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들었던 종로에서의 예배 장소를 옮기면서는 그들과 기쁘게 헤어질 수 있었습니다. 아나돗공동체가 처음으로 예배를 시작한 후 6개월 정도 지났을 때 우리를 조건 없이 받아줬던 분들은 북향민이었습니다. 이분들의 도움으로 교회와 대안학교를 운영했었습니다.때가 돼 그곳을 떠나 왔습니다. 이분들의 성향이 우리와 다른 부분도 있지만 한반도의 평화 통일을 원한다는 건 같습니다. 그래서 더 큰 그림을 그리기 위해 이분들과 연합해서 대안학교를 운영했었습니다. 하지만 기독교상담으로 인해 우리에게 새로운 일이 생겼고, 이를 준비하기 위해 종로에서 다른
'사기'란 단어를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이익을 얻기 위해 나쁜 꾀로 남을 속임'으로 나옵니다. 이를 기망(欺罔)이라고도 하는데, '망'이란 글자에는 '그물'이란 뜻이 있습니다. 속이는데 그물까지 동원했으면 빠져나갈 수 없도록 온갖 방법을 다 쓴 것입니다. 그래서 법률용어사전에선 '수단과 방법에 제한이 없으며, 작위건 부작위건, 적극적이건 소극적이건 상관없이 거래 관계에서 지켜야 할 신의칙(信義則)에 반해 상대방을 착오에 빠지게 하는 모든 행위'를 기망이라고 합니다.이제 다음에 등장하는 사례를 한 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 가
'아나돗 편지'에서 '정이신 칼럼'으로 제목을 바꾸기까지, 세이프타임즈에 글을 쓴 지도 벌써 몇 년이 지났습니다. 세이프타임즈에 기고했던 칼럼인 '아나돗 편지'는 인연의 끈이 닿아서 책으로도 발간했습니다. 제가 칼럼집을 내리라고는 생각해 본 적도 없이 살았기에, 그런 기회를 만들어 준 세이프타임즈가 고마워서 계속 글을 쓰고 있습니다.'아나돗 편지를 쓰면서 여러 가지 사연을 담은 일을 만났지만, 그들·저들과 약속했던 대로 그걸 공적인 메시지로 바꾸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아나돗 편지'를 '정이신 칼럼'으로 바꾼 지도 꽤 됐기에, 제가
은행이 필요한 이유는 여러 가지지만, 갑작스럽게 목돈이 필요한 경우 은행의 대출 기능은 아주 요긴합니다. 그런데 대출받았을 때는 내 돈이 아니기에, 이자를 주거나 은행에서 요구하는 담보를 제공해야 합니다. 이는 경제적으로 부담되는 일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수시로 적은 돈을 은행에 모아뒀다가, 목돈이 필요할 때 찾아 씁니다. 이는 내 돈을 찾아 쓰는 일이기에 이자를 물지 않아도 됩니다.동양학에서 사람이 자기에게 주어진 길을 바꾸는 최고의 덕목으로 여기는 적덕(積德)은 내가 은행에 수시로 저금했다가 목돈이 필요할 때 찾아 쓰는
세계종교라 불리며 전 세계에 많은 신도를 거느리고 있는 종교들에 처음부터 따르는 사람이 많았던 건 아닙니다. 기독교도 세력이 미약해, 처음 출발했을 때는 이 종교가 태동했던 지역을 지배하고 있던 로마인이 기독교가 어떤 종교인지 제대로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한때 로마인은 기독교를 유대교의 한 분파로 이해했었습니다. 그 뒤 기독교는 오랜 세월 동안 예수님의 뜻을 진정으로 이어 온 '진실한 제자들'의 노력으로 세계종교로 성장했습니다.종교로 출범할 때, 기독교가 태동한 지역에는 기독교보다 더 큰 세력을 가진 종교가 여럿 있었습니다. 하
내일부터 설 연휴가 시작됩니다. 어릴 적에는 양력 1월 1일이 설이라고 해서, 사흘간 연휴를 뜻하는 빨간 글자가 달력에 쓰여 있었습니다. 또 텔레비전에서 새해 설 특집 방송이라고 하면서, 한복을 차려입은 사람들이 나와서 여러 가지 이벤트를 벌였습니다. 그러나 이건 텔레비전에 나온 이야기였고, 집안이나 마을에선 아무런 반응이 없었습니다. 어려서 음력을 잘 몰랐던 저는 텔레비전에서 말하는 설이 왜 이렇게 조용한지 알 수 없었습니다.그런데 이로부터 얼마 동안의 시간이 지나면, 집안과 마을이 바빠지기 시작했습니다. 엄마는 장에서 식자재를
모 기독교 언론에서 기사로 올린 글에 한국 교회에서만 주장하는 절기에 관한 게 있었습니다. 모 신학교 교수가 '이런 절기는 폐지해야 한다'라고 쓴 것인데, 제 생각과 같아서 그 글에 댓글을 달았습니다. 그 절기는 교회력에 근거가 있어서 정한 것도 아니고, 역사적 근거도 희박하며, 한국의 일부 교회에서만 지킵니다.그 뒤 제가 댓글을 써 놓은 걸 잊고 지냈는데, 어떤 이가 제 의견에 답글을 달았다고 SNS에 표시가 돼 있었습니다. 그래서 들어가 봤더니 제 글에 대한 논리적 반박이 아니라, '목사가 그러면 안 된다'라는 꾸짖음이었습니다.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지만, 걷는 길은 평화로움과는 여전히 거리가 멀고, 교범에도 나오지 않는 이야기가 자주 등장하는 야전의 현장입니다. 대안학교에서 가르치는 독서·논술도, 교회에서 하는 사역도 여전히 불꽃이 튀기 직전입니다.야전의 현장을 좋아하거나, 이쪽에 특별한 뜻을 뒀기에 이렇게 지내는 건 아닙니다. 진흙탕과 비포장도로가 만연한 들판보다 포도(鋪道) 위를 승용차로 달리는 젠틀맨이 되기를 꽤 바랐습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성령님이 저를 인도하신 길에는 포장도로가 별로 없었습니다.정성껏 농사를 지으면서 세상을 해석하는 시인과
'어쩌다 보니' 한 해가 저물어 갑니다. 내년에는 어떤 일이 기다릴지 염려가 되기도 하고, 기대가 되기도 합니다. 총선이 있어서 여러 가지 쟁점이 와각상쟁(蝸角上爭)을 벌일 텐데, 거기서 발생한 소음을 또 들어야만 하는 게 달가운 일은 아닙니다.군에 사병으로 의무 입대한 후 탈영하지 않기 위해 책을 읽었습니다. 사병으로 있는 동안은 제가 살아온 흔적이 논리적으로 설명되거나 합리적으로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군 생활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해 선임 사병들에게 늘 괴롭힘의 대상이 됐었습니다. 왜 그렇게 군대 생활이 꼬였었는지 지금도
인간에게 어떤 생각 하나가 일어났다고 했을 때, 인간 안에서 그 생각을 일으키는 도구는 무엇일까요? 마음이 생각을 불러일으켰다면, 그 마음은 어디에서 만들어진 것일까요? 가만히 있는 사람에게 외부에서 충격이 다가와 무의식적으로 조건 반사를 보였다고 해도, 그 과정은 인간 안에 있는 어떤 게 맞대응한 것이고, 그게 몸의 반응으로 나타난 것입니다.대체로 사람은 몸을 통해 생각하고 반응합니다. '머리'로 통칭하는 인간의 뇌가 생각해서 반응하는 게 아닙니다. 몸이 얻어낸 여러 가지 정보를 뇌에 저장해 놓고, 그걸 통해 상황을 판단하고 생각
대답할 수 없는 내용을 질문하는 사람을 수시로 만납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그건 물음 자체가 잘못됐기에, 제가 답할 수 없는 것이다'라고 하면, 자기를 무시한다고 얼굴을 붉힙니다. 물음이 잘못된 것이기에 대답할 수 없는 것과 엉터리 반응을 보여서 그 사람을 무시하는 건 다릅니다. 그런데 그들은 이게 같다고 합니다.어떤 사람에게 심리상담을 받으라고 권유한 후, 해당 분야에서 재능기부로 일하는 사람들을 소개해 줬습니다. 처음에는 아주 고맙다고, 그런 사람들을 만나서 너무 다행이라고 제게 수차례 감사를 표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세월이 흘러가면서 평가가 바뀌는 사람이 꽤 있습니다. 예를 들어 예수님은 유대 사회의 관습에 반항하는 인물이며, 로마제국에 대항하는 정치범으로 몰려 잔혹한 형벌을 받고 죽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자 그분을 그리스도라고 고백하는 사람이 늘어났고, 마침내는 종교로까지 이어졌습니다. 공자(孔子)는 뜬구름 잡는 정치사상을 펼친다고 위정자들에게 냉대당했지만, 사후에 그의 생각을 찾는 이들이 많아졌습니다.반대 사례도 있습니다. 그 사람이 처음에는 자기 민족의 해방을 위해 엄청나게 수고한 위대한 리더인 줄 알았습니다. 그는 민족이 해방된 후
예전에 남북교류를 증진하는 차원에서 북한의 작가가 쓴 황진이에 관한 소설이 우리나라에 소개된 적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분단 전에 우리나라에서 꽤 유명한 소설가의 손자였는데, 북한에서도 할아버지의 영향으로 대우를 받았고 소설가까지 됐습니다.그런데 그때 아쉬웠던 건 그 소설의 구성입니다. 소설도 사람의 해석을 담은 글인지라, 그 소설을 쓴 사람이 해석한 황진이가 썩 마음에 내키지 않았습니다. 북한에서 대우를 받으며 살던 사람이 쓴 글이기에, 그가 보여준 황진이를 해석한 틀에는 유리 천장이 여러 겹 씌워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북한의 작
맹자(孟子)는 향원(鄕原), 비슷하지만 진짜가 아닌 사이비(似而非)에 속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요즘 이 말이 생각나는 일이 생겼습니다. 우리가 처음 북향민을 위한 대안학교를 시작할 때 했던 말이,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 주변에서 들려왔기 때문입니다.'어, 저거 우리가 처음에 대안학교 시작하면서 시행하자고 했던 프로그램인데, 그때는 그들이 거절했던 것인데, 그런데 왜 저 사람이 마치 자기가 이제 처음으로 저 프로그램을 실행하는 것처럼 말하지.' 궁금해서 까닭을 알아봤더니 얽힌 사연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늦었지만 이런 프로그램을
밝음과 어둠, 흑과 백, 승자와 패자, 힘 있는 자와 없는 자가 뚜렷이 나뉘면서도 공존해야 하는 세상을 해 아래에서 우리는 꾸려가고 있습니다. 또 이로 인해 이질적 관계가 뚜렷이 나뉘는 현실을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흐름에 젖어 살다 보니, 내가 살기 위해 남을 이겨야 하는 경쟁의 질서에 따라 모두가 투사가 되기도 합니다.이게 지나쳐서 굳이 싸울 필요가 없는데도, 가상의 경쟁자를 만들어 싸움을 벌이는 이들이 있습니다. 또 이런 싸움을 즐기는 사람들은 경쟁자가 없는 삶은 무의미하고, 맛이나 멋이 없기에
기독교 상담에 관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일반적인 상담은 내담자 개인의 인권을 보장하고, 트라우마(trauma)를 극복해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도록 유도하는 걸 목표로 합니다. 이와 달리 기독교 상담은 내담자가 지닌 갈등이 성경에서 말한 구원을 이루기 위해 어떻게 조정돼야 하는지를 다루고, 행복과 더불어 거룩한 삶을 살도록 내담자에게 권합니다. 내담자가 하나님 앞에 서게 됐을 때, 그가 자신 있게 내놓을 수 있는 게 뭔지를 기독교 상담에서는 중요하게 다룹니다.구약성경에서 거룩함이란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기 위해 얼마만큼 구별해서 사는
저는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생각하며 삽니다. 동일한 역사적 사건을 기록한 문장이 서로 다른 부분도 있지만, 인간에게 영원한 생명이란 선물을 주기 위해 성령님이 성경 기자들에게 이 말씀을 기록하게 하셨다고 봅니다. 그래서 성경이 말하는 메시지에 늘 귀를 기울입니다. 또 성경에 나온 창조·타락·구원에 관한 이야기가 제시하는 길이 좋은 것이라고, 이 길로 같이 가자고 다른 이에게 기꺼이 이걸 추천합니다.성경에 나온 이 세 개의 이야기는 인간이 어떻게 만들어졌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려주는 이정표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걸 '기독교의
구약성경에서 은혜로 번역한 히브리어는 여러 개인데, 그중 하나가 헤세드입니다. 이 단어는 성품을 말할 때도 썼는데, 하나님의 성품이 헤세드입니다. 우리말 성경은 이 단어를 '아름다움'으로도 번역했는데, 인간의 아름다움은 하나님에 비해 보잘것 없어서(이사야서 40:6), 메마르고 뜨거운 바람 앞에 놓인 들의 꽃과 같은 처지입니다.신약성경은 이런 의미를 카리스로 표현했는데, 이는 '사람에게 복리를 가져오는 신들의 호의'를 뜻합니다. 플라톤의 문헌에서 이 낱말은 '좋은 선물, 기쁨, 감사' 등의 뜻으로 쓰였고, 바울은 그가 쓴 편지 수신
민족단체에서 사무차장으로 근무할 때 얼굴을 익힌 사람이 있습니다. 그 단체는 삼일운동과 독립운동가들을 기억하고, 독립을 위해 헌신하신 분들이 남긴 정신을 함양하는 사업을 위해 설립했던 NGO로, 지금은 해산하고 없습니다. 그 단체의 주요 활동사업이 삼일운동이 선언한 정신을 계승해 일본을 넘어서는 전망대를 갖추는, 극일(克日)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종교와 이념을 떠나 다양한 색깔을 가진 사람들이 어울리며 관련 사업을 같이 진행했었습니다.그 단체에서 일하다가 사정이 생겨서 거기를 그만두고 목사 안수를 받았습니다. 그러자 특정인을
엄마의 장례식을 치르면서 가족사에 얽힌 비밀의 마지막 퍼즐을 맞출 수 있었습니다. 생전에 통용됐던 아버지의 이름이 족보에 있는 것과 다른 이유를 그때야 알 수 있었습니다. 다행이었던 건 쉰 살을 넘기면서, 돌아가셨지만 아버지와 화해했다는 것입니다. 이 땅에 안 계시지만 아버지와 화해했기에, 엄마의 장례식을 치르면서 알게 된 퍼즐의 마지막 조각에도 마음이 무너지지 않았습니다.집안 어른들의 기억 속에 숨겨져 있는 퍼즐의 내용을 다 알 수 없었기에, 그동안 아버지와 화해해 놓고도 휑한 뒤끝이 남아 있었습니다. 뭔가 가려진 게 있는데 그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