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계가 심야 새벽배송(0~5시) 전면 금지를 제안하면서, 소비자·이커머스 업계·정부 간 갈등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그러나 새벽배송은 이미 단순한 '편의'를 넘어 국민 다수의 '생활 인프라'로 자리 잡았다.
맞벌이 가구와 1인 가구에게 새벽배송은 시간 절약과 생활 효율을 높이는 필수 서비스다.
한국소비자단체연합 조사에 따르면 소비자 10명 중 9명은 새벽배송을 선호하고 98.9%는 앞으로도 계속 이용할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서비스가 중단되더라도 불편을 느끼지 않는다는 응답은 10명 중 1명에 불과했다.
한국소비자원이 발표한 '2024 소비자 시장 평가지표'를 보면 새벽배송 서비스가 소비자 평가 항목 중 71.8점을 기록하며 1위를 차지했다. 이는 새벽배송이 이미 소비자의 일상 속 깊이 뿌리내린 생활권임을 보여주는 지표다.
한국유통학회가 발표한 2024년 보고서는 국내 새벽배송 생태계에는 배송 기사와 물류센터 근무자를 포함해 10만3000개의 직접 일자리가 연관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교보증권은 새벽배송 시장 규모는 올해 15조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새벽배송은 더 이상 일시적 유행이 아니라, 국가 물류 구조의 한 축으로 성장한 것이다.
이러한 성장의 이면에는 심야노동으로 인한 피로 누적과 건강권 침해라는 문제도 존재한다.
노동계가 '노동자 건강권'을 이유로 심야시간대 전면 금지를 주장하는 것은 정당한 문제 제기다. 다만 그 해법이 '전면 금지'라는 극단적 방식으로 귀결될 경우, 사회적 갈등은 오히려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
노동 현장은 단일하지 않다. 새벽배송은 전업뿐 아니라 투잡, 단시간 근로 등 다양한 형태로 이루어지고 있다. 일부 노동자에게는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선택이자 기회다. 이들에게 일률적인 금지 조치는 곧 '일할 권리'의 박탈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결국 새벽배송 전면 금지는 2000만명 이상의 소비자가 누리는 생활 편익과 심야노동을 통해 생계를 유지하는 노동자의 권리를 동시에 위협하는 역설을 초래할 수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금지'가 아니라 '합리적 사회적 합의'다.
노동자에게 심야근무의 '선택권'을 보장해야 한다. 원치 않는 노동자에게는 강제 배정을 금지하고, 자발적 선택에는 충분한 보상과 제도적 보호가 전제돼야 한다. 기업은 주간 근무 전환을 확대해 심야노동을 점진적으로 줄여야 한다.
과로 방지와 휴식권 보장을 위한 구체적 기준을 필요하다. 주당 근무시간 제한, 연속 근무일수 제한, 의무 휴게시간 확보 등 실효성 있는 안전장치를 제도화하고, 물류센터 내 휴게공간과 식사시설 등 기본적인 노동환경을 개선해야 한다.
건강권 보호와 공정한 보상체계를 확립해야 한다. 정기 건강검진, 수면장애·심혈관질환 등 예방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야간근무 할증 수당 및 합리적 단가 보장을 통해 노동자의 경제적 권리와 건강권을 함께 지켜야 한다.
자동화 및 AI 기반 물류 시스템에 대한 투자를 확대해야 한다. 기술적 혁신을 통해 노동 강도를 줄이고, 새벽배송의 속도 경쟁이 노동자의 희생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소비자단체·노동단체·기업·전문가·정부가 함께 참여하는 '새벽배송 사회적 합의기구'를 조속히 구성할 필요가 있다. 심야 할증 보상, 배송시간 조정 등 지속 가능한 제도적 대안을 논의하고 합의해야 한다.
새벽배송은 이미 우리 사회의 일상이며, 경제활동의 중요한 축이다. 갈등과 대립의 논리를 넘어 모두가 수용할 수 있는 지혜로운 해법을 찾는 것이야말로 시대의 과제다. '편익'과 '인권'이라는 두 가치를 조화시키는 사회적 성숙이 지금 우리에게 요구된다.
전면 금지 논쟁의 소모적 대립을 멈추고, 소비자의 권리와 노동자의 건강권이 함께 존중받는 지속 가능한 새벽배송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상생의 길이며, 정부와 국회가 지금 당장 나서야 할 책무다.
■ 박순장 세이프타임즈 수석 논설위원 겸 소비자안전안심센터장(전 소비자주권민회의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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