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성에 가고 싶다] 착한섹스와 나쁜섹스의 '아우성'
[그 성에 가고 싶다] 착한섹스와 나쁜섹스의 '아우성'
  • 이지운 작가·시인
  • 승인 2017.12.29 21:55
  •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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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쪼가리 자작' 저자 이탈로 칼비노 초상화.
'반쪼가리 자작' 저자 이탈로 칼비노 초상화.

마르케스, 보르헤스와 현대문학의 3대 거장으로 일컬어지는 이탈로 칼비노의 <반쪼가리 자작>에서 절대악의 상징인 주인공 메다르도는 양치기 소녀 파멜라를 발견하고 이렇게 말한다.

"내 날카로운 감정 속에는 온전한 사람들이 사랑이라고 부르는 감정과 일치할 수 있는 것이 전혀 없어. 그런데 만일 그렇게 어리석은 감정이 사람들에게 그다지도 중요하다면 나도 그에 상응하는 것을 만들어낼 수 있겠지. 그렇다면 그것은 틀림없이 멋지고 무시무시할 거야."

그 이후, 그는 붉은색 누더기만 걸친 채 신발도 신지 않은 파멜라를 사랑하기로 결심한다.

환상 동화의 교본이라고 할 수 있는 <반쪼가리 자작>의 내용은 이렇다. 17세기, 메다르도 자작은 터키 전쟁에 참가한다. 하지만, 무모하게 대포에 뛰어들어 몸이 산산조각 난다. 그러나 야전 병원 의사들의 노력으로 살아나 고향 테랄바로 돌아가는데, 그의 몸은 악으로 가득한 반쪽 상태였다.

무자비하게 교수형을 내리는 등 사악한 일을 벌이던 자작은 파멜라에게 구애하게 된다. 그러던 중, 자작의 나머지 반쪽이 나타나 절대 선을 베푼다. 두 반쪼가리 자작은 동시에 '파멜라'를 사랑해 결혼식을 감행하고 결투를 벌이는데, 결투 끝에 완성된 하나의 자작으로 돌아온다.

"외삼촌은 사악하지도 선하지도 않은, 사악함과 선함이 함께 혼합되어 있는 온전한 인간으로 되돌아왔다. 표면적으로는 반쪽이 되기 전과 달라진 점은 없었다. 그러나 그는 두 반쪽이 재결합된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아주 현명해질 수 있었다 … (중략) 아마도 우리는 자작이 온전한 인간으로 돌아옴으로써 놀랄 만큼 행복한 시대가 열리리라 기대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세상이 아주 복잡해져서 온전한 자작 혼자서는 그것을 이룰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는 반전 결말의 백미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이다. 인간이란 선과 악이 혼재된 상태라고 이탈로 칼비노는 말한다. 그렇다면 섹스 또한 착한 섹스와 나쁜 섹스가 혼재돼 소통하는 것일까. 과연, 착한 섹스는 무엇이고, 나쁜 섹스는 무엇일까.

먼저, 나쁜 섹스는 배려가 빠진, 이른바 이기적인 섹스다. 이는 상대가 원하지 않는 상태에서 폭력을 수반한 섹스는 물론이고, 쾌락의 도로를 혼자서 질주해버리는 교감 능력이 전혀 없는 섹스라고 생각한다.

이와 반대로 착한 섹스는 둘이 함께 쾌락의 정원을 지나, 피톤치드가 뿜어내는 청정한 오솔길을 따라 안개가 걸쳐놓은 구름다리를 건너 둘만의 보금자리로 날아가는 것이라 생각한다.

보통 남성의 경우, 신체적인 특성상 나쁜 섹스를 하기 쉽다. 그런데, 이러한 섹스에 항거하지 못하고 참고 사는 여성들도 적지 않다.

그러나 이것은 변해야 한다. 신이 인간에게만 선물한 절정의 쾌감을 사수하기 위해 적극적인 날갯짓이 필요하다. 가만히 누워서 자신과는 상관없이 쾌락에 빠져드는 추한 남성의 얼굴을 노려보며 허탈한 신음의 음향효과를 만들 것인가. 아니면 벌떡 일어나 자신의 몸에 맞춘 쾌락의 춤사위를 흐드러지게 출 것인가. 이는 선택 사항이라 할 수 있겠지만,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되는 중요한 문제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것은 선과 악이 공존하는 인간의 욕망 속에서 착한 섹스만 추구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이다. 과도한 스트레스로 이어지는 복잡한 세상 속에서 상대를 배려하고 참아내기란 참으로 어려운 과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때로는 쾌락의 이기적인 반쪼가리 자작이 최신형 슈퍼카를 앞세워 유혹하기도 한다. 그 유혹에 못 이겨 아슬아슬한 곡예 운전을 하게 되면 간혹 중앙선을 침범하는 등 대형 사고로 이어지기도 한다.

착한 섹스로 깊고도 긴 쾌락의 골짜기를 거닐 수 있다고 하고, 나쁜 섹스로 얕고도 추한 거짓 쾌락에 속을 수 있다고 한다면 많은 이들이 착한 섹스를 선호할 것이다.

그러나 세상이 흑백 논리로 간단하게 규정되지 않듯 섹스 또한, 착한 섹스와 나쁜 섹스의 끊임없는 다툼 속에서 적절한 조화가 생겨나기 위해서는 새로운 것에 도전하려는 적극적인 노력이 수반돼야 한다. 그것이 아름다운 섹스를 위한 현명한 선택이 될 것이다.

오늘 밤, 낯설지만 새로운 형태의 행복의 문을 열고, 깊고도 긴 쾌락의 나들이를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

이지운 작가·시인 = 서울산업대학교(현 서울과학기술대학교)에서 매체공학을 전공하고 광고ㆍ홍보ㆍ전시 등 영상시나리오 1000편 이상을 쓴 전업작가다. 최근 남성(男性) 잃은 20명이 섬을 산 이유를 다룬 소설 <더 아일랜드>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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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w 2018-01-01 20:08:08
좋은것과 나쁜것은
둘 모두를 사람합니다

독자G 2018-01-01 17:06:08
행위에서 오는 그 쾌감을 즐기며 쾌락을 목적으로 달리기보다는 그 사람을 보고 달려간다면 좋지 않을까

Ssuni 2017-12-30 13:22:36
착하고 나쁜섹스는 함께 있죠..행복한 하루하루가 되시기를^^

김덕호 2017-12-30 07:37:21
떠나고 싶어요 ... 올해 마무리 하러 ...

오정숙 2017-12-30 00:22:37
착한 섹스와 나쁜 섹스의 아우성이~생명력 넘치는~아름다운 성으로 이어지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