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가 시작될 무렵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은 두 개의 상대성이론을 발표했습니다. 1905년에는 절대적이라 생각했던 '시간과 거리가 관찰자의 운동에 따라 달라진다'는 특수상대성이론을, 1916년에는 '중력에 의해 서로 연결돼 있는 시간과 공간이 휜다'는 일반상대성이론을 발표했습니다. 이를 통해 그는 우주적 진리가 있다고 해도 그것을 관찰하는 인간 인식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줬습니다. 

그가 발표한 상대성이론을 통해 인류에게 새롭게 알려진 것이 시간입니다. 그의 발표가 나오기 전까지 사람들은 시간과 공간이 따로 존재하는 것으로 생각했고, 시간에 절대성을 부여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시간이 빛의 속도(C=약 300,000km/sec)를 벗어나게 되면 늘어난다고 했고, 공간과 분리돼 있지 않다고 했습니다. 이는 시간이 늘 절대적인 정량(定量)을 유지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인류에게 엄청난 생각의 전회(轉回)를 불러일으킨 사건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때 시간과 공간이 따로 분리돼 있지 않다는 의미에서 시공간(時空間)이라는 말이 만들어졌습니다.

시공간이라는 렌즈로 보면 공간 내적인 존재인 인간이 시공간 외적인 존재인 신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고, 따라서 신(神)을 증명하겠다는 유신론자의 논증 자체가 한계에 부딪힙니다. 거꾸로 인간의 논리 증명으로 다 설명해 낼 수 없는 신을 굳이 인간이 지닌 제한적인 인식 능력으로 다 이해할 수 없기에 받아들일 수 없다는 무신론자들의 주장 또한 억지가 됩니다. 왜냐하면 시공간의 시작인 우주와 인간 창조 자체를 하나님이 인간과 의논하고 시작하시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때부터는 우리에게 주어진 시공간을 우리가 어떻게 책임 있게 채워나가느냐가 중요한 문제로 등장합니다.

▲ 정이신 아나돗학교 대표간사ㆍ아나돗 공동체 목사

시공간이 만들어낸 풍경 중의 하나가 역사에 대한 새로운 인식입니다. 인간은 자기가 살며 채워간 시대에 대해 책임을 져야하는 존재로 태어나고 죽습니다. 필부(匹夫)로 태어나 청사(靑史)의 한 페이지도 장식하지 못한 채 그럭저럭 살다가 죽는다고 해도, 자신에게 주어진 시공간은 그가 꾸며야 할 개인의 역사이며, 스스로 만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에게 빌려주신 것이기에, 개인의 시공간을 어떻게 채웠는지 하나님과 역사는 반드시 그에게 묻습니다.

우리가 빛의 속도를 넘어서는 여행을 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고 시공간의 지배 아래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이기에, 우리에게 주어진 시공간의 선물인 인연의 때를 아껴야 합니다. 인간의 계획대로 바꿀 수 있는 공간이 아닌 시공간의 눈으로 보면 어디서 부는 바람이나 운(運)보다 더 중요한 것이 인생의 방향과 비전(vision)입니다. 내가 가야할 곳은 어디인지, 그곳에 가서 누구를 만날 것인지, 그를 만나 무엇을 할 것인지, 그와 더불어 추진하는 일의 가치는 무엇인지가 시공간의 눈으로 보면 더 중요합니다.

목적지가 정확하면 시공간을 아낄 수 있고 어떤 바람도, 때로 역풍이 불지라도 이것을 순풍처럼 이용할 수 있습니다. 예상하지 못했던 폭풍이 불어도 그 폭풍을 이용해 목적지에 더 빨리 도착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가야 할 방향이 정해져 있지 않으면 순풍이 불고 마음에 맞는 이를 만나도 소용이 없습니다. 흘러가는 세월을 눈물로 지새우며 우두커니 쳐다보고 있을 뿐입니다. 시공간을 늘 기억하십시오. 공간은 시간과 같이 있습니다.

■ 정이신 논설위원ㆍ목사 △한양대 전기공학과 졸업 △백석대학교 신학대학원 졸업 △한국독립교회 및 선교단체 연합회 목사 안수 △아나돗학교 대표간사ㆍ아나돗 공동체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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