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역사가 저녁노을을 머리에 이고 있다. ⓒ 김춘만 기자
▲ 서울역사가 저녁노을을 머리에 이고 있다. ⓒ 김춘만 기자

수많은 공간중에 아마도 역보다 많은 이야기와 추억들을 담고 있는 장소는 드물 것이다.

그 중에서도 서울역만큼 많은 사람들의 인생사를 함께한 역도 없을 게다. 그 이야기를 풀어내면 서울에서 부산까지 수백 번은 왕복할 만큼의 길이가 될지도 모른다.

불과 수십 년 전만 해도 명절이면 서울역은 수많은 인파로 붐볐다. 몇 시간씩 줄을 서는 게 예사였고 전 날 노숙까지 마다하지 않았다. 그래도 서울역은 언제나 설렘과 상기된 얼굴로 마주했고 수많은 사람들의 추억과 이야기를 보듬었다. 물론 지금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이용하지만 그때에 비하면 격세지감이다.

서울역사는 바로크 르네상스양식이 혼합된 형태로 붉은 벽돌로 지어졌다. 거기에 화강석으로 두른 띠와 벽면 귓돌이 조화를 이뤄 아름다움을 더한다. 주변의 첨단 빌딩들 사이에 오롯이 서 있는 부드럽고 온화한 자태는 미학적으로도 완벽함을 보여준다.

수많은 인파로 붐비던 서울역사는 현재 서울역사 문화관으로 탈바꿈했다. 지금은 기차를 기다리며 무료한 시간을 달래는 시민들의 훌륭한 벗이 되어주고 있다.

▲ 서울역사 문화관에서 전통 문화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한지의 빛깔이 우아하고 단아한 모습으로 보는이의 마음마저 편안하게 한다. ⓒ 김춘만 기자
▲ 서울역사 문화관에서 전통 문화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한지의 빛깔이 우아하고 단아한 모습으로 보는이의 마음마저 편안하게 한다. ⓒ 김춘만 기자

서울역은 본래 만주와 바이칼 너머까지 이어진 철로를 안고 있었다. 아울러 유라시아 대륙을 잇는 장대한 꿈을 꿀 수 있는 기착점이기도 했다. 그 꿈이 현재는 북한과의 단절로 꿈으로만 남아 아쉽기 짝이 없다.

다소 의외지만 우리나라에서 첫 기적을 울린 역은 현재의 노량진역이다. 1889년 9월 18일 오전 9시 노량진역에서 미국제 열차가 굉음을 울리며 인천 제물포로 출발했다. 철도의 날도 이날을 기념해 제정되었다.

서울역은 1900년이 되어서야 노량진역과 연결된다. 처음 서대문에 자리 잡았다가 남대문으로 이전하며 남대문역에서 경성역으로 이름을 바꾸게 된다.

서울역은 빨라졌다. KTX의 등장과 함께 우리의 이야기와 추억도 쏜살같이 실려 간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두 배 이상 빨라졌으면 그만큼 더 여유로야 하는데 사람들은 더 바빠진 것 같다. 빠름은 더 빠름을 낳고 결국에는 빠름의 결핍으로 초조와 불안 속의 현대인이 되고 있다. 

여행에서 꾸는 꿈은 바람에 실리고 역에서 꾸는 꿈은 기차에 실린다. 그리고 그 꿈은 느림과 여유로움에 익어간다. 그리 바쁘지 않은 날에는 좀 더 느린 기차를 타고 여행을 떠나보자.

차창 밖의 풍경을 버리고 가는 KTX보다 풍경을 담고 가는 기차를 타보자. 그 풍경 속에 지나온 인생과 다가올 미래를 함께 그려보자.

입춘이 지나면 봄이 한 걸음이다. 서울에서 직선으로 잇는 대도시보다 굽이굽이 산하를 도는 기차를 타고 인생을 관조해 보는 것도 좋은 여행이 될 것이다.

무엇보다 서울역이 남과 북을 관통해 진정한 한반도 철도의 대동맥이 되기를 기원해본다.

그 꿈도 서울역사에 고이 담겨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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