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성에 가고 싶다] 영원한 사랑은 언제나 그대 곁에
[그 성에 가고 싶다] 영원한 사랑은 언제나 그대 곁에
  • 이지운 작가∙시인
  • 승인 2018.08.29 13:01
  • 댓글 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곰은 친숙한 동물이다. 곰 인형을 안고 자는 아이들은 곰이 위협적이거나, 사람을 해치는 맹수라 생각하지 않고, 친구로 여긴다. 꿀을 좋아하는 덩치 큰 곰이 순수하게 느껴져 무서움을 없애기 때문이다.

그러나 곰은 무섭다. 애니메이션 속에서 귀엽게 손짓하던 앞발로 슬쩍 휘두르기만 해도 치명상을 입힐 수 있다. 슬쩍 들어서 던지기만 해도 죽을 수 있다. 그런 곰의 이야기가 있다. 아니, 숲의 전령으로 여기는 곰을 사냥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소년은 곰의 발자국을 보았다. 뒤틀린 모양 그대로 젖은 땅이 웅덩이처럼 움푹 파여 있었다… (중략) 발자국이 영영 끊긴 듯한 순간마다, 저 자신마저 영영 길을 잃은 듯한 순간마다, 발자국은 계속 눈앞에 하나씩 나타났다. 소년은… 빠르고 강하게 요동치는 심장박동 소리 위로 크게 숨을 몰아쉬며, 지치지 않고 발자국을 따라갔다… 그때 소년은 곰을 보았다… 꼼짝도 하지 않고, 정오의 뜨거운 햇살이 내리꽂히는 풀밭에 서 있었다… 잠시 햇빛 속으로 걸어 들어가더니 다시 나와 잠시 멈추고는 어깨너머로 또 한 번 소년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곰은 갔다…"

사람을 봐도 무서워하지 않는 곰, 올드벤(Old Ben)은 사람을 공격할 생각이 없는 듯 보인다. 물론, 사람들 또한 매년 곰 사냥을 떠나기는 하지만 곰을 죽일 생각도 없다. 올드벤은 단순히 크고 사나운 야생동물이 아닌 인간과 함께 살아가는 자연의 일부가 된 탓이리라.

노벨문학상을 받은 윌리엄 포크너는 1942년 <곰>이라는 글을 세상에 내놓았다. 그는 이 소설을 통해 인간은 자연의 지배자가 아닌 자연의 일부라고 부르짖는다. 또한, 인간이 인간을 비인격적으로 대하는 노예제도에 대한 반감을 여지없이 드러낸다.

열 살부터 숲에 이끌린 어린 사냥꾼 아이작을 중심으로 그의 스승인 샘 파더스, 사촌 매캐슬린, 소령 등 많은 이들은 곰을 사냥한다는 이유로 숲에 모여들고, 그 숲에서 자연이 주는 질서에 순응하며 살아야 한다는 깨달음과 통찰력을 얻어가며 성장한다.

그러나 유일한 곰 사냥꾼인 분(Boon)과 맹견 라이언의 활약으로 곰이 죽자, 샘 파더스가 삶을 포기하는 등 사냥꾼들은 거대한 목적과 방향을 잃어버린 채 숲을 떠난다.

▲ 윌리엄 포크너 작가
▲ 윌리엄 포크너 작가

"매캐슬린은 한 연만 다시 읽고 책을 완전히 덮어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는 시구를 읊었다. '너 비록 지극한 희열은 얻지 못할지라도 그녀는 빛바래는 일 없을 테니. 너는 영원히 사랑할 것이고, 그녀는 영원히 아름다우리라.'…"

어느덧 성장한 아이작에게 매캐슬린은 존 키츠가 지은 '그리스 옛항아리에 부치는 노래'를 인용한다. 진정한 남자가 되기 위해서는 영원한 사랑을, 그런 아름다운 사랑을 하라는 것이다. 시인이 노래한 것처럼 어떻게 해야 영원한 사랑을 하며, 또 어떻게 해야 영원한 아름다움을 누릴 수 있을까.

숲에서 올드벤을 처음 봤을 때 아이작은 두려움과 공포 외에 강렬한 존재감을 느낀다. 이는 사춘기 시절, 멋진 이성을 봤을 때 느끼는 감정과 같다. 그런데, 그 대상이 어른이라면 어떨까. 그것이 정신적인 사랑을 넘어 육체적인 사랑으로까지 침범했다면 범죄 행위로 직결됐을 테지만, 다행히 짝사랑으로 그친다. 그것을 단순히 성장통이라고 치부하기엔 그 고통이 너무 크지만 말이다.

지독한 사랑, 영원토록 그를 위해 존재할 것 같은 강렬함. 그리고 상대는 영원토록 그 아름다움을 유지할 것 같아 얼른 어른이 되어 그에게 내 존재감을 알리고 싶어진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이다. 내가 아름답게 성장할 때 상대는 빛바랜 나뭇잎처럼 시들어간다. 그래서 어른이 되는 순간, 영원불멸할 것 같은 사랑은 연기처럼 사라져버린다.

이런 사랑의 아픔을 겪었음에도 제 또래의 이성이 마음에 안착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릴 수 있다. 그 이성과 마음을 넘어 몸으로 소통하는 온전한 사랑을 하는 일은 더더욱 쉽지 않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내가 마음에 품었던 이보다 좀 서툴고, 좀 덜 세련된 것 같아도 그들은 같이 성장하기에 바람처럼 사라져버릴 존재가 아니다. 내 손을 만지고, 허리를 감싸고, 자극이 강렬한 부분을 부드럽게 어루만지기까지 기다림이 필요하지만, 그것은 영원한 사랑을 위한 애피타이저다.

사랑은 나이도, 국경도 뛰어넘는 비법을 갖추었다지만, 영원을 꿈꾸는 사랑은 같이 발 맞추고 걸을 수 있는, 눈높이가 맞는 또래의 이성에서 가능한 일이다. 자, 지금 당신의 주변에 있을 영원한 사랑을 찾아보자. 곰을 찾아 숲을 배회하는 일일랑 제발 그만두고, 주위를 꼼꼼하게 살펴보는 거다. 운명적인 사랑은 언제나 가까이에서 당신이 찾아주길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 이지운 작가·시인 = 광고·홍보·전시 등 영상 시나리오 1,000편 이상을 쓴 전업작가로, <서정문학> 제59기 신인상을 수상하며 시인으로 등단했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2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혜워니 2018-08-29 17:33:38
진한 여운이~~

사슴 2018-08-29 16:55:09
책 한권을 다 읽은 느낌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