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포스트맨은 벨을 두 번 울린다>의 한 장면.

"옷이 미끄러져 내려갔다. 그런 다음 그녀는 눈을 감았고 베개를 베고 누웠다. 그녀의 머리카락이 뱀처럼 곱슬거리며 어깨 너머로 흘러내렸다. 그녀의 눈은 멍들었고, 가슴은 들어 올려져 나 아닌 다른 쪽을 향하고 있었지만 부드러웠다. 두 개의 커다란 분홍색 반점처럼 퍼져 있었다. 그녀는 이 세상 모든 매춘부의 어머니 같았다. 그날 밤 악마는 제 값어치를 했다."

이는 할리우드가 사랑한 소설 <포스트맨은 벨을 두 번 울린다>의 한 구절이다. 작가 제임스 M. 케인은 데뷔작인 이 소설을 통해 '느와르 소설'의 창시자가 됐다. 내용은 매우 선정적이며, 막장 드라마를 연상시키지만, 알베르 카뮈는 이 소설에서 영감을 얻어 <이방인>을 썼다고 했다. 마음만 먹으면 2~3시간 정도의 시간에 완독할 수 있을 만큼 짧고 격렬한 통속적인 소설 속에서 우리는 인간이 가진 욕망의 이중성을 낱낱이 들여다볼 수 있다.

<포스트맨은 벨을 두 번 울린다>는 부랑자로 살아가던 프랭크가 고속도로변에 위치한 작은 간이 식당 '트윈 오크'에 들어서면서부터 시작된다. 1인칭 시점으로 화자인 프랭크가 담담한 어조로 서술하고 있다. '트윈 오크'의 주인 그리스인 닉은 프랭크에게 정비사로 일해달라는 제안을 하고, 프랭크는 닉의 젊은 아내인 코라에게 한눈에 반해 제안을 수락한다.

▲ 영화 <포스트맨은 벨을 두 번 울린다>의 한 장면.

이쯤 되면 독자들은 프랭크와 코라의 불륜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들은 예상대로 욕망의 선을 과감하게 넘어 악의 구렁텅이로 급발진한다. 두 남녀는 자신들만의 달콤한 삶을 꿈꾸며 닉을 교통사고로 위장해 살해한 뒤 체포된다. 이후 증거 불충분으로 무죄 선고를 받고 일상으로 돌아가는 듯했지만, 결국 악마에게 발목을 잡힌 채 파멸로 치닫는다.

소설의 말미에서 모든 것을 잃게 된 프랭크는 "나는 그녀 말고 아무것도 원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게 너무 컸다"고 고백한다. 사실, 첫눈에 반하는 그 뜨거운 떨림 속에서 이성적인 사고를 하기는 쉽지 않다. 그 상대가 기혼자라도 마찬가지다. 오직 상대만으로 세상이 채워지는 기이한 현상은 우리의 뇌를 교란시킨다. 결코 해서는 안 되는 일들을 꿈꾸기도 하고, 그런 일을 실행하도록 끊임없이 재촉하는 악의 속삭임에 굴복하기도 한다.

프랭크는 코라를 보면 성적 욕망을 억제할 수가 없었다. 그것은 코라도 마찬가지였다. 그러한 욕망으로 인해 둘에게 안정을 제공한 닉은 제거 대상으로 전락하고 만다. 그렇다면 성적 욕망은 이처럼 억제하기 힘든 것이며, 언제나 악의 끄나풀 노릇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일까. 꼭 그렇지만은 않다. 성적 욕망은 다양한 얼굴을 가지고 있지만, 필자는 이곳에서 성적 욕망의 이중성, 즉,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의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 영화 <포스트맨은 벨을 두 번 울린다>의 한 장면.

부정적인 측면은 프랭크와 코라처럼 자신의 욕망만을 채우는 데 급급한 나머지 상대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 이기적인 발상 때문에 무서운 범죄로 이어질 확률이 높다. 요즘 우리를 경악시키는 엽기적인 뉴스들이 대부분 이러한 사례에 해당한다.

긍정적인 측면은 무엇일까. 지난번에 뇌의 섹스 어필에 대해 언급했듯 섹스 어필을 위해서는 성적 욕망이 필수다. 사랑하는 이와 함께 서로의 성적 욕망을 채워주는 일, 그것이 설령 조금은 유치하고, 생소하거나, 낯설기도 하겠지만, 그로 인해 불쾌감을 주지 않는 이상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다. 코라의 성적 욕망이 프랭크가 아닌 남편 닉에게 향했다면 그녀의 비극은 막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덧붙이자면, 대부분의 여성은 생리 주기에 따라 성적 욕망에 차이가 생긴다. 배란기에 강해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생리 기간에 강해지는 사람도 있다.

그렇다면, 그대는 성적 욕망이 왕성해질 때 상대에게 어떻게 표현하겠는가. 편하게 말을 하는 방법보다는 말을 하지 않는 방법을 해보는 건 어떨까.

불도저처럼 단번에 욕망을 실현하는 것보다 절제의 미를 살리는 것, 조금씩 조금씩 욕망을 몸으로 드러내는 것, 그러므로 천천히 욕망을 달궈가는 것. 성적 욕망은 전력 질주해서 단번에 끝을 보는 단거리 육상이 아니라, 페이스를 조절하고 현명한 계산을 하며 달려야 할 마라톤과 같은 것이다.

그렇게 오래 지속될 때 성적 욕망은 긍정의 고속도로를 달려나갈 수 있게 된다. 오늘 밤, 욕망의 파도가 출렁이는 그곳에서 천천히 액셀을 밟아보는 것은 어떨까.

■ 이지운 작가·시인 = 광고·홍보·전시 등 영상 시나리오 1000편 이상을 쓴 전업작가로 <서정문학> 제59기 신인상을 수상하며 시인으로 등단했다.

키워드

#N
저작권자 © 누구나 안심하고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언론 세이프타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