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 근로시간 개편방안 놓고 '우왕좌왕'
노동계 분열 위한 목적 아닌 국민 위한 방안돼야

▲김은혜 대통령실 홍보수석이 15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고용노동부가 최근 발표한 근로시간 제도 개편안과 관련한 브리핑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김은혜 대통령실 홍보수석이 15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고용노동부가 최근 발표한 근로시간 제도 개편안과 관련한 브리핑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윤석열 정부의 근로시간 재편방안을 놓고 혼선이 빚어지고 있다. 윤 대통령은 지난 14일 고용노동부가 입법예고한 근로시간제도 개편방안을 재검토하라고 지시했다. 노동부가 개편안을 발표한 지 불과 일주일만이다.

그런데 윤 대통령의 지시가 이뤄진 지 몇 시간도 되지 않아 한덕수 총리는 "입법예고 법안에 대해 수정을 할 생각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대통령의 지시와 반대되는 의견이 총리실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자 바로 다음날인 15일 청와대 김은혜 대변인은 예정에도 없던 브리핑을 통해 "노동약자의 여론을 세밀하게 청취한 뒤 방향을 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여론 청취'를 통해 반대 여론이 광범위하다고 판단되면, 어떤 방식으로든 노동부의 개편안을 수정할 것이라는 의지가 읽힌다. '원안을 지킬 것'이라는 입장을 밝힌 한덕수 총리의 발언을 하루 만에 무색하게 만든 모양새다.

노동자의 생존권이 달린 노동정책이 불과 일주일 사이에 뒤바뀌며 우왕좌왕하는 모습이 연출된 것이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지난 6일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근로시간 제도 개편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지난 6일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근로시간 제도 개편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 연합뉴스

바빠진 곳은 노동부다. 노동부는 당초 16일에 예정된 포괄임금 오남용 근절대책 발표를 연기한다고 밝혔다. 노동시간이 정부안대로 유연해지면 포괄임금제가 적용되는 직종에서 '공짜야근'이나 '야근갑질'같은 부당행위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부랴부랴 보완책을 마련한 것이다. 하지만, 대통령실에서 사실상 재검토를 지시한 이상 포괄임금제 보완책은 의미가 없어졌다.

노동부가 입법예고한 근로시간 개편방안의 골자는 주 52시간으로 제한하고 있는 근로시간을 최대 69시간까지 늘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하지만 현행 주 52시간도 OECD기준으로 보면 여전히 최장시간 노동이다.

한국행정연구원이 15일 밝힌 '한국과 주요 선진국 노동시간 규제현황 비교'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노동자의 연간 실 노동시간은 2021년 기준으로 OECD 평균시간보다 199시간 길다.

▲15일 한국행정연구원의 '한국과 주요 선진국 노동시간 규제 현황 비교'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전체 취업자의 연간 실노동시간은 2021년 기준 1천915시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1천716시간)보다 199시간 길다.ⓒ 연합뉴스 그래픽
▲15일 한국행정연구원의 한국과 주요 선진국 노동시간 규제 현황 비교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전체 취업자의 연간 실노동시간은 2021년 기준 1천915시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1716시간)보다 199시간 길다. ⓒ 연합뉴스 그래픽

독일과 비교하면 한국의 노동자들은 연간 566시간을 더 일하고 있다. 주 52시간제를 적용한 2021년을 기준으로 해도 여전히 우리 노동자들은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노동시간을 늘리려는 개악에 가까운 노동부의 개정안에 대해 노동계는 강력히 반발했지만, 정부는 예정대로 강행할 의사를 분명히 했다. 그런데 윤석열 대통령의 느닷없는 지시로 노동부의 개편안은 조정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노동시간 개편안은 대선 후보 시절 '주 120시간 노동'을 주장해 세간을 놀라게 했던 윤 대통령의 평소 지론이 반영된 정책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평소 소신을 굽히지 않기로 유명한 윤 대통령이 자신의 '지론'을 굽히면서까지 노동계의 반대의견을 수렴하기로 한 이유는 뭘까.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7일 국무회의를 주재하기 앞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7일 국무회의를 주재하기 앞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윤 대통령은 근로시간 재검토를 지시하면서 '다양한 의견' 특히 'MZ세대'의 의견을 면밀히 청취할 것을 요구했다. 'MZ세대'가 눈에 띤다.

윤 대통령이 지칭한 'MZ세대'와 지난달 21일 출범한 '새로고침 노동자 협의회'가 오버랩된다. 사무직 노조가 연대한 '새로고침 노동자 협의회'는 구성원의 연령대와 추구하는 지향점이 기존의 양대 노총과 뚜렷하게 구별된다.

정치성을 배재하고 노동조합에서 오히려 소외된 사무직과 기술직의 노동환경 개선이 목표다. 건전한 방향이다. 기존 양대 노총의 문제점을 보완할 수 있는 좋은 대안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문제는 정치성을 배제하겠다는 'MZ세대 노조'가 정치적으로 이용되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윤 대통령이 노동시간 유연화 법안 재검토를 지시한 것은 노동계, 더 정확하게는 양대 노총의 반대 때문이 아니라, 양대 노총의 대안세력으로 떠오르고 있는 'MZ세대 노조'까지 반대한 것이 크게 작용했을 가능성이 높다.

어떤 이유로든 개악에 가까운 근로시간 개편방안이 재조정되는 것은 반가운 일이지만, 여기에 '정치적 계산'이 더 크게 작용한 것이라면 문제가 있다. 만일 'MZ세대 노조'와 '정치투쟁만 일삼는 노동계'를 구분하고 노동계를 분열시키려는 의도가 잠재돼 있다면 앞으로의 노동정책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 것인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윤석열 정부에서 노동개혁을 국정의 중점과제로 추진하는 것을 감안하면 더 그렇다.

그리고 이 정책 방향이 노동계를 분열시키고, 특정 노동 상급단체를 무력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악용된다면 오히려 우리의 노동환경은 악화될 것이 분명하다. 특정 세대가 아니라 국민 전체를 바라보는 정책이 마련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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