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장은 쌓는 사람의 마음에 따라 그 쓰임새가 달라진다. 내 땅을 따지는 사람에게는 경계가 되지만 자연을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나눔이 된다. 이 때 담장은 벽이 아니라 미학이 된다.
예로부터 담장은 내 것을 구분하는 차가운 평면이 아니었다. 보는 이로 하여금 위압감을 주는 모습은 더더욱 아니었다. 발 돋음만 하면 마당을 훔쳐볼 수 있는 높이였다. 너무 높지도 낮지도 않은 우리 민족 평균키에서 살짝 높은 다정함이 묻어 있다.
담장은 집과 집을 나뉘되 방어막의 역할이 아닌 서로 간의 소통을 목적으로 한다. 어울림의 형식을 통해 서로의 아름다움을 배가시킨다. 담장위에 살포시 얹혀진 햇살은 그대로 이웃으로 옮겨져 또 하나의 햇살이 된다. 담장은 이처럼 소유가 아니라 나눔의 역할을 병행했다.
담장은 또한 사물을 돋보이는 역할을 한다. 여름날 담장위에 올려진 능소화를 보라. 임금에 대한 그리움의 애틋한 전설이 아니더라도 보는 이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담장은 훌륭한 배경이 되기도 한다. 잘생긴 돌담 앞에 서 보라 사람은 모델이 되고 작은 돌 하나도 예술이 된다.
우리 담장은 지방의 선비 집에서도 그 아름다움이 한 것 묻어 있다. 담백하고 순수한 아름다움이 보는 이의 눈을 즐겁게 한다. 화려하고 웅장한 담장에 비해 결코 손색없는 잔잔한 감동이다. 시루떡 같은 포근함은 당장에 라도 말을 걸어올 것 같다. 담 너머 주인장과 술 한 잔 기울이고 싶은 마음이다.
요즘은 너도 나도 담을 쌓고 있다. 그 담이 남과의 구분이 아닌 남과의 어울림으로 승화되어야 한다. 누군가와 사소한 일로 마음을 닫았다면 그 담장위에 햇살 한 줌 얹혀 보라, 그대로 닫혀진 상대의 마음으로 옮겨질 것이다.
마음의 벽은 점점 높아지지만 그만큼 마음을 다치고 있는 시대다. 우리 모두 자연의 일부임에는 다를 바 없다. 담장의 의미를 다시금 새겨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