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 많은 저술을 남긴 다산 정약용이 젊은 시절부터 유배 시기까지 수십 년간 썼던 글을 모아서 남긴, 이른바 '쓰다가 만' 잡문을 모은 <혼돈록(餛飩錄)>이 있습니다.

'혼돈'은 '여러 가지 재료를 혼합해 빚은 만두'라는 뜻입니다.

이 책은 4권 1책으로 엮어져 있는데, 다산의 다른 저작 목록에는 들어 있지 않습니다. 권1은 사론, 권2는 인물들의 일화가 중심을 이루고, 권3은 저자와 가까운 시기의 고사를 기록했는데 말미에 시화가 들어 있습니다. 권4는 언어문자에 관한 내용이 대부분입니다. 후학으로서는 다산이 책 이름을 만두라고 한 것에 뭔가 끌리는 게 있습니다.

조선 시대 실학자들은 대체로 자신들의 저술에 겸손한 제목을 붙였습니다. 이를 고려하면 이 책도 일상에서 흔히 쓰는 '혼돈(混沌)'과 발음이 같은 말을 써서 '생각나는 대로 적어 정리하지 않은 글'이라는 뜻을 은근하게 드러내 보이는 것 같습니다.

다만 록(錄)이어서 오늘날의 수필에 해당하는 설(說)과는 조금 다릅니다. 한문학에서 설은 대개 선경후정의 구조로 썼지만, 록은 이런 흐름을 따르지 않습니다.

▲정이신 아나돗학교 대표간사ㆍ아나돗공동체 위임목사
▲정이신 아나돗학교 대표간사ㆍ아나돗공동체 위임목사

책에 있는 일화에 '우적과 축은'이 있습니다. 조선 영조때 사람 홍휘한은 얼굴이 너무 시커메서 젊어서부터 친구들이 그를 우적(牛賊·소도둑)이라고 놀렸습니다.

그에 대한 놀림이 길어지다가 드디어 거의 모든 사람이 아예 우적을 그의 호처럼 사용했습니다. 친한 사이 한둘이라면 모를까, 많은 사람이 그를 우적이라고 부르자 그가 도무지 소도둑이라는 별칭을 벗어날 길이 없어 보였습니다.

그러나 유학자에게 도둑이라는 호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별칭으로 놀림당하는 그가 딱했는지 참판 홍인호가 제안했습니다.

"우적이란 호는 우아하지 않으니 축은(丑隱)으로 고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우적이야 어디를 살펴봐도 오갈 데 없는 소도둑이지만, 소를 뜻하는 우를 12간지에서 따온 글자인 축(丑)으로 바꾸면 느낌이 달라집니다.

축은(丑隱)은 소(丑)를 은닉한(隱) 사람이란 뜻이니 소도둑과 의미는 같지만, 듣는 사람에 따라 소처럼 우직한 은자(隱者) 혹은 우공이산(愚公移山)이라는 의미로도 들립니다.

같은 사람이지만 축은으로 부르면 소도둑이 우직한 선비로 바뀝니다.

이 이야기를 읽는데 남유다의 고대 지명 아나돗이 생각났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와 사촌 관계인 하나멜이 바빌로니아에 의해 남유다가 멸망하기 직전에 팔았던 땅이 아나돗에 있었습니다.

바빌로니아에 침공당하면 그냥 버려지기에, 그것이 아까워 점령당하기 전에 왕궁 근위대의 뜰에 갇혀 있는 예레미야를 찾아와 사달라고 요청한 베냐민 지파의 땅 아나돗에 있었던 밭뙈기.

당시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결혼도 하지 않은 예레미야는 옥에 갇혀 있는 상태에서도 비전을 갖고 이 땅을 후한 값을 치르고 샀습니다.

축은이라고 배려할 것인지 우적이라고 놀릴 것인지, 아나돗을 회복의 약속으로 볼 것인지 그냥 버려지는 땅으로 볼 것인지는 각자가 해야 할 선택입니다.

다만 이것에는 하나의 비밀 코드가 숨어 있습니다. '약속된 미래 혹은 한 사람의 숨겨진 재능을 볼 줄 아는가, 모르는가'입니다.

이 코드가 같은 사물과 사건, 사람에 대한 생각을 가릅니다.

축은은 한편으로 우적과 같은 뜻이면서도, 놀림의 별칭이 아니라 홍휘한의 마음을 헤아린 품격 있는 언어입니다.

아나돗도 비슷합니다. 6·25전쟁이 난 상태에서 내일 서울이 함락되리라는 것을 아는 사람에게, 자식도 없이 구치소에 갇혀 있는 그에게 서울에 있는 땅을 사라고 하면 사겠습니까.

그러나 예레미야는 그가 지닌 믿음의 품격으로 이 땅을 샀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다른 사람들에게는 버림과 놀림의 대상이지만, 여러분에게는 희망의 약속인 것이 있습니까.

혹시 그런 것이 있다면 이제 모든 것을 팔아서라도 그것을 사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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