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 일행이 길을 가다가 태어날 때부터 눈이 먼 사람을 만났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 자신들이 아는 구약성경의 율법적인 지식으로 이 사람이 누구의 죄 때문에 눈이 멀게 된 것이냐고 물었습니다. 그들의 사고방식으로 병이 나거나 태어날 때부터 가진 장애는 죄로 인해 발생한 것이기에 이렇게 물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생각과 전혀 다른 답을 내놨습니다(요한복음 9:1~3).

인과응보의 사고방식은 오차가 적거나 거의 없습니다. '2+2=4, 2-2=0'이라는 식의 사고는 간단명료하기에 이해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이런 사고로 세상의 모든 일이 다 설명되지 않습니다. 이 사고가 작동하는 영역도 있지만, 이것으로 모든 것이 다 이해되지 않는 영역도 우리네 삶에 존재합니다. 기독교 신학에서는 이것을 '초(超)논리' 혹은 '초(超)이성적인 사건'이라고 합니다.

태어날 때부터 눈이 먼 사람을 만났을 때 예수님은 당시 유대사회에서 전통적으로 통용되던 사고방식이 아닌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사유방식으로 그를 대했습니다. 이 방식 외에 눈먼 이의 고통을 설명할 길이 따로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는 우리가 사는 세상에 인과응보로 풀 수 없는 영역이 있다고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 길을 따라 저도 새해에 부치는 두 번째 희망가를 씁니다. 지난회에 썼던 통일투자에 관련된 이야기는 새해를 여는 첫 소망을 담은 편지였습니다.

▲정이신 아나돗학교 대표간사ㆍ아나돗공동체 위임목사

살다가 앞이 안 보여도 버텨야 합니다. 누구나 제 자리에서 버티며 살아갑니다. 억울해도, 슬퍼도 버텨야 자기 자리를 지킬 수 있습니다. 내가 내 자리를 지켜야 하는 데에는 다른 이유나 설명이 필요 없습니다. 그것은 그냥 내게 주어진 것이고, 내 몫이기에 내가 지켜야 합니다.

혹 앞이 보이게 되면 '나 아니면 안 된다'는 철부지 사명의식과 명분을 위해 간증(干證)을 남발하며 죽으려 하지 마십시오. 자기 몸의 소리를 들으며 자기에게 주어진 삶을 위해 살아가십시오. 하나님께 받은 은혜가 감사해서 벌인 일은 내가 다 이루지 못해도 하나님이 다른 사람을 통해 이뤄 가십니다. 그렇지만 내게 주어진 삶은 거칠어도 오직 내가 끝까지 마쳐야 합니다. 그 삶은 남이 대신 살아주지 못합니다.

살아가다가 아픈 것이 아니라 태어날 때부터 아픈 몸을 가졌다고 해도 당신이 세상에 오고 싶어 온 게 아닙니다. 그러니 자신에게 주어진 몫을 당당하게 요구하십시오. 인정하든지 인정하지 않든지 인간은 모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숨겨진 계획에 따라 이 세상에 옵니다.

그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지 않도록 힘닿는 데까지 세상의 빈 구석을 조금이라도 채우십시오. 당신이 갚아야 할 밥값은 제대로 갚은 뒤 세상을 떠나갈 수 있도록 노력하십시오. 또한 자신의 아픔만이 가장 큰 것이라고 여기는 착각에서 벗어나십시오.

설령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며 태어났더라도 누굴 미워하지 마십시오. 나와 다른 삶의 스타일을 가진 사람들이 나와 더불어 세상을 같이 살아가고 있는 것을 보고 힘들어 하지 마시고, 그들을 엿보거나 눈치를 살피는 일도 중지하십시오.

내 자투리 시간까지도 귀하게 여기고 살다보면 멋있어 지지는 않아도 여러분에게 주어진 시간 앞에 아름답게 서 있을 것입니다.

박기후인(薄己厚人). 늘 자기에게는 엄격하지만 타인에게는 후덕하게 행동하십시오. 앞이 보이지 않는다고 잠만 자며 신이(神異)를 바라지 말고, 꿈을 이루기 위해 땀 흘리는 한 해와 하루가 되기를 늘 기도하십시오. 희망의 노래는 우리들 가까이에 있습니다.

■ 정이신 논설실장ㆍ목사 = 한양대 전기공학과와 백석대학교 신학대학원을 졸업했다. 한국독립교회 및 선교단체연합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다. 아나돗학교 대표간사와 아나돗공동체 위임목사다. 독서와 글쓰기를 주제로 한 <노희(路戱)와 더불어 책(冊)놀이>를 연재했으며, 논설실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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