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 합의보다 굴욕적 징용피해 보상
'대승적 결단' 징용해법 거센 역풍 우려

▲ 박진 외교부 장관이 6일 외교부 청사에서 2018년 대법원의 배상 확정판결을 받은 국내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행정안전부 산하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 조성한 재원으로 판결금을 대신 변제하는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 연합뉴스
▲ 박진 외교부 장관이 6일 외교부 청사에서 2018년 대법원의 배상 확정판결을 받은 국내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행정안전부 산하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 조성한 재원으로 판결금을 대신 변제하는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 연합뉴스

윤석열 정부가 대법원에서 확정판결한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보상을 국내 기업들로부터 거둔 자금으로 지급하겠다고 밝혔다. 2018년 대법원 판결이후 5년 이상을 끌어온 전범기업에 대한 배상판결은 결국 피해자가 피해자에게 배상을 해주는 이상한 상황으로 진행되고 있다.

정부는 지난 5년간 최악이었던 한일 관계를 복원하기 위한 '대승적인 결단'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정부의 결정은 문제점이 한두 개가 아니다.

우선 일본의 사죄와 사과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전범기업에 대한 배상 소송은 단순히 못받은 임금을 받아내기 위한 것이 아니다. 명백한 전쟁범죄를 인정하고 사죄하라는 것이 이 소송의 의미이자 취지다.

일본은 1965년 한일청구권 협상을 근거로 사죄를 거부해 욌다. 김대중-오부치 선언에 '통절한 반성과 사죄'라는 표현이 처음 들어갔지만, 이후 아베정권은 오부치 선언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고, 앞으로 사죄를 하지 않겠다는 담화까지 발표했다. 

일본은 역대 내각에서 밝힌 입장을 계승하겠다고 밝혔다. 여기에는 오부치 내각의 사죄도 들어가 있지만, 아베의 담화도 역시 포함된다. 이런 애매하고 사실상의 거부 의사가 담긴 표현조차 총리의 직접 언급이 아닌 참의원 답변 형식으로 이뤄졌다.

두 번째는 어째서 한국 기업만 배상 참여해야 하는지 알 수 없다. 일본 전범기업의 자발적 참여를 기대한다고 하지만, 그야말로 기대일 뿐 참여가능성은 사실상 없다고 봐야 할 것이다. 

참여하는 한국기업이 청구권자금 수혜기업으로 정해진 것도 이해하기 어렵다. 일본이 지급한 자금은 사실상 자신들의 식민지배에 대한 배상금이나 다름없는데 이 자금이 어떻게 '수혜'일 수 있는가. 그렇게 따지면 6·25라는 최악의 전쟁기간 동안 미군의 병참기지 역할을 하며 전후 재건의 기틀을 마련한 일본은 한국에 대해 얼마나 큰 '수혜'를 입은 것인지 판단해 봐야 할 것이다. 

▲ 정의기억연대, 민족문제연구소, 민주노총 등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한일역사정의평화행동 관계자들이 6일 오후 서울광장에서 윤석열 정부가 발표한 강제동원 피해배상 해법을 규탄하는 촛불집회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 정의기억연대, 민족문제연구소, 민주노총 등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한일역사정의평화행동 관계자들이 6일 오후 서울광장에서 윤석열 정부가 발표한 강제동원 피해배상 해법을 규탄하는 촛불집회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세 번째는 우리 사법부의 판단을 행정부가 무력화한 것이다. 대법원은 명백한 불법행위인 강제징용을 인정하지 않고서 결정한 일본 사법부의 판결을 국내에 적용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럼에도 윤석열 행정부는 범죄행위 주체인 일본측의 책임을 아무런 근거없이 면제해버린 것이다. 

더구나 생존해 있는 피해자들이 한국기업의 배상을 거부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는데도 이를 강행한 것은 더 납득할 수 없다.

네 번째로 이번 합의는 박근혜 정부 당시 굴욕적 합의라며 거센 반발을 불러왔던 위안부 합의보다도 더 후퇴한 합의다. 위안부 합의는 합의문안에 '불가역적'이라는 표현으로 국내에 반발을 불러왔지만, 미흡하나마 일본의 '10억엔 거출'이라는 소극적인 '상응조치'라도 있었다.

하지만 이번 조치는 일본측의 배상책임이 아예 면제된 것은 물론이고, 사과조차 사실상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더 심각하다. 그러면서 이번 사안과는 전혀 관련성이 없는 '미래청년기금'(가칭)을 마련한다고 발표한 것은 지지층으로 인식되는 20, 30대 젊은 세대들 의식한 정치적 판단으로 보인다.

더구나 배상책임에 대한 법적절차가 아직 마무리되지 않은 상황에서 한국기업의 자금으로 배상이 이뤄진다면 혼란과 비판이 가중될 것이 분명하다. 대법원은 배상을 거부하고 있는 미쓰비시 등 전범기업에 대해 자산압류절차에 들어간 상태다. 

▲ 정부가 6일 일본 기업을 대신해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손해배상금을 지급하는 '제3자 변제' 방안을 발표했다. 사진은 지난 2012년 6월 8일 일제 강점기에 강제 동원됐던 근로정신대 할머니들과 일본 시민단체가 도쿄 후지코시(不二越)강재주식회사 본사 앞에서 사죄와 배상을 요구하는 모습.  ⓒ 연합뉴스
▲ 정부가 6일 일본 기업을 대신해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손해배상금을 지급하는 '제3자 변제' 방안을 발표했다. 사진은 지난 2012년 6월 8일 일제 강점기에 강제 동원됐던 근로정신대 할머니들과 일본 시민단체가 도쿄 후지코시(不二越)강재주식회사 본사 앞에서 사죄와 배상을 요구하는 모습. ⓒ 연합뉴스

정부의 이번 조치는 한일 갈등해소와 '엄중한 정세'를 감안한 것이라고 밝혔지만, 갈등해소가 아닌 갈등의 시작일 수 있다는 점에서 심각하다. 피해자 소송이 여전히 66건이나 진행중이다. 대법원의 배상판결이 이뤄진 이상 하급법원에서도 대법원의 판례를 따를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되면 이번 결정은 오히려 혼란을 가중 시킬 것이 분명하다.

한국외교의 완패, 굴욕적 외교라는 여론이 확산되면서 오히려 역풍을 맞을 가능성도 높다.

정부의 이번 결정이 과연 누구를 위한 결정인지 알 수 없다. 미국 정부는 왜 한국 정부의 발표가 나오자마자 득달같이 환영의사를 밝혔는지. 휴일 개념이 철저한 미국에서 그것도 대통령과 국무장관이 휴일 저녁에 한꺼번에 성명을 낸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그만큼 한일관계 개선에 목말랐던 것은 당사자인 한국과 일본이 아닌 중국을 견제해야 할 미국이라는 점을 반증하는 것은 아닌지. 그리고 이 과정에서 미국의 개입이나 영향력 행사는 없었는지도 살펴봐야 할 문제다.

윤 대통령은 다음달 국빈 자격으로 미국을 방문한다. 5월에는 일본 히로시마에서 G7정상회담에 참관국 자격으로 참석한다. 공교롭게도 윤 대통령의 해외순방을 앞두고 이뤄진 징용배상조치가 대통령의 외교성과를 위한 사전 포석이 아니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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