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내 손가락이 로테의 손가락에 닿거나 탁자 밑으로 서로의 발이 부딪치기라도 하면, 내 모든 혈관은 주체할 수 없는 전율로 떨리곤 한다네! 그럴 때면 불에 덴 것처럼 몸을 움츠리곤 하지 ··· (중략) 그런데 어디에도 매이지 않는 그녀의 순진무구한 영혼은 모른다네. 자신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친근한 행동이 나를 얼마나 자극하는지를. 대화 중에 그녀가 자기 손을 내 손 위에 슬며시 올려놓거나 이야기에 열중한 나머지 내 곁에 바짝 다가앉는 바람에 천사 같은 그녀의 숨결이 내 입술에 와 닿기라도 하면 난 벼락에 맞은 듯 그 자리에 쓰러져버릴 것 같네."

로테를 향한 베르테르의 절절한 사랑의 감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이 글은 세계가 사랑하는 작가 괴테의 첫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한 구절이다. 이는 스물다섯 살인 젊은 괴테의 고뇌와 사랑의 처연함이 생생하게 담겨있는 작품으로, 1774년 출간과 동시에 폭발적인 사랑을 받았다. 

모두 82편의 편지로 구성된 이 소설은 당시 베르테르가 즐겨 입었던 노란색 조끼와 푸른색 연미복이 유행할 정도로 젊은이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으며, 모방 자살이라는 비극적인 베르테르 효과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베르테르는 무도회를 가는 마차 안에서 로테의 친구들을 통해 그녀가 아름답고, 지적이며, 순수한 매력의 소유자로 약혼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러나 베르테르는 로테를 보는 순간, 그녀를 향한 애정이 솟구쳐 오름을 느낀다. 이는 또한, 로테에게 약혼자가 있다는 사실이 그의 불타는 열정을 결코 방해할 수 없다는 것을 뜻한다.

"그녀를 너무 자주 만나지 않겠다고 몇 번이나 결심했는지 모른다네. 하지만 과연 그 결심을 무슨 수로 지킬지! 나는 매일 유혹에 굴복하고는 내일만큼은 집에 머물겠노라고 엄숙히 맹세하곤 하네. 그랬다가 그 내일이 되면 또다시 그러지 않을 수 없는 이유를 찾아내고는 어느새 그녀 곁에 가 있는 걸세."

로테는 엄마의 임종을 함께 한 약혼자 알베르트에게 무한한 신뢰와 애정을 품고 있었음에도 베르테르와 자주 만나 숲을 거닐고, 문학을 이야기하며, 절친이 된다. 로테에게 베르테르는 이성을 뛰어넘는 좋은 남사친(남자 사람 친구)이었을 뿐, 영원까지 함께하고 싶은 사랑이라 울부짖는 베르테르와는 달랐다.

▲ 베르테르

한편 베르테르는 로테의 관계에 더는 만족할 수 없었다. 로테를 사랑하면 할수록 그녀에 대한 소유욕은 시커먼 먹구름처럼, 강렬한 쓰나미처럼 그의 인생을 피폐하게 만들었다.

결국 그는 이승에서 로테를 가질 수 없다면 저승에서라도 갖기를 희망하며 스스로 생을 마감할 결심을 하고, 마지막으로 로테에게 향한다. 그리고는 그녀에게 강압적인 키스를 퍼붓는다. 정말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장면이 아니고 무엇이랴.

하지만 로테의 입장에서 보면 이런 행위는 가히 위협적이며, 폭력적이라 할 수 있다. 베르테르가 좋은 사람이라 믿기에 로테는 자신에게 집착하는 그에게 냉혹한 경계선을 긋지 못하고, 남편인 알베르트마저 친구처럼 대한다.

혹자는 로테가 우유부단했기에 생긴 일이라며 베르테르를 옹호하기도 한다. 그러나 로테가 비록 약혼한 상태라 해도 베르테르가 진정으로 사랑했다면 열정을 다해 사랑 고백을 했어야만 했다.

그리고 그것은 결코 안 된다는 로테의 거절을 들었어야만 했다. 그런 시도를 하지도 않고, 베르테르는 밤마다 로테를 안는 상상을 하며 나홀로 섹스를 했을 것이다.

자, 이 시대의 수많은 베르테르에게 묻는다. 열망의 대상을 떠올리며 소통하지 못한, 결국 폭력으로 달음박질하는 나홀로 섹스를 감행할 것인가. 베르테르가 그랬듯 로테의 입술을 갈망하며 생을 스스로 마감할 것인가.

그러나 괴테가 자신의 비애를 소설로 승화했듯 폭발적인 에너지를 다른 곳으로 쏟아붓는 것은 어떨까. 사랑의 열병이란 뛰어난 감성을 가진 자만이 겪을 수 있기에, 예술적인 활동이라면 어떤 것이든 도전해보자.

그렇게 함으로써 예술이 주는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도 있고, 당신이 만든 작품에 깊이 교감하는 상대를 만나 소통의 쾌락을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혹한의 겨울을 보내고 있을 이 시대의 베르테르들이여, 방구석에 숨어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대신, 당신과 진정으로 소통할 누군가를 찾으러 과감하게 청춘의 밤을 활보하시길. 그렇게 진정한 기쁨의 밤을 맞이하시길.

▲ 베르테르와 로테의 첫 만남을 그린 그림

■ 이지운 작가·시인 = 광고·홍보·전시 등 영상 시나리오 1000편 이상을 쓴 전업작가로 <서정문학> 제59기 신인상을 수상하며 시인으로 등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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