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옷을 벗고 못 안으로 들어갔다. 저녁놀에 물든 구름이 그를 감싸고 있는 듯했다. 그의 가슴은 천국에 온 듯한 느낌으로 넘쳐 흘렀다… (중략) 그리고 사랑스러운 물결들이 그에게 다가와 마치 다정한 여자의 젖가슴처럼 바싹 달라붙었다. 물결들은 매혹적인 소녀들이 물에 녹은 듯한 형상이었다…"
이는 18세기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독일의 작가 노발리스의 <푸른 꽃>의 한 장면이다. 주인공 하인리히는 그리움을 의미하는 푸른 꽃을 찾아다니다, 로맨틱한 섹스가 선물한 황홀경에 흠뻑 빠진다. 여기에서 물이란, 아름다운 섹스를 매개하는 상징물을 뜻한다.
<푸른 꽃>에는 수많은 시가 등장한다. 또한, 환상적이고 신비로운 모험이 처음과 끝을 장식한다. 소설의 내용을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스무 살의 하인리히가 어머니와 함께 외갓집인 아우크스부르크에 가는 동안 늙은 광부, 은둔자, 시인과 연인이 된 마틸데 등을 만나면서 사랑을 알게 되고, 비로소 진정한 시인으로 성장한다는 이야기다. 이 소설은 액자 소설처럼 이야기 속에 이야기가 들어있어 흥미롭게 펼쳐진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노발리스는 29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하게 되어 2부는 첫 장이 마지막이 된다. 노발리스의 약혼자였던 소피 폰 퀸이 죽은 것처럼 소설 속에서 그녀의 화신인 마틸데 또한 죽음을 맞이하자, 하인리히는 삶을 노래하는 시인이 되어 방랑하게 된다.
"어느 여름날 아침 나는 젊음을 느꼈네. 그때 처음으로 내 인생의 맥박을 느꼈네. 내 안의 사랑이 더욱 깊은 황홀경 속으로 빠져들수록, 나의 정신은 더욱더 맑아졌네. 그리고 보다 깊이 그리고 완전히 몸을 섞고 싶은 열망은 매 순간 더 커져만 갔네. 쾌락은 내 인생의 원천이라네. 나는 중심, 나는 성스러운 샘물, 거기서 모든 그리움은 폭풍처럼 흘러나가고, 모든 그리움은 굽이쳐 흐르다 지치면 거기로 다시 돌아가 휴식을 취한다네..."
하인리히는 마틸데를 처음 보는 순간, 사랑을 느낀다. 자신을 사랑할 수 있냐는 마틸데의 물음에 그는 사랑은 뭔지 모르지만, 이제야 삶을 시작한 것 같다며, 그래서 널 위해 죽을 수도 있다고 말한다. 둘의 대화처럼 사랑이 시작되면 지금까지 살았던 무의미한 삶은 버리고, 새로운 출발에 돌입하게 된다.
그 사랑은 우리를 쾌락의 세계로 인도하는데, 이때, 우리의 뇌에서는 엔도르핀이라는 물질을 방출한다. 그리고 '완전히 몸을 섞고 싶은 열망'을 통해 섹스의 절정을 맛보게 되는데, 이때에는 오피오이드라는 물질을 방출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물질들은 하인리히처럼 스무 살의 청춘들에게만 있는 것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 늘어진 뱃살과 거친 피부, 탄력을 잃은 몸뚱어리를 가진 중년이라고 해도 뇌에선 사랑의 물질들을 방출할 준비 태세를 갖추며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과도한 스트레스 등으로 인해 섹스의 절정을 맛볼 수 없는 중년 남성들은 심한 자괴감에 빠진다. 그럴 때는 술 한 잔을 걸친 채 속절없이 흘러간 청춘을 불러내 혼내는 것으로 만족하기도 한다. 하지만, 좌절은 금물이다. 탄탄했던 근육이 흐물거려 결합을 방해해도, 흰머리가 검은 머리를 밀어내며 세력을 확장해도 쾌락은 절대 포기해서는 안 된다. 쾌락을 포기하는 순간, 삶의 숭고한 의지 또한 마지막 잎새처럼 떨어져 뒹굴기 때문이다.
청춘들이 주인공인 로맨틱 드라마에만 중독된 사람들은 황혼의 로맨스를 아예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푸른 꽃을 찾으러 길을 떠나는 것도 스무 살의 청춘만이 할 수 있는 특권이라 여긴다. 그렇다면 황혼의 로맨스를 방해하는 드라마에서 눈을 돌려라. 청춘은 한낮의 뜨거운 태양처럼 강렬하지만, 황혼은 부드럽게 서녘 하늘을 수놓으며 아스라히 스러져간다.
자, 조금 더 나아가 아름다운 해변의 일몰을 떠올려 보라. 떠오르는 해만큼 바다 아래로 사라지는 해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느껴보라. 그것이 고귀한 황혼의 아름다움이다. 눈을 뗄 수 없는 장관에 입이 벌어진다면, 당신의 오랜 연인에게 애정을 담아 길게 키스하며 로맨틱한 섹스를 시작하는 거다. 세포가 하나하나 살아나는 그 쾌감은 콜라겐보다 피부를 더 탄력 있게 만들고, 비로소 당신에게 부드러운 쾌락을 선물할 것이다. 그리움이 움트는 푸른 꽃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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