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방대학은 특화된 캠퍼스와 학과로 소멸 위기를 스스로 견뎌내고 있다. ⓒ 김춘만 논설위원
▲ 지방대학은 특화된 캠퍼스와 학과로 소멸 위기를 스스로 견뎌내고 있다. ⓒ 김춘만 논설위원

구약성서에 '너의 목은 상아로 만든 탑 같고(아가 7장 4절)'라는 구절이 있다. 귀한 존재를 일컫는 말이다. 상아는 코끼리의 위쪽 어금니를 말한다. 위로 불쑥 솟은 모습이 당당하고 기품이 있다. 상아는 예로부터 귀한 보물로 여겼다. 도장이나 장식을 상아로 새기고 복을 가져오는 상징물로 소장하기도 했다. 대학을 상아탑(象牙塔)이라 부르는 이유도 이와 같다.

학문의 절정기에 오른 우수한 인텔리 집단으로 국가적으로는 보물이나 다름없다. 그런 대학들이 지금 지방대를 중심으로 존폐 위기에 처해있다.

벚꽃 피는 순서대로 대학이 폐교된다는 말이 있다. 수도권에서 먼 위치에 소재한 지방대를 빗댄 말이다. 서남대와 성화대를 비롯한 몇 개의 대학이 이미 폐교됐고 적지 않은 대학이 폐교직전이나 구조조정 위기에 처했다.

신입생 미 충원 규모가 2019년에 전국적으로 8000명 수준이었다면 2021년 기준으로 거의 4만명에 이르렀다. 불과 2년 사이에 다섯 배 가까이 늘어난 상황이다. 대학은 물론 교육기관에서조차 예상치 못한 빠른 속도다.

이는 거점 지방 국립대도 마찬가지다. 강원대를 비롯해 미달사태가 속출하고 있다.

대학 폐교는 비단 대학과 학생만의 문제가 아니다. 지방 상권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학생 1인당 지역에 미치는 경제 유발효과가 1년에 적게는 600만원에서 많게는 1000만원에 이른다고 한다. 학생이 2000명인 중소형 대학이 문을 닫으면 1년에 지역경제에 미치는 손실은 200억원 이상이다. 지방재정으로는 엄청난 규모다.

비단 지방만의 문제가 아니다. 지방 대학이 붕괴되면 모든 선택과 집중은 서울, 경기로 향한다. 그만큼 치열한 경쟁이 유발되고 대학 서열과 학벌주의도 더욱 극심해질 것이다. 산업과 일자리는 지금보다 더욱 수도권에 집중되게 된다. 어쩌면 서울 경기는 지옥과 다름없는 곳이 될지 모른다.

지방대학을 살리기 위해 정부나 지자체도 손 놓고 있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미봉책에 그치고 있다. 학령인구를 늘리는 게 가장 빠른 해결책이나 현실적으로 어렵다. 출산율 1.1명으로 세계 최하위를 기록하는 나라에서는 더욱 요원한 일이다.

정부에서는 대학혁신과 지역혁신 그리고 지역협업체계의 구축을 통해 지방대학을 살리겠다고 한다. 그러나 추상적이고 원론적인 정책으로는 무너져가는 지방대학과 지방도시를 살릴 수 없다.

지방대학을 살리기 위해서는 먼저 지역에 특화된 학교를 만들어야 한다. 대학의 군살을 빼고 지역경제에 특화된 학과를 집중 지원해야 한다. 가능하면 지역학생을 선발하고 배출된 인력이 지역경제에 참여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이를 이루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우수한 중견기업들이 지방에 자리 잡아야 한다. 대기업이 이전하면 더 좋을 일이다.

대학과 기업이 지역에서 함께 클러스터를 구축하면 지속가능한 도시와 대학의 꿈을 이룰 수 있다.

▲ 경기도 안산과 시흥시에 소재한 시화공단은 6000여개의 기업이 입주해있다. 이곳에 자리잡은 두 개의 대학(한국공학대·경기과학대)은 관련 직종을 학과로 집중 육성해 공단 인력을 배출하는 산소같은 역할을 하고있다. ⓒ 김춘만 논설위원
▲ 경기도 안산과 시흥시에 소재한 시화공단은 6000여개의 기업이 입주해있다. 이곳에 자리잡은 두 개의 대학(한국공학대·경기과학대)은 관련 직종을 학과로 집중 육성해 공단 인력을 배출하는 산소같은 역할을 하고있다. ⓒ 김춘만 논설위원

대학이 낭만인 시절 학생들은 저마다 동주와 릴케의 시를 읽고 헤겔과 니체에 심취했다. 사회 정의를 외치며 밤새워 모순과 실천을 토론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1학년 때부터 치열한 취업경쟁에 휘말리고 있다. 서울의 명문대도 예외는 아닐진데 지방대 학생들은 훨씬 취약한 상황에 처해있다.

이 문제는 학생들이 해결할 수 없다. 기성세대들이 책임감을 갖고 해결해야 한다. 지방대와 지역을 살리는 일은 가까이는 우리 자녀와 크게는 국가를 살리는 길이다.

특히 정부와 지자체는 원론적인 정책을 떠나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대안을 만들고 반드시 실행에 옮겨야 한다. 손 놓고 있다가 젊은이들과 나라가 파국을 맞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돈 뉴크는 이렇게 말했다. 성을 쌓는 자는 필히 망할 것이요 끊임없이 이동하고 실천하는 자만이 살아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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