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원은 점으로 이어진 선의 세계이고 2차원은 선과 선이 만나는 면의 세계이며 3차원은 면과 면이 만나 높이가 등장하는 입체의 세계입니다.

여기에 차원을 하나 더 높인 4차원이 되면 시간 속을 유영하는 세계가 됩니다. 영화에서는 가끔 4차원을 넘어선 다차원의 세계를 다루기도 합니다. 그러나 4차원도 인간이 감당하기 힘든 세계이기에 그 이상의 차원을 헤아리는 것은 무리입니다.

수학에서 사용하는 좌표식으로 표현하면 1차원은 [X], 2차원은 [X, Y], 3차원은 [X, Y, Z], 4차원은 [X, Y, Z, T]입니다. [X]는 가로, [Y]는 세로, [Z]는 높이, [T]는 시간입니다. 그런데 인간은 3차원에 살면서도 4차원을 지향하는 존재입니다. 자신이 살고 있는 세계는 3차원인데 늘 4차원의 시간을 헤아려야 하는 것이 인간이 지닌 경계의 근원적인 변수입니다.

1차원을 뜻하는 점과 선, 2차원을 뜻하는 면은 아무런 질량이 없습니다. 인간이 이들을 감각적으로 느낄 수도 없습니다. 이들이 3차원이 돼야 비로소 인간이 감각적으로 만지고 느낄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인간이 이들을 인지하기 위해 입체를 만들려면 먼저 점부터 찍어야 합니다. 선이 점으로 이뤄진 집합체이기에 선을 긋기 위해 먼저 점을 찍어야 합니다.

▲정이신 아나돗학교 대표간사ㆍ아나돗공동체 위임목사
▲정이신 아나돗학교 대표간사ㆍ아나돗공동체 위임목사

'나'라는 인생을 살면서 점하나조차 찍지 않고 사는 것은 점도 찍지 않고 그림을 그리려 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물도 치지 않고 고기를 잡으려는 것과 같습니다. 그림, 글씨 모두 점 하나에서부터 시작합니다. '나'라는 점부터 찍어야 제대로 출발할 수 있습니다. 점과 점이 모여, 인간과 인간이 모여 선이 되고 면이 되며 입체가 됩니다. 여기에 시간이 더해지면 하나님의 나라가 됩니다.

디지털 치매에 관한 보도가 여기저기에서 종종 나옵니다. 예전에는 저도 전화번호를 몇개씩 외우고 있었습니다. 환경이 달라진 요즘 안사람이나 딸아이 전화번호도 기억이 안 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스마트폰이 안 보이면 펄쩍펄쩍 뛰고 난리가 납니다. 저의 소중한 정보와 지적 재산이 그 안에 다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저처럼 스마트폰을 다시 찾는 동안 치매기가 가득한 존재로 있어야 한다고 호소하는 이들이 주변에 많습니다.

만약 내가 누구인지 잃어버렸다 해도 그렇게 놀라며 펄쩍펄쩍 뛰었을까요?

사람들은 스마트폰보다 더 중요한 자신을 잃어버려도 그것을 모르고 아주 잘 삽니다. 스마트폰은 엄연히 말하면 내가 아닌데 더 소중한 나를 잊은 것을 모릅니다. 디지털 치매보다 더 큰 자아망각이라는 치매를 앓고 있으면서도 자신이 병에 걸렸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점을 하나 찍는 것은 자아망각을 치료하고 나와 내 안에 계시는 성령님을 찾으려는 노력을 시작하는 일입니다.

내가 왜, 어떻게, 무슨 일을 하라고 이 땅에 오게 됐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기도하는 행위입니다. 이는 성령님이 알려주시지 않으면 알 수 없습니다. 단순히 이론적으로 공부한다고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것이 이뤄지기를 소원했다고 간구했다고 100% 이뤄지진 않습니다. 진짜 소원을 이루기 위해서는 먼저 점 하나를 과감하게 찍어야 합니다. 한 점도 찍지 않고 한 점을 찍을 줄도 모르면서 선과 면, 입체,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는 것은 허황된 일입니다.

부활의 가능성,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다는 영원한 약속은 모든 이에게 주어졌습니다. 그것을 고대하며 살아가야 한다고 가르치는 것이 성경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모든 것의 토대가 되는 한 점의 시작입니다. 오늘도 저는 소망을 얻기 위해 그 한 점을 찍습니다.

■ 정이신 논설실장·목사 = 한양대 전기공학과와 백석대학교 신학대학원을 졸업했다. 한국독립교회 및 선교단체연합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다. 아나돗학교 대표간사와 아나돗공동체 위임목사다. 독서와 글쓰기를 주제로 한 <노희(路戱)와 더불어 책(冊)놀이>를 연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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