 내일의 주역이 될 아이를 낳을 임산부들에 대한 배려였다. 임신 초기든 만삭이든 임산부들의 힘듦을 조금이나마 서로 나누자는 취지다. 그나마도 아이의 울음소리를 들을 수 없는 우리의 현실에서 자리 양보 하나로 한 생명이 태어난다면 나도 애국자가 되는 것이다.

4년 전 배우 이윤지가 핑크카펫 자리에 앉은 것을 인증하는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용기내어 #기쁘게 #첫착석 #고맙습니다'라는 글과 함께. 이에 대해 누리꾼들은 세 번의 유산 경험을 가진 이윤지에게 "눈치 보지 말고 당연히 앉아도 되는 자리"라며 응원했다.

그렇다. 핑크카펫은 눈치 보지 않고 당당하게 앉을 수 있게 마련된 자리다. 그러기에 핑크카펫 자리는 언제나 비워두자.

내 몸이 힘들어도 정책에 불만이 있더라도 내 앞에 서 있는 임산부가 내 딸일 수도 있고, 며느리일 수도 있고, 내 친구의 여친일 수도 있고, 친구의 딸·아내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갖고 배려하자.

혹여 너무 힘들어 잠시 엉덩이를 붙였더라도 임산부가 보이면 눈 더 꾹 감고 자는 척하지 말고 벌떡 일어나 양보하자.

늦었다고 생각했더라도 양심의 소리에 귀기울이고 일어나자. 나도 누구의 아빠고 엄마고 아들딸이고 언니이고 형이고 동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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