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탁위에 그 팔은 얌전히 놓여 있으면서 동시에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팔이었다. 벗은 팔, 맨살을 드러내서라기보다, 가운데가 옴폭하게 파인 치마의 굴곡으로 그 존재가 노출된 무릎 때문에, 그리고 치마 아래로 슬쩍 내민 발 때문에 한층 벌거벗은 듯 느껴지는 팔, 이 음탕하면서도 순진한 팔로 헤니아는 카롤을 유혹하고 있었다. '터무니없이 젊은' 그러면서 난폭한 유혹. 헤니아는 귀에 나지막이 감겨드는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그녀의 난폭함을 실은 그 멜로디는 그들 두 사람을 둘러싼 대기에 미묘한 진동을 만들어냈다."

▲ 비톨트 곰브로비치 곰브로비치의 세 번째 장편 <포르노그라피아>를 통해 '억압과 예속, 내분과 갈등으로 점철된' 폴란드 역사에 걸맞은 에로티시즘을 재현하려고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네번째 장편 <코스모스>는 1968년 노벨문학상 후보에 올랐다. 그의 작품은 고국 폴란드에서와는 달리 30개 언어로 번역, 소개되면서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다.

우리에게는 조금 낯선 폴란드 작가 비톨트 곰브로비치의 에로틱한 철학소설 <포르노그라피아>의 한 구절이다. 인간의 가장 은밀한 갈망을 시적인 언어로 승화한 <포르노그라피아>에는 제목에서 연상되는 벌거벗은 몸과 두 육체 간의 뜨거운 소통은 존재하지 않는다.

책에서 말하는 '포르노'란 육체의 벌거벗음이 아닌 성숙이라는 가면뒤에 가려진 추하고 더럽고 수치스러운 욕망의 민낯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포르노그라피아>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가 지배하던 폴란드 시골마을에 중년의 지식인인 작가 비톨트(나ㆍ화자)와 프레데릭(연극연출가)이 초대되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곳에서 두 사람은 10대 소녀(헤이나)와 소꿉친구 소년(카롤)을 만나는데, 이들을 통해 자신들의 욕망을 대리 충족할 가능성을 발견한다.

늙음을 자각하기 시작한 두 남자는 헤이나 약혼자인 20대의 알베르트가 보는 앞에서 성적인 장면을 연상할 수 있도록 연극을 꾸민다. 결국, 이 일이 조그마한 불씨가 돼 알베르트는 극단적인 선택을 감행한다.

소설에서 프레데릭은 삐뚤어진 훔쳐보기의 전형을 보여주기도 하고, 헤이나와 카롤을 향한 집착은 아동성애자로 돌변할지도 모른다는 추측을 낳는다.

그러나 그의 행동이 더럽고 추한 욕망을 드러냄에도 불구하고 비톨트는 젊은이들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성적매력에 매료된 채 프레데릭에게 동조한다.

"열여섯의 싱싱한 목덜미, 짧게 자른 머리카락, 가볍게 튼 자국이 있는, (소년답게) 풋풋한 살갗, 그리고 (젊은) 두상이었다. 그런데도 대체 왜 이렇게 가슴이 진정되지 않는 것일까?"

비톨트가 카롤의 평범하고 미성숙하지만 아름다운 젊음에, 암흑 속에서도 눈부실 만큼 매혹적으로 빛남에, 격렬한 심장의 달음박질을 겪는다. 한 마디로 젊음이 내뿜는 섹스 어필에 영혼마저 빼앗긴 것이다.

▲ <포르노그라피아>는 2003년 폴란드 얀 야쿱 쿨스키 감독에 의해 동명의 영화로 제작돼 2003년 베니스 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됐다. 2003년 바르샤바 영화제 폐막작으로 선정됐고 제8회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돼 국내 관객과 평단으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우리가 흔히 섹스 어필이라고 하면 전형적인 글래머 스타들의 풍만한 가슴과 잘록한 허리, 길게 쭉 뻗은 다리 등 육감적인 여성의 몸과 짧게 자른 머리, 구릿빛 피부, 근육으로 다져진 남성의 몸을 떠올린다. 그리고 그 밑바탕엔 어김없이 젊음이 자리한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젊음에 현혹되는 것일까. 마치 어린아이의 재롱을 보면 자신도 모르게 입을 벌리고 헤벌쭉 웃는 것처럼 젊음은 보는 이에게 풋풋한 상쾌함을, 유쾌함을 안겨준다. 그렇다면, 젊은이들만이 섹스 어필의 유일한 주인공일까.

필자는 이러한 사실을 용납할 수 없다. 이미 젊음의 끝자락을 부여잡고 실랑이를 벌이는 나이가 된 우리는 어쩌란 말인가. 그저 젊음을, 과거를 안주 삼아 술잔을 기울이던가, 비톨트와 프레데릭처럼 젊음의 주변을 서성거리며 추악한 욕망만을 번뜩거려야 하는가 말이다.

결코 섹스 어필을 할 수 없을 것 같은 풍만한 뱃살과 탄력을 도둑맞은 피부. 그것은 아무리 수려한 외모의 여배우라 해도 어쩔 수 없이 맞이할 미래다. 그렇다면 과학의 힘을 빌려 주름을 없애고, 체형을 가꾸는 것만이 도망간 성적 매력을 다시 찾아올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외모는 순간적인 매력을 줄 수는 있지만, 지속적인 매력을 뿜어내기 위해서는 뇌의 섹스 어필이 필요하다. 다시 말해 뇌를 섹시하게 만들면 된다. 그렇다고 지식을 쌓으라는 게 아니다.

책만 많이 읽으라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상대를 관찰하고 그 또는 그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뇌에 저장하는 습관, 성적 취향을 파악하고 과감하게 시도해보려는 시도 또한 뇌를 섹시하게 만드는 것이다.

오늘부터 섹시한 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면 당신은 글래머 배우가 부러워할 글래머 '뇌섹녀', '뇌섹남'이 되고도 남을 것이다.

■ 이지운 작가·시인 = 광고·홍보·전시 등 영상 시나리오 1000편 이상을 쓴 전업작가로 <서정문학> 제59기 신인상을 수상하며 시인으로 등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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