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향민 학생에게 빠른 시간 안에 대한민국의 대학에서 요구하는 최저한의 수학능력을 갖추도록 훈련시키기 위해 독해력(讀解力)과 독서력(讀書力)을 구분해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런 용어를 따로 만든 이유는 이들에게 주어진 남다른 상황 때문입니다. 북향민일지라도 대한민국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는 경우 이미 남한의 교육체계에 들어와 있기에 대학입시가 2~3년 단위로 진행됩니다. 그러나 아나돗학교와 같은 대안학교의 경우는 입시단위가 1~2년으로 한정됩니다. 1~2년 안에 최대한으로 이들의 대학수학능력을 함양시켜 줘야 합니다.

대학입학을 위한 독해와 대학교에 들어가서 잘 적응하기 위한 독서가 다릅니다. 그래서 독해력은 주어진 문장을 해독하는 능력, 독서력은 자기가 읽어야 할 텍스트(text)를 종합적으로 구성하는 능력이라고 이 둘을 구분합니다. 또 독서력은 주로 대학에 합격한 예비 대학생들과 대학교에 다니고 있는 북향민에게 집중적으로 훈련시킵니다.

인간이 글이나 책을 읽고 이를 이해하는 행위는 단순히 두뇌만을 활용해서 진행되는 것이 아닙니다. 머리로만 하는 공부는 한계가 있습니다. 알랭 드 보통(Alain de Botton)은 인간의 두뇌를 '결함 있는 호두'라고 표현해 뇌의 근원적인 문제를 설파했습니다. 그는 인간의 호두머리가 대단히 파괴적인 충동을 갖고 있을 뿐 아니라, 어떤 종류의 교육으로도 바로 잡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보통의 비관주의적 현실주의가 아나돗학교에서 문젯거리로 등장한 적이 몇 번 있었습니다. 그때 알게 된 철학자가 '몸의 현상학자'라 불린 모리스 메를로-퐁티(Maurice Merleau-Ponty)입니다.

▲정이신 아나돗학교 대표간사ㆍ아나돗공동체 위임목사
▲정이신 아나돗학교 대표간사ㆍ아나돗공동체 위임목사

메를로-퐁티에 의하면 인간은 아무런 내용으로도 오염되지 않은 순수한 텅 빈 의식 같은 데서 출발하지 않습니다. 인간은 처음부터 피할 수 없이 충만한 내용으로 가득 차 있는데, 그것이 바로 '몸'입니다. 몸을 통해 비로소 인간이 자각하는 외부 대상이 주어집니다.

메를로-퐁티의 글을 보니 북향민 학생의 몸과 성(性)에 대한 이해 없이 뇌파나 생각만 연결해 이들을 가르쳤던 것이 실수였습니다. 전혀 인간적이지 않은 학생들이 탄생하기도 했던 것은 이들의 몸에 대한 이해를 뒷전으로 밀어둔 저의 실수가 만든 결과물이었습니다. 이들의 몸에 얽힌 가슴 아프고 먹먹한 이야기들을 귀담아듣지 않은 채, 이들에게 대한민국의 대학에서 요구하는 지적 수준을 먼저 갖추자고 훈련만 시켰던 것이 처음부터 무리였습니다.

인간으로서 몸의 주인이 돼 살기도 어렵지만, 몸에 딸린 성 역시 마찬가지로 인간답게 살기 위해 북향민 학생이 풀어야 하는 고민이요, 숙제입니다. 그래서 이들에게 인간은 성의 주인이 돼 성의 해방보다는 성의 가치를 이야기해야 한다고 하고, 성에 사랑과 생명, 쾌락 어느 하나라도 결여돼 있으면 좋지 않은 것이 된다고 합니다. 쾌락만이 지나치게 강조된 성은 비정상이고, 사랑이 빠진 성은 은밀한 거래의 대상이 되며, 생명 존중이 사라진 성은 인격 파괴적 패륜, 혹은 중독된 놀이의 일종으로 전락한다고 저의 의견을 말합니다.

성경은 부부의 경우 자신의 몸을 배우자가 주장하라고 합니다(고린도전서 7:4). 내 몸이 가진 성적 주도권은 내가 100% 주인이 아니라 내 배우자가 일부분 주인이라고 합니다. 이 경우 성문제에 관한 대처법은 자기만이 자기 몸의 주인이라고 주장하는 상황과 완전히 달라집니다.

북향민 학생이 이 땅에서 몸과 성에 대한 관리법을 익히는 것은 윤리적 판단을 떠나 이들이 갖춰야 할 삶의 실력입니다. 그래서 이들에게 책임져야 할 일 때문에 이 땅에서 주어진 아름다운 시간과 프로그램을 망치지 말라고 조심스럽게 권면합니다. 더불어 이 땅에서 인간답게 살기 위해 이것만은 늘 기억하자고 합니다. "네가 지닌 몸의 일부는 네가 주인이 아니라 네 배우자가 주인이다!"

■ 정이신 논설실장·목사 = 한양대 전기공학과와 백석대학교 신학대학원을 졸업했다. 한국독립교회 및 선교단체연합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다. 아나돗학교 대표간사와 아나돗공동체 위임목사다. 독서와 글쓰기를 주제로 한 <노희(路戱)와 더불어 책(冊)놀이>를 연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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