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이신 논설위원
▲정이신 논설위원

웰빙(well-being)이 한동안 우리 주변을 맴돌며 사람들을 일깨웠습니다. 인간 세상에는 돈으로 계산할 수 없는 가치가 있는데, 그것을 물질적 부로 치환해서 숫자로만 계산하려는 욕망이 지나치게 극대화돼 있습니다.

이로 인해 정신 건강을 가볍게 여기는 경향이 폭넓게 퍼졌고, 산업화가 심화 되면서 정신적 장애를 일으키는 일로까지 발전했습니다. 웰빙은 이런 상황을 그대로 두지 말자고 합니다. 육체와 정신의 건강한 조화를 통해 행복하고 아름다운 삶을 추구하는 문화를 더 발전시키자고 합니다.

이제 웰다잉(well-dying)이 등장했습니다. 모든 사람이 한 번은 죽습니다. 이것을 비극으로만 생각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준비해, 내 삶에 일어나야 할 하나의 과정으로 받아들이자고 웰다잉은 제안합니다.

의학적으로 종말을 선고받은 환자가 아니더라도, 죽음에 대해 한 번 생각해 보고 유언장도 미리 써 보자고 합니다. 죽음은 그동안 금기사항으로 취급됐었는데, 이것을 당당하게 이야기하는 기세가 참 거셉니다.

기독교신학에서는 사람의 죽음을 하나님과 관계가 끊어진 죽음과 육체의 숨결이 끊어진 죽음 두 가지로 설명합니다. 그런데 죽음을 뜻하는 말로 신약성경에서 많이 사용한 헬라어 네크로스와 타나토스의 용례를 명확하게 구분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부활과 연관 지어 영지주의로 둔갑시킨 후, 영이 부활한다고 속이는 사이비·이단들도 있습니다.

인간은 호흡하는 육체로 살다가, 육체를 떠나 하나님 앞에 가서 새로운 몸으로 부활을 기다리는 존재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이 시각으로 보면 사람이 육체로 살다가, 그것을 떠나 창조주에게로 간 게 죽음입니다. 그런데 숨결이 끊어져 세상을 떠났지만, 육체를 떠나도 자아정체성은 같기에 그가 바로 그입니다. 그래서 죽음에 관한 생각도 하나님과 인간이 다릅니다.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는 '자신의 죽음을 기억하라, 너는 반드시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는 뜻의 라틴어입니다. 로마에 개선장군이 들어올 때 환영하는 인파에 속아 자신의 사회·정치적 위치를 망각할까 봐, 노예에게 개선장군 뒤에서 이 말을 외치게 했다고 합니다.

이처럼 인간이 발견한 것 중에 가장 위대하고 평등한 게 죽음입니다. 또 국립묘지의 장군묘역을 거부하고 동료들이 묻힌 사병묘역에 안장해 달라고 한 모 장군의 유언처럼 죽음을 기억하는 것은 인간에게 귀한 교훈이 됩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죽음을 담담하게 삶의 한 모습으로 받아들이기에는 여전히 깊은 고뇌와 기도가 필요합니다.

프로이트는 그의 생애 후반부에 에로스(Eros)와 타나토스(Thanatos)가 같다고 했습니다. 편안하게 죽는 것, 행복하게 이 땅을 떠나는 것이 인간의 간절한 욕망이라고 했습니다. 기독교상담을 하면서 사람들을 만나 보니 그의 설명대로 에로스와 웰빙으로 대변되는 가치만 간절한 게 아니라, 타나토스와 웰다잉에 대한 갈망도 애절했습니다.

영원 앞에 찰나가 이름을 내밀 수 없습니다. 우주의 시간으로 보면 이제 갓 태어난 아이일지라도 남겨진 시간이 찰나에 불과합니다. 게다가 우리가 이 세상에 있는 한 아름다운 길뿐 아니라 다른 영역에도 늘 한 발을 담그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니 에로스를 벗어나 우주의 바다,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로 돌아갈 때는 담담해질 수 있도록 서로 같이 노력해야 합니다.

몸에 타나토스가 나타나야 할 때 여전히 에로스에 사로잡혀 있으면 노추(老醜)가 됩니다. 타나토스가 제때 발현돼야 노인(老人)이 됩니다. 제 주변에는 동행해 주셔서 고맙다고 말씀드릴 수 있는 신앙의 노인이 몇 분 계시는데, 그분들을 보고 있으면 늘 부끄러워집니다.

그분들처럼 노인의 길로 가고 있어야 하는데, 에로스에 사로잡혀 노추로 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반성하게 됩니다. 제가 풀어야 하지만 여전히 어려운 두 실타래가 에로스와 타나토스입니다.

■ 정이신 논설위원·목사 △한양대 전기공학과 졸업 △백석대 신학대학원 졸업 △아나돗학교 대표간사 △아나돗공동체 위임목사 △세이프타임즈 '노희(路戱)와 더불어 책(冊)놀이' 연재 △칼럼집 <아나돗편지(같이 비를 맞고 걸어야 평화가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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