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세우신 보이지 않았던 계획으로 대한민국의 청소년에 이어 북향민까지 가르친 지도 10여 년이 지났습니다. 처음에는 북한에서 온 학생들이라서 좀 다를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대한민국이든 북한이든, 심지어 외국에 나가 있는 대한민국 유학생들일지라도 같은 문제로 고민하거나 고통을 겪는 모습을 봤습니다. 이들은 중요한 공부와 급한 공부를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고, 둘을 엉켜서 생각했습니다.

학생들만 그러는 게 아니었습니다. 때로는 학생들이 과속하지 않도록 조언해 줘야 할 학부모들마저도 이런 착오를 저질렀습니다. 의외로 급한 공부에 밀려 중요한 공부를 보지 못하는 학부모가 많았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아이들이 급하게 조치해야 할 응급실에 있는지, 차분하게 기력을 회복해야 할 회복실에 있는지를 잘 몰랐습니다.

공부란 그것을 꽃 피워야 하는 시기에 제대로 된 아름다운 꽃이 피도록, 천천히 한 사람이 가진 몸의 성장과 기(機)의 흐름을 조절하면서 진행해야 하는 삶의 디자인입니다. 그리고 여기에서 기는 절대 기(氣)가 아닙니다.

그러나 학부모 대부분은 지금 눈앞에 보이는 급한 현실에 따라 아이들에게 공부하라고 요구합니다. 그러다 보니 '초등학교 때에는 공부를 잘했는데' 혹은 '중학교 때까지는 몇 등을 했는데'라는 수식어를 가진 고등학생들이나, '고등학교 때까지 공부를 잘해서 원하는 대학까지 갔었는데 대학에 가더니'라고 한탄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정이신 아나돗학교 대표간사ㆍ아나돗공동체 위임목사
▲정이신 아나돗학교 대표간사ㆍ아나돗공동체 위임목사

글을 읽는 공부란 텍스트(text)를 통해 타인과 의사소통을 하는 것입니다. 이때 의사소통의 대상이 텍스트의 저자일 수도 있지만, 때로는 텍스트를 해석해서 발문을 만든 사람인 학교 선생이나 문제 출제위원일 때도 있습니다.

사람들은 대체로 공부를 텍스트 저자와의 대화라고만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겪는 현실에서 고등학교 때까지 학생의 성적을 매기는 이는 텍스트의 저자가 아니라 텍스트를 해석해서 발문을 만드는 사람들입니다.

이곳저곳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급한 마음에 순자(荀子)가 하지 말라고 했던 수인지학(修人之學)을 시켜 봤었습니다. 그랬더니 성인인 경우에도 1년 이상 이런 공부를 시키면 과부하가 걸려 제대로 공부를 따라오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학생들이 당장에 대학이나 대학원 입시를 준비해야 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다시 순자(荀子)의 말에 따라 수기지학(修己之學)을 하게 했습니다. 그랬더니 학생들이 비로소 제대로 된 공부를 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내 아이가 처한 현실을 아주 이상적으로 생각해서 수기지학만 하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성리학적 질서를 유지하는 일을 국가의 존립 이유 중 하나로 여겼던 조선 시대에도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때로는 성적을 올려 시험에 통과하는 수인지학도 해야 합니다.

다만 특별한 소수의 학생으로 선천적으로 공부를 좋아하는 이들 외에 일반 학생이 수인지학에만 집중할 경우 문제가 생깁니다. 일반 학생의 경우 1∼2년이면 과부하가 걸립니다. 더는 제대로 된 공부가 진행되지 않고, 현상 유지만 겨우 하는 정체 현상이 나타납니다.

만약 내 아이가 재수(再修)나 원하지 않던 대학에 들어가서야 공부의 봇물이 터지는 속도나 기(機)를 가진 아이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공부는 한 사람이 가진 전 생애라는 맥락을 통해 계획하고 진행해야 하는 수련 과정입니다. 당장에 급하다고 특정 과목에만 몰입하는 식의 공부는 아주 비효율적인 낭비입니다.

우리 인생에서 중요한 공부가 먼저일까요, 급한 공부가 먼저일까? 물에 빠져 허우적대는 사람에게 물에서 헤엄쳐 나오라고 수영을 가르칠 수는 없습니다. 그때는 먼저 물에서 끄집어내야 합니다. 그리고 긴 안목으로는 수영을 가르쳐서 물에 빠지더라도 최소한 자신의 생명은 보존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해야 합니다. 어느 한쪽으로 치우칠 수 없는 이 두 과업을 적절하게 배분하며 공부하는 것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 세이프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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