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는 신약성경에서 꽤 유명한 책입니다. 바울이 로마교회 교우들에게 쓴 편지인데, 기독교 교리적인 측면에서 뿐만 아니라 기타 여러 가지 기독교 신앙의 지침이 되는 내용이 많습니다. 지금까지 로마서에 관련된 주석서만 해도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나왔고, 이 책을 연구해서 신학박사 학위를 취득한 이도 엄청나게 많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로마교회에 편지를 썼다는 것 자체가 퍽 신기한 일입니다. 바울이 로마교회에 편지를 썼다는 것은 기독교에서 말하는 거룩한 백성이 바울이 살던 때에 로마에 있었다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에나 로마가 어떤 도시인데, 로마가 어떻게 유지된 제국인데 그곳의 심장부 도시에 바울이 살던 때에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하는 교회가 있었단 말입니까. 그래서 저는 이 책을 보면서 북향민을 생각하게 됩니다. 

저는 북한 군인, 특히 김일성은 뿔 달린 괴물 같은 존재라고 배우며 자랐습니다. 일본에서 조총련계 사람을 우연히 만났다는 이유만으로 조작된 함정 수사의 희생양이 되어 고문을 받고 정신이 돌아버린 사람(수학 선생)을 곁에서 지켜보며 고등학교를 다녔습니다. 그랬던 사람이 지금 북향민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 이는 초기 기독교 때 로마에 교회가 있었던 일만큼이나 벼락 칠 일입니다.

아나돗학교에서는 북향민뿐만 아니라 청소년도 가르칩니다. 처음에는 가정형편이 어려워 학원에 가지 못하는 소외계층 청소년들만 받았는데, 지금은 그냥 청소년이라면 누구나 오는 대로 다 가르칩니다. 얼마 전 이들이 중간고사를 치렀습니다. 조금 늦었지만 마음에 들지 않는 중간고사 성적으로 인해 마음 아파하는 이들에게 힘을 내서 기말고사를 준비하라고 편지를 씁니다.

아나돗학교 학생 여러분 시험 준비는 잘 하고 있습니까. 저는 양평에 와서 빗소리를 들으며 나물을 캤습니다. 비닐하우스 안에서 듣는 빗소리는 또 다른 매력이 있습니다.

저는 비를 참 좋아하고 연한 녹색을 좋아하는데, 빗소리를 들으며 생각해 봤습니다. 우리는 왜 아나돗학교에서 학생과 간사로 만났을까요. 분명한 것은 우리가 새로운 길을 열어 보고자 만난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각자 어디서 온 사람이건 지금 우리는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길을 새롭게 열어야 한다는 숙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정이신 아나돗학교 대표간사ㆍ아나돗 공동체 목사

저는 여러분에게 간사로서 그런 길을 열어주는데 최선을 다 하는 삶을 살아보라고 하나님께 위임(委任) 받았고, 여러분은 학생으로서 자신에게 주어진 새로운 삶의 길을 넓히기 위해 최선을 다 하라고 한반도의 역사로부터 위임 받았습니다. 그것이 우리의 길에 주어진 것이기에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우리가 풀어내야 합니다. 또 우리는 모두 성실ㆍ열심히 살라는 천명(天命)으로 태어났기에 이 명을 받은 사람끼리 모여 당당하고 꿋꿋하게 통일을 준비해야 합니다. 이게 우리 아나돗학교 및 공동체의 설립 목표이고 제가 여러분에게 늘 말하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니 이거에만 충실했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이 삶의 길을 새롭게 열어보기 위해 저 먼 곳에서 여기까지 왔듯이, 우리 공동체도 여러분과 같이 한반도의 앞날에 새로운 길을 열어 보고자 여러분의 길동무를 자처하고 나섰습니다. 이제 조금 있으면 6월입니다. 분위기에 휘둘리지 말고 여러분에게 주어질 한반도의 새로운 길을 열기 위해 기말시험 준비 잘하십시오.

■ 정이신 논설위원ㆍ목사 △한양대 전기공학과 졸업 △백석대학교 신학대학원 졸업 △한국독립교회 및 선교단체 연합회 목사 안수 △아나돗학교 대표간사ㆍ아나돗 공동체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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