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이신 칼럼] 알아야 하고 물려줘야 하는 만큼만
[정이신 칼럼] 알아야 하고 물려줘야 하는 만큼만
  • 정이신 기자
  • 승인 2020.07.03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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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제가 생(生)을 마치게 될 날이 언제일까 궁금해집니다.

그런데 그날을 제가 미리 알게 된다면 저는 어떤 준비를 할 수 있을까요. 그날을 안다고 해도 별로 달라질 것이 없는 인생이라면 오히려 그날이 다가올수록 더욱 압박감에 시달리지 않을까요.

어떤 이는 자신이 죽을 날을 미리 알면 준비를 할 수 있다고 하지만, 이 준비는 미래를 모르더라도 늘 하고 있어야 합니다.

굳이 내일을 알아야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선조는 적덕(積德), 우인(遇人), 칩거(蟄居), 독서(讀書)와 명상(冥想) 등을 실천하며 자신과 가족의 미래를 준비했습니다.

주어진 삶이 자신으로 인해 끝나는 것도 있지만, 역사와 후손을 통해 이어지는 부분이 있기에 이를 위해 이 덕목을 늘 마음에 새기며 살았습니다. 그러면서 이를 통해 얻게 된 복을 후손에게 남겼습니다.

그런데 덕을 쌓고(적덕), 만나야 할 스승과 친구를 만나고(우인), 가야 할 곳과 가지 말아야 할 곳을 구분해서 가지 않아야 할 곳은 가지 않고(칩거), 책을 옆에 두고 앞선 사람들의 지혜를 탐독하며 그것을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 늘 궁구하는 일(독서와 명상)은 오늘날 우리가 실천해야 할 삶의 지혜로도 손색이 없습니다.

어떤 사람이 이런 덕목을 늘 가슴에 새기고 산다면 그의 삶은 화평의 그늘로 걸어갈 가능성이 큽니다.

▲정이신 아나돗학교 대표간사ㆍ아나돗공동체 위임목사
▲ 정이신 아나돗학교 대표간사·아나돗공동체 위임목사

하나님은 늘 알아야 하는 만큼만 저에게 알려주셨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독서지도사를 시작했을 때도, 이 일이 이렇게까지 오래가는 직업이 될 것이라고 알려주시지 않으셨습니다.

저에게 주어진 일이라서, 제가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 NGO 청소년단체를 운영하는 일을 충실하게 하고자, 외국에서 만든 자료까지 번역해 가면서 독서·논술지도를 시작했었습니다.

그러다가 이 일이 학원가에서 수능국어강사를 하는 것으로 이어졌고, 이후 교회에서 북향민, 소외계층 청소년의 대학 진학지도와 학업 상담을 하는 일로 확대됐습니다.

이 과정에서 하나님은 저에게 미리 알려 주신 것이 아니라, 제가 갖춰야 하는 만큼만 배우게 하셨습니다.

혹자는 자신의 전생(前生)을 이야기하며 이것을 알아야 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전생을 안다고 해도 달라지는 것이 별로 없습니다. 배우가 전생에 비유되는 이전 출연작에 매여 있으면 다음 작품에서 명연기를 펼치기 힘듭니다.

전생을 알게 됐다고 해도 그냥 삶의 원인만 알게 된 것일 뿐이고 결과는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삶에 대해서는 알아야 하는 만큼만 아는 것이 좋습니다.

주의해야 할 것은 있습니다. 앞으로 차기 작품에서 자신에게 주어질 주연이라는 배역을 기대하면서, 조연 배우가 지금 자기가 공연하고 있는 작품에서 주연 배우처럼 행동하면 안 됩니다.

그럼 그에게 더 낮은 급으로 출연 요청이 갑니다. 따라서 금생에 많은 덕을 쌓았고, 천국이 약속됐다고 하더라도 늘 예수님처럼 겸손해야 합니다(빌립보서 2:6∼8).

과학철학의 설명에 따르면 우주 대폭발의 결과물로 만들어진 곳에서 우리가 살고 있지만, 처음에 우주가 폭발한 이유를 우리는 모릅니다.

그 원인은 인간이 절대 알 수 없습니다. 따라서 현전일념(現前一念)하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이 생애를 거룩하고 행복하게 사는 비결입니다. 그리고 알아야 하는 만큼만 알고, 물려줘야 하는 만큼만 후손에게 물려줘야 합니다.

역사에서 기억의 양이 모자라서 일이 생긴 적은 거의 없습니다. 방대한 규모를 자랑하는 <조선왕조실록>을 봐도 기억해야 할 것을 기억하지 않아서 문제가 생겼을 뿐입니다.

때가 돼 후손이 알아야 하는 양이 늘어나면, 그때는 그만큼 그들이 알아서 자신들의 세상을 가꿔 갈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에는 역사의 교훈으로 후손에게 남겨진 것도 포함돼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은 우리가 해야 할 몫의 일을 하고, 기억해야 할 것을 먼저 기억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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