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성에 가고 싶다] 아름다운 자극으로 깨어나라
[그 성에 가고 싶다] 아름다운 자극으로 깨어나라
  • 이지운 작가∙시인
  • 승인 2018.07.05 11:14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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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픈 인간이다. 나는 심술궂은 인간이다. 나란 인간은 통 매력이 없다. 내 생각에 나는 간이 아픈 것 같다. 하긴 나는 내 병을 통 이해하지 못하는 데다가 정확히 어디가 아픈지도 잘 모르겠다. 의학과 의사를 존경하긴 하지만 치료를 받고 있지 않으며 또 받은 적도 결코 없다. 게다가 나는 아직도 극도로 미신적이다…."

이는 러시아의 대문호인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 <지하로부터의 수기>를 여는 첫 문장이다. 이 소설은 매우 독특한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1부 <지하>에서는 지하에 자신을 감금시킨 마흔 살의 주인공이 끝없는 말을 쏟아내고, 2부 <진눈깨비에 관하여>는 과거 이십 대를 회상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왜 주인공은 지하로 숨어들었을까. 이십 대에 하급 관리로 일했던 그는 학창시절부터 줄곧 외톨이였다. 책을 친구 삼아 살았기에 방대한 지식을 품고 있었지만, 사람과의 관계에서는 매우 서툰 인간이다. 그는 자기가 어떤 인간인지조차 알려 하지 않았고, 그저 사람들을 혐오하는 데에만 정력을 쏟는다. 그리고 피해 의식과 자기 연민으로 똘똘 뭉쳤기에 사람들의 작은 행동에도 심한 모욕을 느끼며 복수를 구상한다. 그러나 아무런 행동은 취하지 않는다. 책으로만 알게 된 지식, 책으로만 알게 된 사랑, 그의 삶은 지식이 지배하는 작은 서재가 전부이기 때문이다. 그러다 결국, 약간의 유산을 물려받자, 아무 일도 하지 않은 채 지하에 틀어박힌다.

그는 이십 대에 초대받지 않은 동창생들 모임에 참석하지만, 함께 어울리려는 노력은커녕 엉뚱한 행동으로 눈살만 찌푸리게 한다. 동창생들을 쫓아 유곽까지 따라가 그곳에서 매춘부 리자를 만나 온갖 잔인한 말을 퍼붓는다. 격앙되어 자신의 주소를 건넨 탓에 며칠 동안 리자가 찾아올까 전전긍긍하던 그는 하인에게 히스테리를 부리는데, 그 순간 그녀가 찾아온다. 애매한 분위기에서 두 번째 관계를 갖고 그녀에게 돈을 찔러주지만, 리자는 돈을 남긴 채 조용하게 떠난다.

▲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그러니까 정작 난 그녀가 나를 찾아온 목적이 결코 동정 어린 말을 듣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사랑하기 위해서였다는 것을 통 깨닫지 못한 것이니, 실상 여자에게는 바로 이 사랑 속에 부활, 그 종류를 막론하고 온갖 파멸로부터의 구원, 갱생이 모두 담겨 있으며, 그 밖의 다른 방식으론 나타날 수도 없잖은가..."

리자가 떠난 이후, 그는 깨닫는다. 그녀가 사랑을 위해 찾아왔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에게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사랑이 왔음에도 그는 다시 지식의 방 안으로 숨어버린다.

갑자기 의문이 밀려든다. 나에게 찾아온 그(또는 그녀)의 의미를 깨달을 수 있을까. 그가 보내는 사랑의 시그널을 한 번에 알아볼 수 있을까.

방대한 지식으로 머리를 꽉 채우고, 근심과 불안으로 그가 들어와 있을 공간 하나 마련하지 않은 채, 사랑하겠다는 의지만을 불태운다면 그게 무슨 소용인가. 과감하게 자기 생각과 쓸데없는 지식일랑 화끈하게 버릴 줄 아는 용기야말로 사랑을 대하는 자세가 아닐까.

정신적인 사랑만큼 육체적인 사랑도 중요하다. 그러나 육체적인 사랑에 너무나 몰입하면 자극의 갑질에 놀아나게 된다. 책에서 주인공은 클레오파트라가 황금 핀으로 여자 노예들의 젖가슴을 찔러 그들이 비명을 지르며 몸을 비트는 것에 쾌감을 느꼈다는 사실을 야만적인 행위라며 규탄한다.

혈 자리에 침을 놓음으로써 몸의 회복을 꾀하는 침술의 원리처럼 우리 몸에도 침과 같은 자극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섹스에서는 더더욱 그러하다. 연애 세포가 죽어 있는, 사랑의 행위를 해도 무덤덤한 그런 해묵은 관계일수록 그런 침의 자극은 굉장히 중요하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야만적이지 않으면서도 아름다운 자극이 될까. 자극을 실행하기에 앞서 반드시 상대를 알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쉽지 않은 일임에는 틀림없다. 그렇지만, 힘들다고 포기한다면 그냥 혼자 사는 게 속 편한 일인지도 모른다. 폭포처럼 순식간에 쏟아지는 외로운 물줄기를 몸으로 맞고, 지하에 틀어박히고 싶다면 말리지는 않겠다.

그러나 뭉게구름이 수놓은 파란 하늘을, 별들의 현란한 파티를,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함께 웃으며 바라보고 싶다면, 상대를 알기 위해 애쓰자. 그의 마음의 길을 따라 조용하게 거닐며 그와 공감하도록 해보는 거다.

그 노력이 그대에게 황금 핀 못지않은 굉장한 자극을 선물할 뿐만 아니라, 밤하늘에는 아름다운 축포가, 새들의 축하 노래가 쾌감을 증폭하며 행복의 문을 활짝 열 테니 말이다.

자, 어서 달려가라. 아름다운 자극이 넘실대는 그의 침실로!

어린애 가슴처럼 콩닥콩닥 귀엽게 뛰는 그녀의 침실로!

■ 이지운 작가·시인 = 광고·홍보·전시 등 영상 시나리오 1000편 이상을 쓴 전업작가로, <서정문학> 제59기 신인상을 수상하며 시인으로 등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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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차장 2018-07-13 17:11:15
콩닥공닥... 어흐~ ㅡ ㅡ;;;;

신이랑 2018-07-05 18:46:12
그성에 가고싶다 읽어보고 싶은소설이여요

구공상종 2018-07-05 15:38:33
무디어가고 익숙해져가고 잇는듯,없는듯 때론 자극이ㅡ필요한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