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비보풍수지리학자(裨補風水地理學者)로 유명한 C씨는 S대 지리학과 교수까지 지냈던 사람인데, 이 분은 남다른 취향이 있었습니다. 삶에 지칠 때면 우리는 대개 책을 읽거나, 기도하거나, 여행을 가거나, 영화를 보는 등 신앙, 레저와 문화생활을 하는데 이 사람은 묘지를 찾아갔었습니다.

그는 명당이라고 불리는 곳에 가서 하루 종일 누워 있다가 온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이상하게도 자신의 삶에 대해 새로운 성찰이 생긴다고 했습니다. 다른 사람의 죽음이 남긴 흔적을 보며 자신의 삶을 새롭게 보게 된다고 했습니다. 다만 지금도 이 취향이 그에게 여전한지 모르겠습니다.

묘지는 그 자체로 어떤 사람이 생전에 남겼거나 죽은 후에라도 후세들에게 꼭 알리고자 했던 마지막 메시지가 됩니다. 묘비에 어떤 이가 남긴 말이 쓰여 있지 않아도 묘지 자체가 망자의 유언에 포함되고, 그 메시지에 거짓이 없습니다. 그래서 C씨는 삶에 지칠 때면 명당이라 불리는 묘지에 가서 하루 종일 누워 있으면서, 무덤의 주인이 남긴 메시지를 듣고 자신의 삶을 성찰했다고 했습니다.

▲정이신 아나돗학교 대표간사ㆍ아나돗공동체 위임목사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은 흔히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다고 하거나 들으라고 합니다. 그런데 저는 한때 이 명제를 거꾸로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다. 내가 '왜' 예수님의 말씀을 들어야'만' 하지라고.

이 '왜'와 '만'에 대한 답이 스스로에게 없으면 아무리 좋은 교회를 다니고 기독교 신앙생활을 오래 했다고 해도 자꾸 흔들립니다. 자꾸 다른 말이 들려와 예수님의 말씀인 체하거나, 그것이 마치 성경에 근거를 둔 메시지인 것처럼 둔갑해 듣고 있는 사람들을 속입니다. 일부는 거짓 예수의 거짓말을 진짜 예수님의 말씀인 진리처럼 포장해 사람들을 착취하고, 이를 통한 반사 이익을 저들이 가져갑니다.

무작정 많이 알고 듣는 것이 반드시 좋지만은 않습니다. 꼭 알아야 할 것과 들어야 할 것만 챙겨야 거룩하고 행복하게 살아가기에 더 유리합니다. 앨빈 토플러는 <부의 미래(Revolutionary Wealth)>에서 미래 사회를 주도할 최고의 자산은 시간과 공간 그리고 지식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효과적인 지식의 활용을 위해 '쓰레기 지식(obsoledge)'을 과감히 버리라고 했습니다. 쓰레기 지식은 그가 만들어 낸 신조어로 '쓸모없다(obsolete)'와 '지식(knowledge)'을 합성한 단어입니다.

아는 것은 듣는 것으로부터 시작합니다. 귀로 듣든지 마음으로 듣든지 사람이 제대로 듣지 못하면 앎이 시작되지 않습니다. 이때 내가 들은 쓰레기 지식은 부피를 만들어 면적만 차지할 뿐 아무런 쓸모가 없습니다. 오히려 걸림돌이 돼 삶을 더 갉아먹습니다. 그러니 쓸모없는 말과 쓰레기 지식에 더 이상 속지 마시고, 꼭 들어야 할 말을 들으십시오.

우리가 늘 한반도의 미래에서 오는 말을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삶의 트랙 위에서 거친 호흡을 조절할 수 있습니다. 또한 기독교인이라면 끝 날에서 오는 예수님의 말씀과 더불어 미래에 부활된 자신이 현재의 나에게 건네는 말도 들을 수 있도록 귀를 그쪽으로도 늘 기울여 둬야 합니다. 쓴소리일지라도 끝 날의 소리는 진실한 것이기에 힘이 있습니다.

법의학의 유명한 명제인 "시신은 모든 것을 알고 있으며, 거짓을 말하지 않는다"는 말처럼 '끝에서 온 말'에는 거짓이 담겨 있지 않습니다. 복잡다단한 한반도의 현재가 아니라 저 먼 한반도의 미래에서 온 말에는 거짓이 없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말씀도 저기 저 끝에 있는 날에서 온 말씀이기 때문에 우리가 반드시 들어야 합니다.

■ 정이신 논설실장·목사 = 한양대 전기공학과와 백석대학교 신학대학원을 졸업했다. 한국독립교회 및 선교단체연합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다. 아나돗학교 대표간사와 아나돗공동체 위임목사다. 독서와 글쓰기를 주제로 한 <노희(路戱)와 더불어 책(冊)놀이>를 연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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