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히 눈 감으면 그였어
가슴 촉촉한 무지개를 안고 그가 왔지
어느날 불쑥 찾아오기도 했지만
이미 와버린 것처럼 다녀가기도 했어
봄 햇살에 익어가는 부끄러움이
낙엽에 치이듯
우리들의 치아를 반짝 빛나게도 했지
마음이 감미로웠어
그가 남겨 놓은 편지 한 장에
물들어 버린 시간들
나는 지쳐버린 마음에 파블로 피카소의
그림을 얹어 밥을 짓고 노래를 불렀어
바람의 별들과 대지의 풋풋한 숨결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없는 화음
수풀에 잠들어버린 고요와 내 절망이
탄식하는 국화꽃 향기처럼
그가 왔어
물 아래 겹겹이 맺힌 포말같이
눈 감으면 그였어
네 작은 손이 마치 너의 이미지이듯
우린 계절의 터널 속에서
항상 만나고 헤어지고 그렇게 시간을 보내
커튼 처진 밤
돌아눕고 싶은 생각이면
해맑게 드리워지는 달빛
잊혀졌다 나타나곤 사라졌다 문을 두드리지
그는 그렇게 여러 얼굴이 되어
전령처럼 가버렸지
그러곤 수수께끼처럼 찾아와
고히 잠든다네

▲ 손남태 시인
▲ 손남태 시인

■ 손남태 시인 = 경기도 안성 출신으로 대학에서 문학을 공부한 뒤 농민신문사 기자로 일했다. 현재는 농협중앙회 안성시지부장으로 근무하면서 한국문인협회와 한국현대시인협회, 국제PEN클럽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시집으로는 '그 다음은 기다림입니다' 등 6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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