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가 하는 의사표현에 담긴 숨겨진 의미가 서로 얼마나 다른지에 관해 쓴 심리학책을 감탄의 시선으로 읽은 적이 있습니다. 그 뒤 어떤 생물학자가 쓴 글을 봤는데, 그는 남자는 여자보다 덜 분화(혹은 진화)된 존재라고 했습니다. 여자는 남자에 비해 복잡한 신체구조를 지니고 있는데 이는 생명의 탄생과(아기집) 직접적으로 연관돼 있었습니다.

이런 생물학적 특성 때문에 여자는 남자보다 예민한 감각을 지니게 됐는데, 그 생물학자는 이것이 거꾸로 작동해 여자는 변덕이 심하거나 알 수 없는 존재라고 남자에게 각인됐다고 합니다. 그의 말을 따라가 보면 지금까지의 인류 역사는 진화생물학적으로 여자를 이해 할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은 남자가 반란을 일으켰고, 자신이 가진 완력을 동원해 여자를 도그마에 가둬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성경은 여자를 남자의 몸속에 있는 갈빗대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창조기사로 전승돼 오던 이야기가 히브리어로 기록될 때 사람들은 사회적 계급과 신분이 낮은 자신의 동류(同類)를 상품처럼 사고팔았습니다. 남자가 남자에게 노예로 팔린 것도 있지만, 여자 역시 아이를 낳아주는 물건처럼 취급됐었습니다. 이때 여자가 남자의 몸속에서 나온 존재라는 표현은 역으로 여자가 남자만큼 중요한 존재라는 의미구조를 담고 있습니다.

▲ 정이신 아나돗학교 대표간사ㆍ아나돗공동체 목사

사람이 자기 몸의 장기를 스스로 꺼내 팔 수 없습니다. 구약성경이 기록된 시기의 사람들은 신장(腎臟)을 팔거나 간(肝)을 이식하는 경험을 갖지 못했습니다. 이들에게 갈빗대는 자신의 몸 일부였고, 남자의 몸 일부를 꺼내서 하나님이 배필을 만들었는데 그것을 다시 누군가에게 판다는 것은 하나님을 모독하는 행위가 되기에, 여자를 물건처럼 사고팔 수 없다는 경고의 메시지가 창세기의 인간 창조 이야기에는 담겨 있습니다.

갈빗대로 번역한 히브리어는 다른 뜻도 있습니다. 이 단어에는 '옆구리, 측면'이라는 뜻이 있기에, 성경에서도 여자를 창조한 이야기에서만 갈빗대라고 번역합니다. 이후 사람을 각각 여자와 남자, 히브리어로 '잇샤'와 '이쉬'라고 하여 성경기자는 둘이 근원적으로 다르지 않은 존재라고 앞의 표현이 지닌 의미를 보충합니다(창세기 2:23). 이를 거칠게 표현하면 '그놈이나 그년이나 하나님 앞에서는 똑같은 존재'라는 뜻입니다.

나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에너지는 모두 주변에서 얻습니다. 인간은 자신의 생존을 위해서 필연적으로 주변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이런 인간의 현실을 빗대 거창하게 인간을 '절대적 사랑에 대한 목마름을 지닌 존재'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이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인간은 고립된 존재로 살면 안 되고 서로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드러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이 일을 쉽게 할 수 있도록 '아담을 돕는 사람, 곧 그의 짝'을 만드셨습니다. 하와를 아담이 만든 게 아니라 하나님의 도움을 대신 전해주라고 하나님이 '직접' 만드셨습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나뿐만 아니라 나의 조력자 안에도 계십니다.

조력자가 있기에 내가 있습니다. 남자에게만 역사하시는 것이 아니라 여자에게도 하나님이 역사하시기에,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이에게도 함께 하시기에 내가 우뚝 설 수 있습니다. 사람은 군중 속에 있으면서도 모두 개별적인 존재이기에 각자 질문을 안고 와서 자신만의 고통과 기쁨을 표현하고 싶어 합니다.

교회는 이들에게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들을 하나님이 이미 만들어 놓으셨다고 알려줍니다. 그러면 이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들을 통해 자신도 하나님의 형상이 담긴 존재라는 자존감과 자신에 대한 믿음을 회복하고, 다른 이들의 아픈 이야기를 조력자가 되어 듣기 시작합니다.

■ 정이신 논설위원ㆍ목사 = 한양대 전기공학과와 백석대학교 신학대학원을 졸업했다. 한국독립교회 및 선교단체연합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고 아나돗학교 대표간사와 아나돗공동체 목사다. 독서와 글쓰기를 주제로 한 <노희(路戱)와 더불어 책(冊)놀이>를 연재했으며 논설실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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