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소비자원의 소비자분쟁조정 평균 처리 기간이 무려 122.8일에 달한다는 통계가 나왔다. ⓒ 세이프타임즈
▲ 한국소비자원의 소비자분쟁조정 평균 처리 기간이 무려 122.8일에 달한다는 통계가 나왔다. ⓒ 세이프타임즈

제품이나 서비스 구매 시 분쟁이 발생하면 소비자가 기댈 수 있는 공적시스템은 사실상 한국소비자원의 문턱을 넘는 것과 법적 소송뿐이다.

대다수 소비자는 '소송'이라는 험난하고 비용이 많이 드는 길 대신, 그나마 신속하고 공정할 것이라고 믿는 소비자원의 분쟁 조정 절차를 선택한다.

우리가 구매하는 거의 모든 제품의 약관에 '분쟁 발생 시 한국소비자원의 분쟁기준에 따른다'는 문구가 버젓이 적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작금의 현실은 이러한 소비자들의 신뢰를 처참하게 짓밟고 있으며, 이 문구는 이제 기만적인 껍데기에 불과하다.

올해 1월부터 8월까지 한국소비자원의 소비자분쟁조정 평균 처리 기간이 무려 122.8일에 달한다는 충격적인 통계가 이를 증명한다.

이는 소비자분쟁조정위원회의 법정 처리 기간인 30일을 네 배 이상 초과하는 수치다. 이 긴 시간을 고통 속에서 기다려야 하는 소비자들에게, 소비자원은 대체 무엇을 해주고 있는지, 관리 감독 기관인 공정거래위원회는 소비자들의 고통을 알고나 있는지 의문이다.

더 나아가 소비자원의 평균 처리 기간이 122.8일이라는 이 비루한 현실은 기업들에게는 분쟁에 대한 면제부를 주고, 소비자들에게는 정신적 고통과 기다림에 지쳐 분쟁을 포기하도록 유도하는 무의미한 문구임을 여실히 드러낸다.

이러한 지연 심화는 단순히 행정 처리의 '느슨함'으로 치부할 문제가 아니다. 근본적인 원인은 피해구제 신청 건수가 3년 새 30% 이상 급증하면서 미결 건이 8000건에 달하는 심각한 업무 적체에 있다.

피해구제 신청 건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는 것은 곧 기업들의 소비자 불만 외면 행태가 그만큼 만연해졌다는 명백한 증거다.

기업들은 소비자 불만을 자체적으로 해결하려 하기보다, 소비자원으로 책임을 떠넘기거나 아예 덮어버리려 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 한국소비자원 122.8일에 늑장 분쟁 조정 해결에 공정위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 세이프타임즈
▲ 한국소비자원 122.8일에 늑장 분쟁 조정 해결에 공정위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 세이프타임즈

그리고 한국소비자원은 이러한 기업들의 무책임한 태도와 급증하는 소비자들의 고통 사이에서 무기력하게 기능 정지 상태에 빠져 있으며, 이를 관리 감독해야 할 공정거래위원회는 '나 몰라라' 하며 책임을 방기하고 있는 실정이다.

법정 처리 기간을 네 배나 초과하는 '122.8일의 기다림'은 소비자들에게 "당신의 피해구제는 우선순위가 아니니, 고통을 감수하고 덮고 넘어가라"고 강요하는 것과 다름없다.

분쟁이 발생하면 신속한 해결이 생명이다. 시간이 길어질수록 피해는 누적되고, 증거는 사라지며, 무엇보다 소비자의 정신적 피로와 좌절감은 극대화될 것이다.

이는 단순한 '행정 지연'이 아니라, 소비자 권익에 대한 명백한 배임이자 공공기관의 직무 유기라 할 것이다.

소비자분쟁조정 제도는 소송이라는 거대한 장벽 앞에서 좌절할 수많은 약자인 소비자를 위한 최후의 보루다. 이 보루가 뚫리고, 그 기능이 마비된다면, 기업들은 더욱 거리낌 없이 소비자들을 기만할 것이고, 결국 시장 질서는 무너질 것이다.

한국소비자원은 지금 당장, 이 심각한 '적체 문제'를 해결할 특단의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단순히 인력 충원 운운할 단계가 아니다.

분쟁 조정 절차의 혁신적인 간소화, 신속 처리 시스템 도입, 그리고 악성 민원 유발 기업에 대한 강력한 제재 등의 구조적 개혁이 시급하다.

▲ 박순장 전 소비자주권시민회의 사무처장
▲ 박순장 전 소비자주권시민회의 사무처장

평균 처리 기간 122.8일로 법정 처리기간(30일)의 4배가 넘도록 이를 방치하고 방관한 한국소비자원의 책임도 가볍지 않으나, 더 큰 책임은 이를 관리 감독하는 공정거래위원회에 있다.

여느 기관보다 기업들의 불공정 행태를 잘 알고 있는 공정위가, 그로 인한 분쟁이 늘어나고 있음을 명확히 인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방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평균 처리 기간 122.8일이라는 불명예스러운 숫자는 대한민국 소비자 행정의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분쟁 조정이 장기화되고 미결 사건이 누적되면 그로 인한 불편과 피해는 고스란히 소비자들의 부담으로 돌아간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인식해야 한다.

한국소비자원은 더 이상 현실을 외면하지 말고, 법정 처리 기간 30일 이내에 분쟁을 해결해 소비자들의 눈물을 닦아주어야 할 본연의 임무로 즉시 복귀해야 한다.

신속하고 공정한 피해구제는 소비자의 기본적인 권리이며, 이 권리를 침해하는 모든 무책임하고 무기력한 행태에 대한 강력한 경고다.

소비자의 권리와 권익을 침해하거나 침해할 가능성이 모든 요소들에 대한 적극적인 대응을 위해 공정거래위원회와 한국소비자원의 구조적 개혁과 각성을 강력히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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