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란츠 카프카의 소설, 변신
▲ 프란츠 카프카의 소설, 변신

"어느 날 아침 불안한 꿈에서 깨어났을 때, 그레고르 잠자는 침대 속에서 자신이 흉측한 갑충(곤충강 딱정벌레목에 속한 곤충들을 일컬음)으로 변해있음을 깨달았다. 그는 갑옷처럼 단단한 등을 대고 누워 있었는데, 머리를 약간 들어 보니 배가 활 모양의 딱딱한 갈색 마디들로 갈라져 불룩하게 솟아 있었다. 이불은 금방이라도 미끄러져 내릴 것처럼 배 위에 간신히 걸쳐져 있었다. 몸뚱이에 비해 가여울 정도로 가느다란 다리 여러 개가 눈앞에서 무기력하게 떨고 있었다…"

갑자기 한 젊은이가 벌레로 변한다. 경제적으로 무능한 늙은 부모와 철없는 여동생을 둔, 매일 새벽부터 외판원으로 고된 삶을 살아가는 가장인 그레고리에게 충격적인 일이 벌어진 것이다. 인간이 벌레로 변한다는 이 기막힌 이야기는 프란츠 카프카를 통해 <변신>이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등장했다. 체코에서 태어난 유대인인 카프카는 언제나 불안을 끌어안고 살던 이방인이었다. 아버지와의 불화는 그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었지만, 그럴수록 문학적 깊이는 더욱 깊어갔다.

<변신>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자. 벌레로 변한 그레고리의 정체를 알게 된 가족들은 처음에는 믿을 수 없는 사실에 망연자실했지만, 벌레가 된 그를 극진히 보살펴준다. 그러나 가족들은 점차 변해간다. 돈을 벌어오지 못하는 그레고리가, 언제까지나 돌봐야 할 그가 귀찮아진 것이다. 어느 날 아버지가 던진 사과에 맞아 시름시름 앓기 시작한 그레고리는 결국, 음식을 거부한 채 끔찍한 벌레의 삶을 끝내버린다. 하지만, 가족들은 애도는커녕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하며 새로운 희망을 꿈꾼다.

▲ 프란츠 카프카
▲ 프란츠 카프카

"그레고리의 어머니와 여동생은 그레고리의 방을 사이에 두고 대화를 나누었다. "어서 의사 선생님께 가야겠다. 그레고리가 아프단다. 서둘러 의사 선생님 좀 모시고 오너라. 지금 오빠가 내는 소리를 들었니?" "그건 짐승의 목소리였어요"라고 지배인이 말했다…"

벌레가 된 그레고리는 결근한 그를 만나러 온 지배인 앞에서 무수한 변명을 늘어놓는다. 하지만, 그의 말은 포효하는 짐승의 소리일 뿐이었다. 가끔 우리도 이런 상황에 놓이는 경우가 있다. 분위기 있는 바에서 이제 막 서로에게 호감을 느낀 남녀가 와인을 마시고 있다고 가정하자. 두 뺨이 와인 빛깔로 물든 여자가 귀 뒤로 긴 머리를 쓸어 넘기며 남자의 이야기에 활짝 웃고 있다. 그의 눈동자는 그녀의 동작 하나하나를 분주하게 쫓는다. 이때, 남자는 여자에게서 무언의 신호를 받았다고 확신한다. 이윽고 그는 그녀의 작고 붉은 입술에 키스하고픈 열망으로 가득 찬다. 그의 가슴에서는 스피커를 뚫을 정도의 강렬한 록(Rock) 음악 같은 심장 소리가 귀를 강타하고, 달콤한 와인은 그를 노련하게 재촉한다.

와인 빛 키스로 그의 온몸이 장악될 즈음 그녀도 같은 생각을 할까? 만약, 남자가 여자의 신호를 자기 멋대로 해석하고 일방적으로 키스를 했다면, 이건 대단히 잘못된 일이다. 그렇지만, 그는 억울하다. 분명히 그녀는 자신을 유혹했다. 자신의 이야기를 들으며 환하게 웃는 그 붉은 입술이, 귓불을 부드럽게 터치하는 그녀의 가녀린 손이, 그것을 말해주는 게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그런데, 대부분의 여자는 호감이 간다고 해서 남자에게 키스 신호를 보내지 않는다. 그녀는 분위기에 취한 것이지, 그처럼 키스하고픈, 섹스하고픈 생각이 전혀 없을 수도 있는 거다. 그녀들은 여자 친구들끼리 있을 때도 그렇게 웃고, 그렇게 머리카락을 쓸어 넘긴다.

"대체 여자들이 보낸 그 숱한 섹스 신호는 뭔가요?" 화난 남자들이 그레고리처럼 변신해서 이렇게 항변한다. 그러나 여자들은 억울하다. "우리가 언제 섹스 신호를 보냈나요?" 남자들은 울부짖는다. "당신들의 하늘거리는 스커트와 하얀 다리, 가느다란 발목에서 보낸 신호는 뭐죠?" 점점 난감해진다. 시각적으로 미혹되는 남자와 공감각적으로 미혹되는 여자에게서 흔히 이런 인지 오류가 발견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먼저, 신호를 무시하자. 하나의 신호등으로 운전자는 정지하지만, 보행자는 걸어간다. 이렇듯 남자와 여자도 다를 수 있다. 그러니 최고의 방법은 대화하는 거다. 분위기가 무르익을 무렵 넌지시 물어보자. "키스해도 될까요?" 그 떨리는 한 마디에 아무 말도 없이 두 눈을 질끈 감았다면 부드럽게 키스하자. 중앙선을 침범하며 무섭게 돌진하는 차량처럼 기습 키스, 기습 섹스는 자칫 심각한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는 걸 명심하면서…

■ 이지운 작가·시인 = 광고·홍보·전시 등 영상 시나리오 1000편 이상을 쓴 전업작가로 <서정문학> 제59기 신인상을 수상하며 시인으로 등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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