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 양로원으로부터 전보를 한 통 받았다. '모친 사망, 명일 장례식. 근조(謹弔).' 그것만으로써는 아무런 뜻이 없다. 아마 어제였는지도 모르겠다."

노벨문학상을 받은 알베르 카뮈의 소설 <이방인>을 여는 첫 문장이다. <이방인>은 스물아홉의 알제리 출신 무명작가인 카뮈를 최고의 작가 반열에 오르게 한 작품이다.

<이방인>은 1부에서 주인공 뫼르소의 일상과 뜻하지 않은 살인, 2부에서는 그의 재판 과정을 다룬다. 뫼르소는 평범한 듯 보이지만, 어떤 일이든 감정을 보이지 않는 사람이다.

그는 어머니의 장례식 다음날 동료였던 여자와 해수욕장에서 우연히 만나 영화를 보고, 정사를 나눈다. 그렇게 직장을 다니며 데이트를 즐기는 등 평범한 일상을 보내던 중, 이웃과 연관된 사건에 휘말려 살인을 저지르고 만다.

그러나 법정에서는 그가 살인했다는 사실보다는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울지 않았다는 것, 커피를 마시고, 담배를 피웠으며, 시신 보기를 거부했다는 것으로 인해 인격적인 공격을 가하며 흉악한 범죄자로 몰아간다. 그가 살인한 것은 태양이 너무 뜨거웠기 때문인데, 아무도 그것을 믿어주지 않는다.

카뮈의 '부조리의 철학'이라는 소설 속 명제는 <이방인>이 출간된 지 70여년이 넘은 지금까지 독자들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마리는 아침부터 내가 한 번도 키스를 해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정말 그랬다. 그렇지만 나도 키스를 하고 싶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물속으로 들어가요'하고 마리가 말했다. 우리는 뛰어가서 곧장 잔물결 속에 몸을 뻗었다. 몇 번 팔을 저어 헤엄쳐 가다가 마리가 나에게로 달라붙었다. 그녀의 다리가 내 다리에 휘감기는 것을 느끼고, 나는 그녀에게 정욕을 느꼈다."

뫼르소는 감정을 표현하는 것을 매우 힘들어했던 사람이다. 이러한 이유만으로 우발적인 범죄를 저질렀음에도 반인격적인 살인을 저지른 인물로 법정 최고형을 구형받는다.

그러나 그는 사랑하지 않는다고 고백한 여자 친구 앞에서 본능적인 자극을 정욕으로 느끼는 평범함 또한 갖추고 있었다. 다른 것과 달리 본능이라는 것은 감출 수도 없고, 감추기조차 쉽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뫼르소의 절박한 상황을 가슴 아파하며 섹스리스에 처한 부부들을 떠올렸다. 섹스리스는 특별한 질병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한 달 이상 섹스를 하지 않는 부부를 말한다.

물론, 맞벌이를 하거나 양육의 어려움으로 주기적인 관계를 맺기 힘들 수도 있다. 그러나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있어 교감이란 매우 중요한 요소이며, 그것은 정신적, 육체적인 결합을 통해 꽃을 피운다.

다시 말해 섹스리스 부부들은 교감을 이루고 살기 힘들다는 것이다. 아마 이 글을 읽는 누군가가 반론을 제기할 수도 있다. 섹스가 없어도 얼마든지 행복할 수 있다고 말이다. 그럴수도 있을 거다. 행복은 매우 주관적인 감정이므로.

그런데 간혹 섹스리스 부부들은 "하늘을 봐야 별을 따지"라는 말로 상대를 탓하는 푸념을 늘어놓곤 한다. 왜 하늘을 볼 수 없었을까. 혹시, 외부와 차단된 밀실에서 하늘이 보이지 않는다고 투덜대고 있는 것은 아니었을까.

혹은 먹구름에 잔뜩 가려져 있는 검은 실루엣을 보며 하늘이 보이지 않는다고 하진 않았을까. 먹구름이 왜 생겼는지 알아보기 보다는 하늘을 보지 못해 별을 딸 수 없다며 불평을 토로하지는 않았을까.

뫼르소처럼 아무런 희망도 없이 하루하루를 살아가지 않으려면 바꿔보자. 시야가 툭 터진 산꼭대기에 올라가 하늘을 쳐다보자. 아니, 하늘을 쓰다듬어보자. 솜사탕처럼 부드러운 구름에 귀 기울여보자. 구름이 전하는 말을, 하늘이 미처 꺼내지 못난 말들을 들어보자.

하늘은 그리 쉽게 보여지는 게 아니라 귀를 쫑긋 세워 들으려 애쓸 때, 진정한 위로를 받았을 때, 바로 그 순간, 교감의 비를 뿌려준다. 몇 달째, 또는 몇 년째 교감을 하지 못한 부부라면 어찌 섹스를 하지 않고도 행복하다 말할 수 있겠는가.

가정이라는 조그마한 공간에서 자동차 배기가스 못지않은 불교감의 매연이 그들의 뇌를, 몸을 망가뜨리고 있을 텐데 말이다.

내일 죽을 것처럼 열렬히 섹스하라. 피곤하다고, 스트레스가 심하다고 미루지 말고, 다시는 할 수 없을 것처럼 그렇게 서로의 몸을 아껴주고 사랑하라. 그것이 뫼르소의 안타까운 삶을 보며 떠올린 생각이다.

■ 이지운 작가·시인 = 광고·홍보·전시 등 영상 시나리오 1000편 이상을 쓴 전업작가로 <서정문학> 제59기 신인상을 수상하며 시인으로 등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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