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이신 칼럼] 내 선택만으로 모든 게 달라질까요
[정이신 칼럼] 내 선택만으로 모든 게 달라질까요
  • 정이신 기자
  • 승인 2021.07.16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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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곱은 라헬을 레아보다 더 좋아했습니다. 레아에게서 많은 자기 자식이 태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창세기'는 '야곱이 레아를 사랑했다'라고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레아는 자신에게서 늘 마음이 떠나 있는, 몸은 옆에 있어도 마음은 라헬에게로 가 있는 남편을 눈물로 쳐다보며 살았습니다. 야곱은 철저하게 자신의 의지로 라헬을 선택했고, 자식마저 라헬이 낳은 아들인 요셉을 다른 아들들보다 더 좋아했습니다.

이건 야곱이 벌인 그만의 선택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계획이 드러나자 그의 선택과 다른, 그가 전혀 예측하지 못했던 반전이 시작됐습니다. 레아가 낳은 아이 중에 훗날 이스라엘을 다스리고 메시아를 탄생시킬 유다지파와 이스라엘의 제사장이 되는 레위지파의 시조가 나왔습니다. 라헬은 남편 야곱의 사랑을 듬뿍 받고 요셉과 베냐민을 낳았지만, 그녀가 낳은 아들 둘은 이스라엘 역사에서 문젯거리를 만든 지파가 됐습니다.

라헬이 낳은 요셉은 후대에 우상숭배로 전락한 북이스라엘의 대표 지파인 에브라임ㆍ므낫세지파의 시조입니다. 에브라임의 후손은 이스라엘 역사에서 우상숭배의 상징이었고, 그녀가 두 번째로 낳은 베냐민의 후손은 사사 시대에 레위지파 사람의 첩을 윤간해 죽였습니다. 이걸 지적하자 회개하지 않고 이스라엘의 나머지 지파와 싸움을 벌여 세력이 거의 박살 났었습니다.

▲ 정이신 논설위원
▲ 정이신 논설위원

'요한계시록 7장'에 회복된 이스라엘 12지파의 이름이 나오는데, 에브라임지파와 라헬의 몸종 빌하가 첫 번째로 낳은 아들에서 파생된 단지파가 없습니다. 에브라임지파 대신에 요셉지파, 단지파 대신에 레위지파가 들어가 있습니다. 레위지파는 땅을 가지지 않았기에 가나안에 들어가 땅을 배분할 때는 이름을 올리지 않았지만, '요한계시록'에는 들어가 있습니다. 요한이 왜 이렇게 기록했는지 정확한 이유는 우리가 알 수 없습니다.

구약성경을 보면 라헬을 좋아한 야곱의 선택을 하나님은 기꺼이 용인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이후에 펼쳐진 하나님의 섭리는 야곱의 선택과 달랐습니다. 성경은 이처럼 하나님의 의지가 개입된 예정 섭리 중에 인간의 선택과 별개로 운용되는 게 있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앞 세대가 내놓은 길 중 내가 만든 게 아니지만 가야 하는 게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인간이 가는 길이 거인의 어깨 위에 놓인 길이라고 합니다. 때로 주어진 길을 십자가를 지고 걷게 될 때도 있는데, 이는 보이지 않는 손길이 정한 흐름을 내가 받아들인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앞 세대의 선택에 고마움을 느끼기도 하고 때로 비판도 하지만, 그들의 선택으로 모든 게 결정되지 않았다는 걸 확인하며 현재를 살아갑니다.

야곱 이야기를 통해 보면 내가 선택해서 모든 역사가 바뀌는 게 아니라, 나의 부족한 선택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은혜가 역사를 이끌어 갑니다. 인간은 자신의 선택을 통해 자신에게 닥칠 하나님의 계획을 받아들일 내공을 기를 뿐입니다. 선택을 통해 그걸 책임지는 힘을 인간이 기르는 것이기에, 그걸로 인해 모든 게 달라진다고 생각하는 건 철저히 인간의 편견입니다. 인간이 보지 못한 손길이 만든 흐름은 오늘도 도도히 흘러갑니다.

오늘도 사람들은 계획을 세웁니다. 사람들이 생각한 대로 세상이 움직이지 않고, 계획을 세워도 생각하지 못했던 변수들 앞에 나약해지는 인간이지만, 그것마저 세우지 않으면 더 무력해지기에 앞으로 일어날 일을 나름대로 계산해서 대비책을 세웁니다. 그러면서 인간은 알 수 없는 세계를 우리의 선택으로 결정한다는 마음으로 삽니다.

그런데 혹시 내가 그때 다른 선택을 했다면, 지금 내게 주어진 상황이 내가 바라는 방향으로만 전개됐을까요. 그 선택으로 인해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다른 일은 생기지 않았을까요. 최선을 다해 선택하되, 바꿀 수 없도록 주어진 흐름도 있다는 걸 꼭 기억하십시오. 그래야 보이지 않는 길을 시각장애인처럼 걸으면서 하게 되는, 선택의 함정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 정이신 논설위원ㆍ목사 △한양대 전기공학과 졸업 △백석대 신학대학원 졸업 △아나돗학교 대표간사 △아나돗공동체 위임목사 △세이프타임즈에 '노희(路戱)와 더불어 책(冊)놀이' 연재, 칼럼집 <아나돗편지(같이 비를 맞고 걸어야 평화가 보입니다)> ⓒ 세이프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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