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졸업 후 사회생활을 청소년단체(NGO)에서 시작했습니다. 대학을 다니는 동안 공부했던 ○○공학은 도무지 제 적성과 맞지 않았습니다. 군대에 갔다 온 후 복학했던 한 해 동안 대학 생활의 마지막 시간을 보내며 생각했었습니다. 그냥 취업을 할 것인가, 새로운 길로 한 번 가 볼 것인가. 그때 알고 지냈던 사람이 제게 손을 내밀었고, 그 손길을 따라 최종적으로 다다른 곳이 청소년단체와 청소년지도사였습니다. 당시 제 짧은 소견으로는 제가 새롭게 발견한 민중(民衆)이 청소년이었습니다.

IMF가 터지고 재정압박으로 근무하던 청소년단체를 떠나야 했습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예전에 근무하던 청소년단체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북향민 학생들에게 국어와 논술을 가르쳐 줄 수 있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아주 당연히 재능기부라고 했습니다.

북향민 상담 전문가에게 이런 저런 교육을 받고, 학생들을 만나보니 국어와 논술이 아닌 독서훈련부터 진행해야 하는 상태였습니다. 북향민 학생들과 어울리기로 하고 같이 일을 했었던 과외공부방을 운영하던 지인에게 이들을 위해 그곳에서 하루만 무료로 수업을 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가 퇴짜를 맞은 후, 서울에 있는 모대학의 기독교 동아리 간사를 맡으면서 그 대학의 동아리방에서 북향민을 위한 국어ㆍ독서ㆍ논술수업을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학교에 별다른 이름이 없었습니다. 그냥 북향민과 어울리며 이들을 대학에 보내는 것만으로 좋았습니다. 그런데 자꾸 주변에서 학교 이름이 뭐냐고 물었습니다. 할 수 없이 학교 이름을 지어야 했습니다. 기도하다가 떠오른 생각이 하나님이 회복의 상징으로 예레미야 선지자에게 사라고 하신 아나돗의 밭이었습니다(예레미야서 32장).

▲ 정이신 아나돗학교 대표간사ㆍ아나돗공동체 목사

예레미야는 남유다가 바빌로니아에 멸망당할 것을 알면서도 이 밭을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근위대 뜰에 갇혀 있는 상태에서 샀습니다. 이는 1950년 6월 25일을 며칠 앞 둔 어느 날 앞으로 한반도에 전쟁이 일어날 것을 알면서도 서울에서 땅을 매입한 것과 같습니다. 한반도에 대한 회복의 약속과 이에 대한 믿음이 없으면 도무지 살 수 없는 밭이 아나돗에 있었는데, 기도 중에 북향민들이 이와 비슷한 존재라는 감동이 마음에 밀려들었습니다.

구약성경 <역대지하 28장>에는 오뎃 선지자가 북이스라엘의 수도 사마리아로 개선하는 북이스라엘 군대를 마중 나가 하나님께 벌을 받아 포로가 된 남유다 사람들은 북이스라엘의 형제자매이니 그냥 그들의 고향 남유다로 아무런 조건 없이 돌려보내라고 요청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때 북이스라엘의 대표 지파인 에브라임의 지도자 네 사람 역시 개선하는 군대를 막아서서 남유다의 포로를 돌려보내라고 무장한 군인들을 설득했습니다. 우리의 상황과 반대로 북이스라엘이 남유다에게 자비를 베푸는 형국이지만 이들이 말하려는 메시지는 분단된 남북 두 나라를 새롭게 바라보는 통일의 눈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아나돗공동체는 북한을 선교 대상으로만 보지 않습니다. 북향민을 내 몸의 일부로 보며 그들을 껴안고 가야 할 우리의 아픔이라고 생각하라는 성경 말씀을 즐겨 따릅니다. 이를 위해 유목을 두려워하지 않고 거룩함을 위해 기꺼이 행복을 양보하며, 북향민들에게 남한에서 굳게 뿌리를 내린 후 통일이 되면 북녘에 있는 고향을 꼭 다시 찾아가라고 손을 마주잡고 같이 기도합니다.

하나님과 후손들에게 물려줄 역사 앞에서 통일을 볼 줄 아는, 분단의 사고를 넘어선 한반도인답게 사는 일이 중요합니다. 예레미야가 감옥에서 샀던 아나돗에 있었던 밭을 기억하며 앞으로는 통일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 정이신 논설위원ㆍ목사 = 한양대 전기공학과와 백석대학교 신학대학원을 졸업했다. 한국독립교회 및 선교단체연합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고 아나돗학교 대표간사와 아나돗공동체 목사다. 독서와 글쓰기를 주제로 한 <노희(路戱)와 더불어 책(冊)놀이>를 연재했으며 논설실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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