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학폭 감싼 정순신 변호사 국가수사본부장 사퇴
부실한 인사검증시스템 재정비하는 계기로 삼아야

▲ 최근 방영되고 있는 드라마 일타스캔들. 왜곡된 입시경쟁과 사회현실을 풍자하고 있다. ⓒ tvn
▲ 최근 방영되고 있는 드라마 일타스캔들. 왜곡된 입시경쟁과 사회현실을 풍자하고 있다. ⓒ tvn

최근 tvn에서 방영되고 있는 드라마 '일타스캔들'은 외견상으로는 유명 학원 강사와 조카에게 헌신적인 이모의 로맨스를 그리고 있지만, 실상은 양극화한 사회 현실과 왜곡된 입시경쟁을 풍자하고 있다.

드라마에서 반찬가게를 하는 이모를 둔 학생은 사회적으로 영향력 있는 부모들 둔 아이에게 학원의 특별반 수강자격을 뺏기고, 다른 학부형들 역시 이런 부조리에 미필적 고의로 동참한다. 이들에게 학원 특별반은 '특별한' 자신들의 사회적 지위를 재확인하는 불가침의 영역과 같은 곳이다.

'일류대학'과 '사회적 지위'가 연계되고 심지어 살인까지 발생하는 기이한 현상을 풍자한 드라마가 이미 여러 차례 만들어질 만큼 이런 문제는 이미 우리 사회에 고착화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드라마 같은 상황이 현실에서 벌어졌다.

▲ 아들의 학교폭력 문제로 국가수사본부장 임용 하루 만에 사퇴한 정순신 변호사. ⓒ 연합뉴스
▲ 아들의 학교폭력 문제로 국가수사본부장 임용 하루 만에 사퇴한 정순신 변호사. ⓒ 연합뉴스

국가수사본부장에 임명된 정순신 변호사가 임명 하루 만에 사퇴했다. 아들의 학교폭력 문제가 불거졌기 때문이다. 학교폭력만 제기됐다면 큰 문제가 아닐 수 있었지만, 학폭 사태 이후 보인 정 변호사의 태도가 문제가 됐다.

정순신 변호사의 아들은 유명한 자립형 사립고에 입학했다. 정씨는 기숙사에서 함께 생활한 동급생에게 듣기에도 민망한 폭언을 지속적으로 반복했다.

언어 폭력에 시달린 동급생은 성적이 급격히 하락한 것은 물론, 정신과 치료를 받을 정도로 극심한 불안증세를 보였다. 심지어 극단적 선택을 시도한 일도 있었다.

판결문에 따르면 정씨는 동급생에게 "제주도에서 온 돼지새끼", "빨갱이 새끼"같은 폭언을 반복했다. 이 폭언에는 양극화하고 왜곡된 우리 사회의 불편한 모습이 그대로 담겨있다.

'제주도에서 온'이라는 전제에는 자신의 출생지만으로 우월적 지위를 갖고 있는 것으로 오판하는 '서울' 학생의 비뚤어진 편견이 담겨 있다. 지역갈등을 정치적으로 악용하는 정치인들의 탓인가.

한 걸음 더 가 동급생을 '돼지새끼'라고 부르면서 외모까지 비하하고 있다. 성형에 매몰되고 외모가 개그의 대상이 되는 우리 사회의 비뚤어진 외모지상주의가 투영된다.

'빨갱이 새끼'라는 말은 어떤가. 고등학생이 갖는 정치적 성향이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과격한 발언이다. 동급생이 어떤 정치적 입장을 가졌는지는 알 수 없지만, 자신과 다른 시각을 가졌다고 해서 이런 극단적인 비난까지 해야 하는 것인지.

심지어 가해 학생은 자신의 아버지가 '검사'라는 사실을 공공연하게 언급했고, 아버지의 '인맥'까지 자랑삼았다는 것이 주변 학생들의 증언이다.

문제는 이 사안을 심각하게 인식한 학교에서 전학조치를 내렸는데도 불구하고 가해학생의 부모는 재심청구에 이어 소송까지 제기해 대법원까지 재판을 이어갔다는 점이다. 소송기간 동안 가해학생은 그대로 학교에 남아있었고 1년이 지나서야 전학조치가 이뤄졌다.

더구나 1·2심에서 모두 패소했음에도 상소를 거듭하며 대법원의 판단까지 요구한 것은 아들의 잘못은 물론 학교의 조치를 전혀 인정하지 못하겠다는 의지가 담긴 것이다. 또한 피해학생에 대한 미안함이나 가해학생의 잘못을 고치려는 의사가 전혀 없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학교 자치위원회 과정에서도 가해학생을 비호하거나 책임회피하는 모습을 보였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증언을 통해 확인되고 있다.

자신이 특별한 우월적 지위에 있다고 생각하는 학생과 이를 비호하는 부모의 모습에서 위에서 언급한 드라마가 연상된다.

▲ 정순신 변호사가 임명 하루 만에 사퇴하며 국가수사본부 운영에도 차질이 불가피하게 됐다. ⓒ 연합뉴스
▲ 정순신 변호사가 임명 하루 만에 사퇴하며 국가수사본부 운영에도 차질이 불가피하게 됐다. ⓒ 연합뉴스

더 큰 문제는 이런 사안이 이미 5년 전에 언론을 통해 보도가 됐음에도 인사검증 과정에서 전혀 걸러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1차적 인사검증의 책임은 법무부가 갖고 있다.

그런데 한동훈 법무장관과 정순신 변호사는 공교롭게도 사법연수원 동기생이다.

경찰의 독립적 수사를 보장하기 위해 만든 국가수사본부에 법무장관과 동기인 '검사 출신'을 기용하는 것도 납득이 안되지만, 언론보도까지 됐던 사안을 제대로 검증하지 못한 인사시스템도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이후 검찰의 권한 강화와 국정 장악에 대한 우려가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이런 문제 인사가 검증시스템에서 걸러지지 않는 것이 특별히 우월적 지위에 있다고 판단하고 있는 어떤 조직의 제 식구 감싸기가 아니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저작권자 © 누구나 안심하고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언론 세이프타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