멘토(mentor)는 그리스신화에서 유래한 단어로, 이 단어를 이름으로 쓰는 멘토르는 이타카의 왕 오디세우스(Odysseus)의 친구입니다.

오디세우스는 트로이와의 전쟁에서 그리스군 최고의 지략가로 이름을 날렸지만, 바다의 신 포세이돈의 노여움을 사서 오랜 기간 동안 집으로 돌아가지 못했습니다.

이때 기다림에 지쳐 있던 그의 아들 텔레마코스(Telemachus)를 친구, 선생, 상담자, 아버지가 돼 돌보며 가르쳤던 이가 멘토르입니다.

오디세우스가 귀환한 후 멘토르는 '현명하고 성실한 조언자, 좋은 지도자'라는 뜻을 가진 일반명사가 됐습니다. 그렇지만 철자가 같아서 M으로 시작하면 멘토르, m으로 시작하면 일반적인 뜻을 갖습니다. 도움 받는 상대는 멘티(mentee)입니다.

기독교 신앙인의 길을 걸으면서 철부지 교만으로 가득 찼던 시절에는 굳이 멘토가 필요 없다고 생각했었습니다.

성경을 스승으로 삼아 자조자립(自助自立)을 해낼 수 있다고 착각했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거울 앞으로 돌아와 보니, 멘토가 없는 공부는 스스로를 골방에 가둬두고 철의 장막과 같은 성을 쌓은 것에 불과했습니다.

▲정이신 아나돗학교 대표간사ㆍ아나돗공동체 위임목사
▲정이신 아나돗학교 대표간사ㆍ아나돗공동체 위임목사

목사가 된 후 기독교상담을 하면서 확증편향에 갇혀 자신은 스승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사이비·이단 교주라 불리며, 자신은 예수님과 성령님에게서만 배웠다고 거짓말을 늘어놓는 사람들에 대해 연구했습니다.

그러면서 멘토가 없다는 말이 얼마나 허구인지 알게 됐습니다. 공부는 새로운 세계를 열고 싶어서 하는 것인데, 새로운 세계는 절대 혼자 열 수 없습니다. 따라서 어떤 사람이 멘토도 없이 혼자 성장했다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닙니다.

저의 소중한 멘토는 신학대학원과 목회 현장에서 만난 두 사람입니다. 신학대학원에서 만난 멘토는 칼뱅(Jean Calvin)이고, 다른 멘토는 저를 기독교상담의 길로 안내해 준 분입니다.

모든 생명체는 자기의지(自己意志)를 지니고 있습니다. 하나님도 살아 계시기에 창조주로서의 의지가 있습니다. 이것을 알게 된 후 만난 칼뱅은 저에게 신앙의 새로운 이정표를 보여줬습니다.

그래서 대학원 시절 방학에 틈을 내서 그가 쓴 <기독교 강요>를 탐독했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칼뱅의 표현에 의하면 하나님의 예정에 의해 북향민 청소년과 청년을 만났습니다. 남한에 정착하기 위해 대안학교를 다니고 있었지만, 이들은 학업에 꼭 필요한 것을 다 배우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이들을 만났을 때 북향민 대학생의 졸업률은 채 50%가 되지 않았었습니다. 이들을 그냥 두고 제가 계획했던 길로 가기 위해 시골로 내려갈 수 없었습니다. 멘토인 칼뱅이 그러지 마라고 계속 채근했습니다. 결국 계획을 바꿨습니다.

북향민을 위한 학교 및 공동체를 개척해서 조그맣게 시작하고 있었는데, 가족이 통째로 사이비에 빠진 어떤 가장이 저를 찾아왔습니다.

그 사람의 사연을 듣고 기도하다가 시작하게 된 것이 기독교상담입니다. 그리고 이때 저의 또 다른 멘토인 L목사님을 만났습니다.

여러분에게도 아름다운 멘토가 있습니까?

멘토가 없고, 자기에게 영향을 준 사람이 없다는 말을 금과옥조처럼 여기며 바보처럼 살았던 치기(稚氣)의 시절이 저에게는 있습니다. 이를 통해 좋은 멘토를 만나는 것이 하나님이 주신 아주 좋은 복이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여러분도 이 복을 같이 누렸으면 좋겠습니다.

만약 멘토르의 말을 친구 아들인 텔레마코스가 귀담아듣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아마도 오디세우스와 멘토르는 친구에서 원수로 바뀌었을 것입니다. 즉 멘토와 그의 말을 귀담아들을 줄 아는 멘티가 있다는 것이 서로에게 좋은 일입니다. 그리고 이처럼 우리 사회에 축적된 지혜를 알려 줄 원로가 있다는 것은 엄청난 자산입니다. 또 들을 줄 아는 귀를 가진 다음 세대가 있다는 것은 우리 사회의 전망이 매우 밝다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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