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로마신화에 나오는 신(神)들의 모습은 사람과 같습니다. 성정(性情)도 사람과 비슷해서 결혼을 해도 배우자를 둔 채 바람을 피우고 아이도 낳으며, 전쟁도 벌이고 장애를 가진 이도 있습니다. 슬그머니 그럼 대체 신들과 인간이 다른 것이 뭐냐는 궁금증이 생깁니다. 그들은 사람들과 달리 죽지 않는 불멸(不滅)의 존재들입니다.

그런데 그들에게 평안한 날이 별로 없습니다. 불멸의 존재들이기에 조금 평안할 줄 알았는데 끊임없이 발생하는 골치 아픈 사건들 때문에 이 세계가 잠잠한 날이 거의 없습니다. 인간은 매일 행복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행복해지려고 불멸을 꿈꿉니다. 그러나 그리스로마 사람들이 신화를 통해 꿈꿨던 불멸의 세계는 늘 시끄러웠습니다.

예전에 불가의 어떤 스님이 먹고 사는 것만을 계산하면 재벌과 일반 서민을 비교했을 때, 평생 먹는 양이나 그것을 돈으로 환산한 액수가 생각보다 많이 차이 나지 않는다고 글로 쓴 것을 봤습니다. 큰 가격 차이는 음식이나 그 재료가 아니라 음식을 둘러싼 주변 환경에서 발생합니다. 따라서 일평생을 고급 뷔페에서 먹고 산다고 해도 인간이라면 먹을 수 있는 양에 한계가 있기에 그 차이에는 제한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하신 말씀 중에 '오늘의 괴로움은 오늘 겪는 것으로 족하니 내일 일을 미리 걱정하지 말라'는 말씀이 있습니다(마태복음 6:34). 가만히 보면 우리가 주변 환경 때문에 비싼 값을 치르고 하지 않아도 되는 염려를 미리 하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정이신 아나돗학교 대표간사ㆍ아나돗공동체 위임목사

내일 아침에 먹어야 할 밥을 오늘 미리 다 먹고 내일 아침에는 어제 다 먹었다고 굶는 것은 건강을 위한 지혜가 아닙니다. 내일 아침밥은 내일 아침에 먹어야 하듯이 염려하는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어차피 내일 내가 감내해야 할 걱정은 오늘 미리 하지 않아도 됩니다. 대비는 필요하겠지만 오늘 복을 받았다고 해서 내일은 하나님께 복을 안 받고 살 수도 없기에 내일은 내일의 복을 다시 간구해야 합니다.

반전은 여기서 시작됩니다.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뜨는 것이지 오늘 뜬 태양이 내일까지 비춰주지 않습니다. 따라서 신명(神明)에게 내 앞날을 미리 알려달라고 하지 말고 매일 내가 성령님 및 역사의 교훈과 동행하고 있는지 살펴야 합니다. 그러면 평안한 날이 거의 없는 불멸의 존재보다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해도 되는 유한한 존재가 더 나을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유한함과 동행하시는 분입니다. 기독교 신앙의 힘은 내일과 모레 일을 미리 아는 것이 아니라 매일 내가 성삼위일체 하나님과 동행하며 그분을 호흡하는 것에서 나옵니다. 어차피 인간은 자신의 앞날을 보여줘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점술가를 찾아가서 자신의 미래를 듣는 일을 어리석은 일이라고 합니다. 차라리 그보다는 매일 하나님이 자신에게 주신 양식을 먹고, 주어진 매일의 과업에 충실하며, 늘 성령님을 호흡하고, 쉬지 말고 예수님을 따라가라고 합니다.

어차피 자기에게 주어진 길이고 자기가 가야하는 길이라면 염려하거나 괴로워한다고 해서 그 길에 얽힌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또 하나님은 현실을 정확히 직시하시는 분이시기에 환각으로 현재를 버티거나 문제를 풀면 안 됩니다. 내가 가야 하는 그 길에서 정당하게 버텨야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기에 내일의 괴로움을 오늘로 미리 당겨올 필요가 없습니다.

늘 골치 아픈 사건이 있는 불멸과 내일 겪게 될 일은 내일 염려해도 되는 유한함 중에 당신은 어느 것을 택하시겠습니까.

■ 정이신 논설실장ㆍ목사 = 한양대 전기공학과와 백석대학교 신학대학원을 졸업했다. 한국독립교회 및 선교단체연합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다. 아나돗학교 대표간사와 아나돗공동체 위임목사다. 독서와 글쓰기를 주제로 한 <노희(路戱)와 더불어 책(冊)놀이>를 연재했으며, 논설실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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