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네에게 고통과 결혼하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어. 그런 사람들이 좀 있거든. 그들은 고통과 결혼해서 꼭 부부처럼 함께 먹고 자고 하지. 그러다가 즐거움을 알게 되면 자기가 간통을 저지르고 있다고 생각할 정도가 된다니까…"

미국의 노벨문학상 작가인 솔 벨로가 1956년 발표한 작품 <오늘을 잡아라>의 한 구절이다. 이 소설은 40대 실직자인 토미 윌헬름이 뉴욕 브로드웨이의 몇 블록을 오가며 하루 동안 겪게 되는 절망적인 일상을 담고 있다.

자신의 관점에서만 타인을 바라보는 외과 의사로 성공한 아버지, 별거 중인 채 아이들의 양육비만 재촉하는 이기적인 아내, 새로운 인생의 빛으로 인도하지만, 뭔가 수상한 탬킨 박사 등의 인물이 사랑, 관심, 소외 등의 철학적인 주제를 담담하게 펼쳐낸다.

가만히 소설의 내용을 살펴보자면, 직업도 잃고 가족으로부터 버림받은 윌헬름은 아버지가 투숙한 뉴욕의 글로리아나 호텔에서 빈둥거리며 지낸다. 실패의 연속인 그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아버지와 말다툼을 하고 좌절해 있는 윌헬름에게 탬킨 박사는 기막힌 충고를 한다.

"사람들을 '바로 지금'으로 데려와야 해. 현실 세계로, 현재 이 순간으로 말이야. 과거는 우리에게 아무 소용이 없어. 미래는 불안으로 가득 차 있지. 오직 현재만이 실재하는 거야. '바로 지금'. 오늘을 잡아야 해..."

이런 강력한 충고에도 윌헬름은 도무지 해결점을 찾을 수가 없다. 재정적인 압박에 힘들어하던 그는 주식으로 돈을 벌게 해 주겠다는 탬킨 박사의 말에 전 재산을 투자하지만, 탬킨 박사는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다.

탬킨 박사를 찾던 중, 윌헬름은 어느 장례 행렬에 떠밀려 교회 안으로 들어가고, 거기에서 오열하며 인생의 깊은 심연에 빠져든다.

▲ 솔 벨로 작가
▲ 솔 벨로 작가

그렇다면, 탬킨 박사의 충고처럼 윌헬름은 오늘을 잡았을까. 그는 오늘은커녕 사랑도 잡지 못했다. 아내에게서 어떠한 사랑도 찾지 못한 그는 올리브라는 여인을 만나 사랑을 쟁취한다. 그러나 사랑의 기쁨은 슬픔으로 옷을 갈아입으며 비극을 잉태하고 만다.

가끔 우리는 사랑에 대해 많은 착각과 오해를 반복하는데, 이는 사랑이 매우 다루기 힘든 소재이기 때문이다. 자칫하면 깨지기 쉬워 사랑을 배달할 땐 큼지막하게 '파손 주의. 취급 주의'라고 써야 할 정도다. 그래도 안심할 수 없어 조심하고 또 조심하지만, 깨지는 경우가 다반사다.

사랑의 착각과 오류에 빠진 이들은 이런 질문을 한다.

"지금 내 곁에 잠들어 있는 그(그녀)가 과연 나를 사랑하고 있을까요?"

상대의 속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볼 수 없는 우리는 그의 말이, 그의 행동이 사랑을 대변한다고 믿고 아주 세밀하게 관찰하지만, 되돌아오는 답은 '알 수 없음'뿐이다. 그러나 관찰하는 내내 의심의 싹은 꽃을 피우고 풍성한(?) 열매를 맺는다.

그의 부드러운 혀의 감촉도 수상하고, 코뿔소처럼 밀어붙이는 힘도 수상하다. 오르가즘이라는 골대 앞에서 헛발질하는 것도, 너무 빨리 슛을 쏘는 것도 모두 수상함을 가중한다. 증거 불충분으로 기각될 게 분명하지만, 엄한 곳에서 힘을 쓰고 온 것은 아닌지 의심의 눈초리를 총동원해본다.

자, 이런 일을 하다 보면 행복해야 할 오늘은 쏜살처럼 내일로 달아나버린다. 그러니 이제 의심의 눈초리를 벗어버리자.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고 묻는 이가 있다면, 책의 한 구절처럼 사랑의 소신을 말해보련다.

나는 노력한다. 그가 던지는 말보다는 그의 깊은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도록.

나는 내던진다. 거짓의 껍데기를 훌훌 벗고, 진실의 알몸을 당당하게 보여줄 수 있도록.

나는 지지한다. 그를 내 기준으로 판단하지 않고, 묵묵하게 응원할 수 있도록.

나는 갈망한다. 언제나 달콤쌉싸름한 사랑의 환희에 빠져들 수 있도록.

나는 내달린다. 어제의 그가 아닌, 오늘의 그를 만날 수 있도록.

그렇게 나는 빠르게, 아주 빠르게 달려갈 것이다.

바로 지금 그대에게로, 사랑하는 그대에게로…

■ 이지운 작가·시인 = 광고·홍보·전시 등 영상 시나리오 1000편 이상을 쓴 전업작가로, <서정문학> 제59기 신인상을 수상하며 시인으로 등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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