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성에 가고 싶다] 야성의 사랑, 그 뜨거움에 대하여
[그 성에 가고 싶다] 야성의 사랑, 그 뜨거움에 대하여
  • 이지운 작가∙시인
  • 승인 2018.04.23 14:09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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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누군가를 홀리듯 바라볼 때가 있다. 지하철이나 버스, 또는 길을 거닐 때 눈을 사로잡는 매력에 나도 모르게 뚫어지게 쳐다본다.

바라봄의 유혹은 결코 멈출 수가 없다. 상대가 알든 모르든 그 관찰은 계속 이어진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훑는 동안 머릿속에는 이야기가 생겨난다.

그랬다. 무수한 책 중에 제목만으로 나는 이 책을 선택했다. 무섭게 노려보는 개의 시선이, 그 밑에 적힌 <야성의 부름>이라는 제목이 사로잡은 것이다. 개가 주인공인 책, 신비로웠다. 굴곡진 인생을 파란만장하다고 표현한다면 주인공 벅의 견생(犬生) 또한 그것 못지않았다.

"벅은 손턴이 거칠게 포옹할 때나 귀에 대고 욕을 속삭일 때 가장 행복했다. 손턴이 벅을 앞뒤로 흔들어 줄 때마다 벅은 심장이 밖으로 터져 나오는 것처럼 황홀함의 극치를 맛보았다. 그리고 손턴이 그를 놓아줄 때면 그는 펄쩍 튀어 올라 웃음을 머금고 우아한 눈빛을 띤 채 말을 못 하는 대신 목젖을 떨며 그렇게 한동안 조용히 있었다..."

밀러 판사의 집에서 편하게 지내던 벅은 납치를 당하며, 하루아침에 우편 썰매를 끄는 등 곤봉과 송곳니가 지배하는 야성의 세계로 추락한다. 그의 삶은 추위와 배고픔, 대장의 자리를 차지하려는 극렬한 전쟁으로 죽음의 문턱까지 치닫는다.

하지만, 벅은 자신을 죽음으로 내모는 주인에게 끝까지 저항하고, 그 와중에 손턴을 만나 목숨을 건진다. 그는 벅을 살리고, 벅은 다시 그를 살린다. 그리고 안락한 사랑을 맛보다, 손턴이 죽자, '야성의 부름'에 힘입어 숲으로 향한다.

▲ 잭 런던 작가
▲ 잭 런던 작가

이 글을 쓴 작가 잭 런던은 인간의 삶을 '벅'이라는 개를 통해 객관적으로 투영하고자 했다. 그래서 그런지 글을 읽는 내내 벅이 개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바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거친 고통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하지만, 글의 후반부에 나오는 벅과 손턴의 사랑은 어떤 에로스적인 사랑보다 더 나를 자극했다.

"손턴이 그를 만지거나 그에게 말을 걸 때 벅은 말할 수 없는 행복감으로 흥분했지만 이런 사랑의 증거를 얻어 내려고 애쓰지는 않았다… (중략) 그는 열정에 가득 차서, 하지만 경계는 풀지 않고서 손턴의 발아래에 몇 시간이고 누워있곤 했다. 그럴 때면 벅은 정신을 집중해 그의 얼굴을 들여다보고 곰곰이 생각하고 관찰하고 스쳐 지나가는 표정 하나도 놓치지 않고 동작 하나하나, 심지어 자세를 바꾸는 모습까지 놓치지 않고 지켜보곤 했다."

벅을 통해 야성의 사랑을 다시금 깨닫는다. 우리 몸속에 존재하는 야성을 깨우고, 그 안에서 사랑의 대상을 관찰하고, 사랑의 부름에 응답하는 것. 그리고 영리한 벅이 손턴의 손에 이빨 자국을 내며 사랑을 표현했듯 그 또는 그녀의 가슴에 사랑의 자국을 내야 한다. 마음을 흔들어놓고 바람처럼 슬쩍 사라져버리는, 야성이 가득한 그를 어떻게 하면 내 사랑으로 안착시킬 수 있을 것인가.

야성의 사랑은 결코 서두르면 안 된다. 그렇다고 천천히 하면 더더욱 안 된다. 열심히 내달렸지만, 눈앞에서 멀어지는 열차를 보며 허탈함을 느끼듯 그렇게 시간을 놓쳐 떠나 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뭐가 이렇게 까다롭냐고 하겠지만, 야성의 사랑이기에 결코 쉽지 않다.

야성을 가진 그와의 섹스는 어떻게 해야 할까. 심장이 터져버릴 것처럼 뜨겁게 달궈져 있더라도 속내를 드러내지 말고, 마음을 애태워야 한다. 영화를 상영하기 전에 예고편으로 분위기를 고조시키듯 그렇게 천천히 야성을 끄집어내야 한다. 작은 으르렁거림도 괜찮다. 서열을 위한 투쟁이 아니라 서로의 취향을 알기 위한 탐색전은 바람직하다.

아마도 이러한 사랑을 통해 절정을 맛본다면 그것은 달콤한 초콜릿과는 비교도 안 되는 격정 그 자체일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흔히 야성의 사랑을 꿈꾸곤 한다. 몸의 세포를 깨워줄, 그런 짜릿한 사랑 말이다. 그러나 야성의 사랑에는 언제나 곤봉과 송곳니가 도사리고 있다. 상대를 의심하는 불신의 곤봉과 집착이라는 송곳니가 치명적인 위험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조금 있으면 여름이 뜨거운 바람을 내뿜으며 봄을 저 멀리 쫓아낼 것이다. 그리고 분홍빛 꽃들이 자리를 뜨면 싱그러운 초록으로 무장한 야성이 나타날 것이다.

그때가 바로 적기다. 야성의 사랑에는 당당함의 단비가 최고다. 비가 온 뒤에 신록이 짙은 초록을 뿜듯 당신의 사랑에도 그런 날이 반드시 올 것을 믿고 돌진하라. 그가 밤이 되면 사라지는 야성의 숲으로.

■ 이지운 작가·시인 = 서울과학기술대학교에서 매체공학을 전공하고, 광고·홍보·전시 등 영상 시나리오 1000편 이상을 쓴 전업작가다. 휴먼 판타지 소설 <더 아일랜드>를 출간했으며, <서정문학> 제59기 신인상을 수상하며 시인으로 등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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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신 2018-04-23 20:15:58
야성이 사랑이 되려면... 어렵네요...

야인시대 2018-04-23 17:18:31
문학속의 지혜를 찾아서...

오정숙 2018-04-23 15:18:28
작가님도~여름 한낮 때마침 내리는 거침없고 솔직한 단비처럼~영혼을 적시는 야성의 사랑을 하시길 바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