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돗 편지] 원수를 라이벌로 바꾸는 거룩함
[아나돗 편지] 원수를 라이벌로 바꾸는 거룩함
  • 정이신 논설위원
  • 승인 2018.06.29 12:19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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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에서 성경적인 가르침이 아니라고 이단사상으로 정죄돼 퇴출된 것 중에 '영지주의'가 있습니다. 영지주의는 인간의 삶을 이원적으로 파악하고 보다 영적 인식에 무게를 둬 세상을 바라봤으며, 유대교의 일원론적 전통보다는 헬라사상의 관점에서 기독교를 이해했습니다.

영지주의의 체계가 워낙 다양하고 여러 가지 혼합사상의 모태가 됐지만, 여기에서 파생된 모든 사상의 전제 조건은 이원론입니다. 영지주의자들은 세상이 영적 인식이라는 선한 원리와 물질이라는 악한 원리로 구성돼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원론에서는 두 개의 다른 차원 사이에 절대적 우열이 존재할 수밖에 없습니다. 상대적 우열이라면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있겠지만, 절대적 우열은 일방적으로 정해진 우선순위가 있기에 그것을 택하지 않으면 죄가 됩니다. 영지주의에 따르면 인간은 등급이 떨어지는 육신의 삶에 얽힌 다양한 경험과 지식보다는 영적 인식, 신비적 직관 등으로 번역하는 그노시스(gnosis)을 우선적으로 추구해야 합니다.

▲정이신 아나돗학교 대표간사·아나돗공동체 위임목사
▲정이신 아나돗학교 대표간사·아나돗공동체 위임목사

영지주의가 기독교에 끼친 해악 중에 가장 큰 것은 성경에 나오는 창조주 하나님이 물질을 만든 저급한 신으로 폄하한 것입니다. 영지주의적인 인식에 따르면 하나님은 저급한 물질을 만든 신일뿐입니다. 또한 영지주의자들은 예수님이 인간으로 태어났다는 것도 거부했습니다. 선한 그리스도의 영이 영지주의자들이 보기에 악한 인간의 육신으로 이 세상에 태어났다는 것을 그들은 인정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잠시 영으로 이 세상에 왔다가 다시 하늘나라로 갔을 뿐이라는 가현설(假現說·docetism)을 주장했습니다.

이들이 남긴 영열광주의(靈熱狂主義)의 어두운 그림자가 아직까지 우리 주변에 남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 삶의 특정 영역만을 거룩한 것이라 보고, 부활의 삶이 주는 전 인격적인 거룩함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으면서, 교회에서 진행하는 행사에는 아주 독실하게 다니는 사람들을 보게 됩니다. 이런 행동이 성경의 가르침과 맞지 않지만 그들은 오히려 자신들이 더 성경적인 행동을 하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이 땅에서 주어진 삶을 온전하고 거룩하게 가꾸기 위해 예배하는 것인데, 성경에서 말하는 거룩함에는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 남과 다르게 사는 것이 포함돼 있습니다. 종합해 보면 기독교인들에게 거룩함이란 내가 하나님 앞에서 걸어가야 하는 길을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예수님과 같이 걷는 것입니다. 내가 신앙인답게 살기 위해, 내가 갈 수 있는 길이 아니라 성삼위일체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따라가야 할 정의롭고 공의로운 길을 용기 내어 가는 것이 거룩한 것입니다. 성경에 따르면 크리스천에게 거룩함이란 삶의 중요 목표가 되는데, 이것에는 영지주의 주장처럼 다른 차원이 별개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삶이 거룩해지기 위해서는 생각이 바뀌어야 하는데, 사람의 생각은 하나님의 나라로부터 주어지는 은혜가 있어야 잘 바뀝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없으면 사람들은 늘 보던 시각으로만 사물을 봅니다.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자신이 보지 못했던 시각으로 사물을 보게 됐을 때 우리는 ‘원수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알고 보니 같은 강물을 먹으며, 같은 길을 가고 있는 나의 길동무인 라이벌(rival)이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전까지 원수라는 생각만 들어 ‘어쩌다가 내 인생에 저런 원수가 끼어들었을까’라고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가 다가오고 성령님이 강림하시면 원수인줄 알았는데 내가 게을러지지 않도록 일깨우시려고 내게 붙여주신 라이벌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 모든 과정이 크리스천이 되는 기독교 신앙이고, 삶을 거룩하게 가꾸는 성화(聖化)입니다.

■ 정이신 논설실장·목사 = 한양대 전기공학과와 백석대학교 신학대학원을 졸업했다. 한국독립교회 및 선교단체연합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다. 아나돗학교 대표간사와 아나돗공동체 위임목사다. 독서와 글쓰기를 주제로 한 <노희(路戱)와 더불어 책(冊)놀이>를 연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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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남자 2018-06-29 16:57:26
쉽지가 않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