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재자나 사이비·이단 집단의 교주는 자유라는 말을 남과 다르게 정의해서 사용합니다. 그런데 이런 것은 '내게는 자유가 너에게는 폭력'이 될 수 있기에 함부로 사용하면 안 됩니다.

인간 사회는 자유로 인한 갈등을 조정하기 위해 개인적으로 허용되는 범위를 법률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는 어처구니없는 주장으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와 피해를 줄이기 위한 것입니다.

'진리가 자유를 주는 것이냐, 자유가 사람을 진실(진리) 되게 하는 것'이냐. 대학시절 <요한복음 8:32>을 가지고 선배가 제게 장난처럼 물어 본 말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선배가 제게 말했던 언어유희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요한이 가지고 있는 히브리와 헬라의 사유방식을 같이 알아야 한다는 윤곽선만 찾아냈을 뿐 아직까지도 답은 얻지 못했습니다.

히브리어에서 진리를 뜻하는 단어는 '에메트'입니다. 에메트는 각 철자가 히브리어 알파벳의 시작(אㆍ알렢)과 중간(מㆍ멤), 끝(תㆍ타우)을 나타냅니다. 히브리어에서 진리는 처음과 중간 그리고 끝이 같은 것입니다. 헬라어로 진리는 알레데이아(ἀλήθια)인데, 이는 '숨기지 않음'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성경에서 말하는 진리란 처음과 중간, 끝이 항상 같고 숨긴 것이 없는 것입니다.

히브리어와 헬라어에서 진리라는 말이 가지고 있는 이런 조건을 갖춘 상태에서 자유를 논해야 제대로 자유에 대한 정의를 내릴 수 있다는 것이 성경의 요지입니다. 예를 들어 처음과 중간, 끝이 같아야 하기에 10대에는 자유였지만 20대에는 자유가 아닌 것은 진짜 자유가 아닙니다. 그리고 50∼60대에 후회만 남기는 자유는 그 사람이 구속을 자유로 착각한 것입니다.

▲정이신 아나돗학교 대표간사ㆍ아나돗공동체 위임목사
▲정이신 아나돗학교 대표간사ㆍ아나돗공동체 위임목사

자유에 대한 일반 사회적 이해가 살갑게 다가왔던 것은 북향민을 가르치면서부터였습니다. 아나돗학교에서 만난 북향민은 자유, 행복, 봉사 등의 말 자체에 대해 철학적, 사회학적 사유를 해보거나 이를 제대로 배워 본 적이 없었습니다. 이들에게 자유란 자기에게 주어진 책임 소재의 범위부터 정확하게 배워야 하는 대한민국의 값진 선물입니다.

그런데 이 땅에서 누릴 자유를 위해 책임져야 하는 것에 본인을 위한 것도 있지만, 앞으로 이 땅에서 살게 될 북향민의 후손을 위한 것도 있습니다. 이를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저들의 자유는 자칫 유혹과 방종으로 치달리기 쉬운 급행열차가 됩니다.

인간이 후손들을 위해 감당해야 하는 책임으로부터 도망치는 것은 자유가 아닙니다. 자유는 현실 속으로 뛰어들어 하나님과 역사가 나에게 준 십자가라는 책임을 다하는 것입니다. 이 책임을 통해 처음과 중간, 끝이 같은 진정한 자유를 맛볼 수 있고 또 얻을 수 있습니다.

바른 답이라 불리는 정답(正答)이 인간의 부족함과 결탁하면 정해진 답이 돼 배타성을 지니는 악순환을 불러일으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것보다는 각자 상황에 맞춰 풀어낸 해답(解答)을 더 좋아합니다. 그런데 이 해답을 그대로 두면 서로 자기 것이 더 맞다고 우겨대서 혼란이 생깁니다. 이것을 가지런하게 질서를 갖춰 정리된 답으로 만들기 위해서 후손을 위해 기꺼이 책임지려는 자유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우리 아이들이 누려야 할 자유를 위해 져야 할 책임을 내가 먼저 환대하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책임의 범위가 늘어날수록 나의 자유도 늘어날 것입니다. 또 책임을 많이 느낄수록 더 여유로워지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선열들이 자유를 위해 피 흘렸던 대한민국의 4월입니다. 어떻습니까. 우리의 아이들에게 아름다운 한반도를 물려주기 위해 져야 할 자유로운 책임을 거룩한 부담으로 받아 들여 보는 것이. 그런 4월은 참 아름답지 않을까요.

■ 정이신 논설실장·목사 = 한양대 전기공학과와 백석대학교 신학대학원을 졸업했다. 한국독립교회 및 선교단체연합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다. 아나돗학교 대표간사와 아나돗공동체 위임목사다. 독서와 글쓰기를 주제로 한 <노희(路戱)와 더불어 책(冊)놀이>를 연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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